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브라질, 1977년의 냄새 [비장의 무비]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출연: 와그네르 모라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 한 대가 한적한 길가 주유소에 들어선다. 차를 세우려는데 저만치 떨어진 흙바닥에 누운 사람이 보인다. 대충 덮어둔 종이 쪼가리 밖으로 삐죽 두 발이 나와 있어 사람인 걸 알았다. 그렇게 방치된 지 족히 며칠은 되어 보이는 시체다.
“기름 넣으시게?” 아무렇지 않은 듯 다가온 주유소 점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며칠 전 칼을 들고 와 기름을 훔치려다 다른 점원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단다. 도망친 점원은 이제 막 시작된 카니발을 즐기러 갔고, 신고받은 경찰도 카니발 때문에 일손이 달린다며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거다.
주유를 끝내고 떠나려는데 그제야 나타난 경찰. 힐끔 시체 한번 쳐다보더니 차 안의 남자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면허증은 있는지, 차에 총이나 마약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꼬투리 잡을 게 없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본심을 드러내는 경찰. “이봐요 선생. 경찰 카니발 기금에 기부 좀 하시지?”
돈이 없다는 남자에게서 대신 담배 한 갑을 받아 챙기는 경찰, 냄새를 맡고 하나둘 시체 주위로 몰려드는 들개 떼, 코를 틀어막으며 개들을 내쫓으려 뛰어가는 점원을 뒤로하고 다시 운전을 시작하는 남자의 선글라스 낀 얼굴 위로 영화 제목이 새겨진다. 〈시크릿 에이전트〉.
이제 겨우 10분짜리 오프닝 장면이 끝났을 뿐인데 나는 이미 1977년 여름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왔다. 주인공 마르셀루(와그네르 모라)의 비좁은 노란색 비틀에 함께 올라타 브라질 북동부 도시 헤시피로 가고 있다. 카니발의 혼돈이 시대의 혼란과 뒤섞인 그곳에 도착해 맨 처음 목격한 광경은, 거대한 상어 배를 갈라 사람 다리를 꺼내는 장면. 그때 직감했다. 앞으로 남은 145분의 이야기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겠구나. 나는 이 영화를 아주, 많이, 오래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번 작품의 무대는 1977년 브라질이 될 거야.” 감독이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그랬다. “아, 독재 영화?” 1964년에 시작해 1985년 막을 내린 브라질 군사정권 시기 이야기는 늘 그렇게 불린다. 억압·감시·납치·고문·실종·은폐가 남긴 상처와 비극을 재현하면서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까지 그려내는 영화겠지, 이미 다 본 것처럼 말한다. 그게 싫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난 1977년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 시기의 질감을 기억하고, 당시 브라질이 어떤 감각으로 다가왔는지도 기억한다. 흔히 말하는 ‘독재 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그 시대의 어떤 논리 자체를 포착하고 싶었다(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
장르는 스릴러. “미국 영화 같은 것이 되고 싶은” 여느 브라질 영화들과 달리 “놀라울 만큼 브라질적인” 스릴러. “거칠고, 더럽고, 잔인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한”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는 고향 헤시피로 돌아오기 전 마르셀루의 행적이 밝혀지는 중반 이후부터 더 종잡을 수 없는 길을 간다. 내내 스릴러가 맞지만 끝내 스릴러만은 아닌 형태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한 시대의 비극이 통째로 품에 안겨 있는 것이다.
제78회 칸영화제 감독상 포함 4개 부문 수상. 전 세계 각종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가 지금까지 103개. 수많은 극찬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 줄 평은 이 두 개. “장르와 톤, 관객의 기대를 자유롭게 비트는(Screen Rant).” “그 자체로 매력적인 난장판(The Wrap)”.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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