‘징역 5년’과 ‘무기징역’의 간극…이제 ‘제2의 장윤기’ 못 막는다

이혜영 기자 2026. 7. 1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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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증거 ‘리얼돌·케이블타이’ 장윤기 부친 손에…점입가경 은폐·유착 의혹
“보완수사권 없이 요구만 했다면 구속된 수사팀장이 다시 사건 맡았을 수도”
400억대 사기·김창민 감독 사망·해든이 사건…진실 밝힌 건 모두 ‘보완수사’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결박용 도구로 쓰이는 '케이블타이'와 성인용품인 '리얼돌', 그리고 불타버린 '휴대폰 4대'와 혈흔이 묻은 '차량(SUV)'. 모두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 사건에서 증발하거나 오염된 핵심 증거물이다. 살인범의 범행 동기 규명과 혐의 입증에 결정적 단서로 꼽히는 증거물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훼손된 사건 중심에는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장윤기의 현직 경찰관 부친이 있다.

오는 10월 검찰청 해체 후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대안 없이 사라지고, 수사 개시부터 마침표까지 모두 경찰이 쥐는 설계도가 실행될 경우 국민과 범죄 피해자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전개'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터져나온다. 보완수사권 존폐를 놓고 기싸움을 벌여온 검찰과 경찰은 양측 모두 절박한 셈법 아래 총력전에 돌입했다.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보행로에서 귀가 중이던 여고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남고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장윤기(23 )가 5월14 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장윤기 '감형' 노림수 위해 판 깔아준 경찰

5월5일 광주에서 발생한 여고생 흉기 살해 사건은 두 달 만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찰 수사에서 '일면식 없는 행인을 노린 범죄'로 1차 마무리된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모두 11개에 달하는 초동수사의 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기에 경찰 내부의 유착 정황, 현직 경찰관인 가해자 부친의 고의적 증거인멸까지 밝혀지며 국민적 공분이 거세지는 형국이다. 장윤기의 큰아버지 역시 현직 경찰 간부로 확인됐다.  

경찰이 사건 발생 열흘 만인 5월14일 장윤기를 검찰로 송치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형법상 일반 살인, 살인미수 등 혐의다. 그러나 6월3일 장윤기를 구속 기소한 광주지검 형사3부(김진희 부장검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살인 등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장윤기가 살인만 계획한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목적으로 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일반 살인의 형량은 '5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 또는 사형'이지만, 강간 살인은 '무기징역 또는 사형'만 가능하다. 형량 하한선이 각각 징역 5년과 무기징역으로 갈릴 만큼 어떤 혐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피의자도,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게도 엄청난 간극이 생긴다.

장윤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뻔했던 혐의 적용이 불발된 것은 검찰의 보완수사가 '아직은' 작동하는 구조여서다. 검찰 수사팀은 직접 보완수사를 통해 장윤기의 범행 당시 자취방에 목과 가슴 부위가 집중적으로 훼손된 리얼돌 2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장윤기가 범행 당시 SUV 차량 뒷문을 열어놓은 채 고(故) 이채원양을 끌고 가려 했다는 점, 장윤기가 스토킹·감금·성폭력을 저지른 또 다른 피해자인 베트남 여성에게 가한 공격 패턴과 유사한 점 등을 추가로 밝혀내지 못했다면 강간살인 혐의 적용은 불가능했다.

장윤기는 경찰 수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장윤기가 이양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여자인 줄 몰랐다"고 말한 점도 향후 재판 과정에서 강간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까지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장윤기는 6월22일 처음으로 열린 이 사건 공판에서 다른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한다면서도 강간 목적의 범행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장윤기의 현직 경찰 부친인 장아무개 경감이 적극적인 증거인멸을 벌였고, 경찰의 유착·은폐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던 7월7일 장윤기는 기소 후 처음으로 1심을 맡은 광주지방법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장윤기가 수사기관에서 한 기존 진술과 주장을 보면 일관되게 강간살인 혐의를 피해 가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구치소에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겠다'면서 출소 이후의 그림까지 그리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보완수사로 구멍을 메우지 않았다면 장윤기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나이에 가석방을 받고 풀려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초동수사만 보면 경찰이 장윤기의 감형 노림수나 가석방 구상에 힘을 실어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드러낸 것은 장윤기의 범행 전모뿐만이 아니다. 경찰이 일관되고도 반복적으로 살인범인 장윤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핵심 증거물을 '놓치고, 방치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자취방 압수수색에서 목과 가슴이 심하게 훼손된 리얼돌을 발견하고도 "살인과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실물을 확보하지 않았다. 압수수색 종료 후 장 경감은 수사팀으로부터 아들 자취방의 주소와 비밀번호를 받았고, 집주인에게 "고약한 것을 치우겠다"는 말을 한 뒤 이를 분해해 폐기했다. 자취방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를 사전에 경찰로부터 공유받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검찰이 보완수사 과정에서 영상에 기록된 리얼돌을 주목하지 않았다면 핵심 증거의 존재는 아직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수 있다.

범행 당시 장윤기가 탔던 SUV와 해당 차량 조수석에서 발견된, 결박 용도로 쓰이는 공업용 케이블타이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팀장이었던 박아무개 전 광산경찰서 강력팀장은 수사팀 경찰들에게 케이블타이를 차량에 그대로 두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무능했을 뿐 고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항변한 박 경감은 7월8일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고개 숙이면서도 "개혁 후퇴 안 돼"   

검찰과 경찰은 각각 전담팀을 꾸려 장윤기 사건의 부실수사와 유착 의혹을 정조준하는 수사를 본격화했다. 오는 10월 검찰청 해체를 불과 3개월 앞두고 보완수사권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민감한 시기에 검경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검찰은 장윤기 사건 외에도 보완수사를 통해 사건 실체를 규명한 수사 성과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 창원지검 형사4부(이재원 부장검사)는 피해금액이 총 414억원으로 추산되는 신종 금융사기단의 범행을 밝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피해자의 고소장 접수로 시작된 이 사건은 경찰 수사에서 3000만원대 개인 간 사기 건으로 송치됐다. 수사 기록을 검토한 검찰은 공모 관계 등을 의심해 세 번에 걸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정상적인 렌털 사업이었다"는 핵심 피의자의 진술만 믿고 압수수색이나 금융계좌 추적 등 강제수사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은 채 재송치했다. 결국 검찰은 직접 보완수사로 계좌를 추적해 돈의 흐름을 파고들었고 실제 범죄 규모는 경찰이 결론 낸 것보다 1300배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故) 김창민 영화감독 사망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살인죄 적용, 생후 4개월 '해든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친모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과 1심 무기징역 선고 등 최근 발생한 강력 사건의 결정적 물증과 진술 역시 모두 검찰의 보완수사 단계에서 공백이 채워졌다. 검찰 관계자는 "만일 장윤기 사건이 10월 이후 중수청-공소청 분리 후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완전 박탈된 상태에서 일어났다면 더 이상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라며 "경찰 조직에 대한 견제와 미비한 수사를 보완할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완수사권을 없앨 경우 국민이 겪게 될 부작용과 피해는 자명하다. 그다음 장윤기는 못 막는다"고 내다봤다.

김호중 서울북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도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경찰이 허위로 수사했을 경우 보완수사권 없는 검사가 이를 알아챌 방법이 있느냐"며 "보완수사권이 없어진다면 억울한 피의자, 피해자가 양산될 거라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정부에서 출범한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현재 시스템에서) 만일 장윤기 사건을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하지 않고 보완수사요구권을 행사해 경찰로 내려보냈다면, 사건은 다시 문제의 (광산경찰서) 수사팀이 담당하게 된다"며 "증거인멸 혐의가 드러나 체포·구속된 팀장이 다시 사건을 맡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현재 나온 중수청-공소청 법안에는 이런 제도적 결함을 보완할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박탈할 경우 다른 수사 주체나 기관에서라도 검토하도록 해야 하고 이번과 같은 예외적 상황에서 사건 관할을 어떻게 조정할지, 보완수사 요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또 어떻게 할지 고민해서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데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김창민 감독(작은 사진)을 식당 밖으로 끌고 나가 집단폭행하는 가해자들 CCTV 화면 ⓒJTBC뉴스룸 화면캡처

민변 변호사들도 "보완수사권 필요"

경찰 내부는 부실수사와 조직적 은폐 의혹 앞에 뒤숭숭한 분위기다. 보완수사권 존폐 분수령에서 이번 사건이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긴장감도 읽힌다. 해외출장 중이던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장윤기 사건 대응을 위해 7월10일 조기 귀국을 결정했다. 홍석기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은 "유구무언"이라며 "명운을 걸고 엄정 수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찰은 악화하는 여론을 의식하며 수사쇄신TF와 내부수사대를 구성해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필요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한 사건으로 형사사법 개혁의 방향까지 되돌릴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보완수사 성공사례'를 내놓고 있는 검찰을 향해 "검찰 조직의 마지막 권한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 여론전으로 비칠 수 있다. 형사사법 개혁을 후퇴시키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장윤기 사건을 중심으로 검경의 신경전이 고조되는 가운데 진보 성향의 법조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7명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6월30일부터 7월3일까지 회원 변호사 403명에게 진행한 온라인 의견 조사 결과 185명(45.9%)은 '보완수사권 부분 존치', 85명(21.1%)은 '전면 존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67%가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보완수사권을 인정할 경우 강제수사도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은 64.9%로, 강제수사를 금지하고 임의수사만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35.1%)보다 많았다.

대검찰청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에서 보완수사권이 존치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대검은 "보완수사권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검사의 중요한 책무이자 사법 통제의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검사의 보완수사는 사법경찰관(사경)이 수사 개시해 송치한 사건의 기소 여부 판단을 위해 보충적으로 이뤄지며 이는 '수사·기소 분리' 취지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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