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갈림길 ‘불평등 완화’냐 ‘응원봉 배신’이냐 [.txt]
노동-여성·청년 연대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제안
“부동산·금융자산 과세 강화로 불평등 완화해야”

최근 한국 사회 불평등이 일제강점기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보고가 나왔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주도해 만든 세계불평등연구소가 지난해 말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이 일제 말 소득 집중도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학자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불평등체제를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2024년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통해 한국 사회가 불평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지배 질서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최근 후속작 ‘평등사회 프로젝트’에서는 불평등에서 벗어나 평등사회로 가는 이행 전략을 다뤘다. 두권이 한국 사회 불평등의 전모를 밝히고 대안을 제시한 세트 구성이자 저자로서는 필생의 작업이었을 성싶다.
서문부터 “가볍고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며 “통계치와 도표가 많다”고 자락을 깐다. 대중서를 표방한 전작에서도 통계와 도표 때문에 가독성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보란듯이 복잡한 수치를 본문에 다수 배치했다. 신뢰도가 높은 자료를 대량으로, 꼼꼼히 검토했으니 대항 가설을 수립하는 자가 있다면 기꺼이 대결해 보겠노라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책의 앞부분은 전작에 이어 불평등 실태와 이데올로기 지형을 검토한다. 저자의 분석을 보면,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평등 사회의 실현 가능성은 의심한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부 개입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복지를 위한 증세를 거부하는 등 모순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작은 개혁들로 신뢰를 쌓고 개혁의 수위를 높여가는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벤치마킹하는 미국은 사실 서구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불평등한 나라다. 2025년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의 세계노동인권지수 자료를 보면, 스웨덴은 노동기본권이 잘 보호되는 1등급 국가인 반면 미국은 노동기본권이 위협받는 4등급을 받았다. 이 책의 지향은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 같은 성평등 복지 사회다. 스웨덴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평등하다. 20세기 초 심각한 계급 갈등이 있었지만 수십년에 걸쳐 노동자들의 고용·소득 안정성을 강화했으며 복지는 보편주의 원칙으로 한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허물어 노동시장의 성평등까지 도모했다. 열쇠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 불평등 피해자들과 손잡은 연대에 있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정치세력화는커녕, 비난에 시달린다. 저자는 ‘정규직 이기주의’ 같은 담론이 양대 노총에게 과도한 낙인이자 정치적 공격이며 민주노조 운동은 이익집단이자 계급 조직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녔다고 분석한다. 민주노총은 특히 분열을 봉합하고 비정규직, 여성, 청년, 중소기업 노동자 등 전체 노동자의 계급 이익과 사회적 책임감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 개혁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 창출, 청년 기초자산제를 통한 사회적 상속 실현 등이 제시된다.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다룬 책의 뒷부분에서 주장은 한층 선명해진다. 저자는 성차별과 불평등의 명백한 피해자인 여성 노동자, ‘수저 계급사회’에서 각자도생을 선택한 청년들에게 희망을 건다. 여성 중하층은 불평등 체제에 비판적이며 평등 사회 대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변혁의 주체가 될 만하며, 청년 세대는 일자리 부족, 주거, 결혼 등 당면 과제에 대해 공감 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응원봉도 촛불의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관건은 강건한 노동-여성·청년의 평등사회 동맹의 형성이다.” 저자는 이재명 정부가 갈림길에 놓였다고 본다. 부자 감세의 길로 간다면 ‘응원봉 민중’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것이며, 부동산 보유세 중심의 부자 증세 정책을 펼친다면 자산 불평등 완화와 소득 불평등 심화를 억제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촛불 공약’인 사회·경제 개혁을 외면한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며, 개혁을 견인하고 감시하는 강력한 동맹이 만들어진다면 조세 부담에 대한 저항까지 돌파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응원봉 광장’을 경험한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흐름에서 저자 또한 희망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돈 복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주가가 수직 상승했다. 자산가에게 기회였지만, 노동자의 근로소득은 우스워졌다. 뒤늦게 뛰어든 약자들은 출렁이는 증시에 현기증을 느낀다. 주가 급등으로 자산 소득 불평등 심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까닭에,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 긴급하고도 절박하게 제도 개혁을 당부한다. “자산·소득 불평등 심화를 억제하기 위한 조세 개혁이 시급하다”며 “부동산 보유세와 금융 자산 과세를 강화하고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의 누진성을 제고하며, 기업의 조세 부담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우선 삼성전자의 성과급 노사 합의가 ‘대승적 결단’이 아니라 ‘최악의 담합’이라 강하게 비판한다.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공정성의 최소수혜자 보호 원칙에도 배치된 불공정성의 극치”였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2025년 한해 동안 받은 세제 혜택만 12조8000억원에 달한다. 저자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초과 세수는 핵심 전략 산업 연구개발과 투자에 집중하고 공공 임대주택, 공공병원, 공공 보육과 요양 돌봄시설 등 사회서비스 인프라 구축에 우선 재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초과이윤은 사회적 기금 형태로 전환할 것을 마지막으로 제안한다. 증시가 무너질 때도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 또한 불평등 체제의 희생자인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비판적인 사회학 저서가 잘 보이지 않는 요즘, 정치권과 노동계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632쪽의 대작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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