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행기는 50년째 시속 900㎞로 날까···기계비평가, 이번엔 ‘속도’를 비평하다[책과 삶]
‘사회적 조건’의 집합으로 속도 분석
“배달 기사의 속도는 자본의 속도”
서울의 개발에서 볼 수 있는 변화
“도시는 선” 속도의 공간으로 파악
빠름이 낳은 쏠림…‘정체’의 탄생

속도비평
이영준 지음 | 문학동네 | 400쪽 | 2만원
문학비평, 음악비평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엔 영화비평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요즘은 음식비평, 건축비평도 자주 볼 수 있다. 비평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니, 비평의 영역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속도’도 비평의 대상일 수 있을까. “기술·기계·도시·이미지·속도 등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시각적, 물질적 조건들에 대해 탐구”해온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그렇다고 본다. 그는 전작 <기계비평>과 대구를 이뤄 <속도비평>이라 이름 붙인 신작에서 세상의 많은 현상을 ‘속도’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뿐이 아니다. 혈류, 글씨, 강, 바다, 로켓, 컴퓨터도 속도의 관점에서 비평한다.
얼핏 쿠팡의 로켓 배송, 지나치게 빠른 한국식 일처리, 2배속 넷플릭스 시청 등을 비판하는 책인가 싶다. 저자는 “속도를 추구하다 비인간화됐다”는 상투적 지적을 하고 싶지 않다고 먼저 밝힌다. “단지 속도를 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도야말로 오늘날 인간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짜장면 배달기사의 사례로 책을 시작한다. 배달기사는 식당, 배달앱, 플랫폼 노동, 손님의 연쇄 속에 존재한다. 속도의 정의란 “한 사물이 움직일 때의 빠르기”지만, 이 책은 속도를 “그것을 가능케 한 여러 사회적 조건의 집합”으로 파악한다. 이른바 ‘속도의 체인’이다. 그러니 아무리 최신 교통수단을 택했다 하더라도, 속도의 체인을 고려하면 결국엔 느려질 수 있다. 공항까지 이동하는 데 지독한 교통 정체가 발생했다면, 공항 검색대 직원이 모자라 대기 줄이 하염없이 길어졌다면, 비행기 정비가 지체됐다면, 초음속 여객기라도 소용이 없다.
속도에 대한 단상을 펼치기에 서울만큼 적당한 도시도 없다. 한국전쟁 이후 인구는 급속히 늘었지만 교통 인프라는 거의 그대로였다. ‘교통지옥’이란 말이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1966~1970년의 길지 않은 재임기에 서울의 속도를 순식간에 바꾼 이는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었다. 수송장교 출신인 그는 “도시는 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도시를 선이 쭉 뻗은 속도의 공간으로 본 것이다. 사실상 사대문 안으로 한정됐던 서울 공간은 김현옥이 착공한 미아리고개 4차로, 청계 고가도로, 북악 스카이웨이, 남산 터널 등과 함께 확장됐다.


도시가 속도를 낳은 동시에 속도를 방해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빠른 속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정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정체에 짜증 내는 도시인들은 자신이 정체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종종 망각한다. 저자는 “정체는 속도의 타자가 아니라 속도의 다른 면”이라고 정리한다.
속도의 시각으로 자연 공간도 분석할 수 있다. 강물의 속도는 자연의 것이었지만, 인간은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댐, 보, 다리 등 흐름을 막는 인위적 장치가 곳곳에 있다. 특히 한국의 강은 하상계수(한 지점에서 최소유량과 최대유량의 비)가 극단적이다. 한강 393, 낙동강 372, 양쯔강 22, 템스강 8이다. 한국에서 홍수 피해가 심했던 이유이자, 이를 막기 위한 개입이 강력했던 이유다. 한국인의 주요 취미 중 하나인 등산도 ‘속도의 체인’으로 바라볼 수 있다. 등산객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등산로 입구에 내려 등산한 뒤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도시로 돌아간다. “산 전체가 하나의 벨트컨베이어 시스템”이 된 것이다.
제트엔진은 “극단적인 성능을 가진 초월적인 기계”다. 그 메커니즘과 운용조건이 너무나 가혹해서, 이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나라도 드물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면 누구라도 쉽게 제트엔진을 단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 산업 생산력의 힘을 보여준다.
기술은 이토록 빨리 발전하는데 여객기 운항속도는 그다지 빨라지지 않았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다. 영불 합작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1969년 취항해 음속 2배 속도로 운항했다. 하지만 이제 콩코드는 퇴역하고 그보다 느린 속도의 여객기만 살아남았다. 서울에서 뉴욕까지 15시간의 운항 시간 동안 비행기가 시속 900㎞에서 더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은 이유는 이 속도가 비용, 이윤, 기계적 수명, 안전, 편의성 측면에서 최적이기 때문이다.
속도비평은 삶에 대한 성찰로까지 이어진다. 유체 속을 나는 비행체 뒤쪽에는 공기가 흐트러져 ‘와류’가 생긴다. 저자는 앞을 향해 속도를 내다 저지르는 비리, 갑질, 차별 등을 와류에 비유한다. “우리는 앞만 보고 헤쳐나갈 것이 아니라 뒤를 보면서 어떤 와류가 생기는지, 그것을 해소할 수는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 성찰, 즉 뒤돌아봄이다.”
너무 빠른 교통 속도를 진정시키는 교통 정온화(traffic calming) 개념, 극초경량 실내비행기 마니아 등이 책에서 소개되지만, 결국 현대 한국 도시인의 생활에서 속도와 관련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현상은 배송 서비스다. 밤에 주문하면 새벽에 물건이 오고, 수산시장에 가야 볼 수 있던 신선한 회를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저자는 “오토바이 기사의 속도는 결국 이들 금융자본의 속도”라며 “속도기계와 금융자본이 결합”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인문’으로 분류됐지만, 일정 부분 ‘공학서적’처럼 보인다. 과학 이론과 공학 실천에 대한 분석, 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섞여 있다. 도시부터 산, 강, 바다까지 매우 다양한 대상을 ‘속도’라는 잣대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독특하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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