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채 쓰라”던 데니스 존슨의 마지막 소설집 [.txt]

임인택 기자 2026. 7. 10. 05: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아들’을 고전 반열에 올린 미국 작가
25년 만의 소설집이자 투병 중 완성한 유작
단편 5꼭지로 “열망과 죽음 가득한 생애 관통”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이 젊어 글을 쓰던 때의 모습. 내년 5월이면 그가 타계한 지 10주기가 된다. 1949~2017. 다산책방 제공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은 국내에는 어지간히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21세기 전후 미국에서 젊은 작가와 독자들에게 ‘신흥 종교’처럼 추앙받아 왔다는 사실부터 그러할 터. 1980년대 들어 가난, 중독, 범죄, 파탄 따위 암연한 현대 도시 사회를 냉담하게 재현하는 ‘더티 리얼리즘’(Dirty Realism)이 주창되던 당대 계보에서 존슨은 하나의 정점이었다.

이젠 대학 창작 수업의 교과서로도 쓰이며 현대 미 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예수의 아들’(1992), 전미도서상을 받은 ‘연기의 나무’(2007),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의 동명 원작인 ‘기차의 꿈’(2011, 퓰리처상 최종 후보) 등이 그의 대표 소설로 꼽힌다. 제아무리 독창적, 독보적인들 작품을 흉내 낼 누군가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흉내 낼 자가 나오기는 어렵겠다.

외교관의 아들로 1949년 서독 시절 뮌헨에서 태어난 데니스 존슨은 1960년대 아이오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이 대학의 유명한 작가 워크숍(일종의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살 때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수업을 듣던 이가 21살 알코올 의존자로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삶은 요동한다. 한동안 알코올, 마약 중독자였고,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으며, 범죄자들과 어울렸다. 사회 부적응자는 기실 ‘부적응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현지 출간된 데니스 존슨의 전기 제목이 ‘노골적이고, 자멸적인 몸짓’(Flagrant, Self-Destructive Gestures)이다. 내년이면 존슨이 타계한 지 10주기가 된다. 과거 약물 주사기를 돌려쓴 데 기인한 간염이 그를 만 68살이 되기 두달 전 영면시켰다.

거칠게 방랑하는 마약 중독자들을 주인공 삼아 자신의 청춘 시절을 녹인 작품이 연작 소설집 ‘예수의 아들’이다. 술과 약은 끊었으나, 삶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80년대 말, 두번째 처가 떠났고(그는 세번 결혼했다), 필리핀 취재 여행 중 말라리아로 죽다 살아났으며, 소설은 내놓은 게 없었다. 그 진창에서 건져 올린 시대 걸작이 ‘예수의 아들’이었으니, 구제 불능의 방랑은 구원을 향한 발버둥과 같다.

이번에 국내 소개된 ‘바다 여인의 선물’(2018)은 ‘예수의 아들’ 이후 25년 만에 나온 존슨의 두번째 소설집이자 와병 중 완성한 유작이다. ‘예수의 아들’이 20대를 눌러 담았다면, ‘바다 여인의 선물’은 삶 전체를 응축하여 또 펼쳐낸다. 단편으로 가능한 일인가. 존슨이 출판사에 마지막 원고를 보내며 남겼다는 말이다. 그럴 만하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바다 여인의 선물 l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다산책방, 1만8000원

단편 ‘교살자 밥’은 약에 취해 사고를 내고 수감된 18살 ‘나’의 얘기다. ‘예수의 아들’의 원전처럼 방황하는 삶의 시작을 알리고 운명을 예감시킨다. 1967년이 배경이니, 존슨의 실제 나이다. ‘무덤 위의 승리’는 죽어가는 이를 돌보다 죽음을 기다리는 67살 ‘나’의 얘기다. 존슨의 이력처럼 창작을 가르치는 노작가가 화자다.

“각자의 우주가 (…) 고작해야 카운티 감옥만 한 크기”라는 자각과, 감옥에서 만난 단짝 둘을 두고 “어쩌면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멋대로 구는 천사였나 싶기도 하다” 느끼는 18살 나, “내가 범죄 수준으로 어리석었던 젊은 시절에 그려본 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각과, 그럼에도 “이미 어른이 됐으면서 다른 (늙은) 소년들과 친구가 되기를 갈망하는 남자가 정말로 나뿐인가?” 묻는 67살의 나. 보건대, 생애 어느 주기에 있든 열망과 방황과 죽음이 있을망정, 패배가 없다.

다섯 꼭지 가운데서도 단 한편으로 존슨의 삶, 아니 인간의 생애라는 것을 압착한 작품이 표제작이다.

예순셋을 앞둔 ‘나’는 컬럼비아대 졸업 뒤 광고인으로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았다. (작가 자신과 같이) “힘들게 20대를 빠져나오면서, 짧고 불행했던 두번의 결혼 생활” 끝에 52살 일레인과 25년 넘게 산다. 이 시점, ‘나’는 어제오늘 겪거나 떠올린 에피소드 10꼭지를 일기 적듯 나열한다. 고작해야 지난 2년 새 벌어진 파편적 사건들이 그러나 가만하게, 그리고 중층적으로 사랑, 결혼, 친구, 일, 상실, 후회와 믿음, 그리고 어느 때고 동반해 있는 사멸의 의미를 얽어낸다. 그를 따라 감각이, 은유가, 문장이 흘러 삶의 하류에 모여든달까.

술에 취해 제집 명화를 불태운 전 직장 사장, 사형수와 결혼해 그를 위한 거짓말들로 죽음의 무게를 덜어준 매춘부, 지인의 추도식에서 고인에 관한 엇갈린 정보로 결국 추모보다 “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서로 묻기 바쁜 추모객들, 광고인상 시상식에서 업계 옛 동료를 빼닮은 남자와의 묘한 만남까지, 얼핏 심상하고 무관한 일들이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삶의 형상을 적분해 낸다.

20대 초반 “난장판 같은 3년을 보낸 뒤” 이혼한 첫번째 아내와의 에피소드는 슬프고 우습다. 죽음을 앞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를 용서할 수 있길 염원한다. 외도, 권태, 기만 따위 과오를 나는 진심으로 참회하다…가 문득 수화기 너머 상대가 첫번째 아내 이름(지니)이었는지, 혹 두번째 아내(제니)는 아닌지 난처해 한다. 이내 돌이킬 일이 못 됨을 알게 되지만. “지니든 제니든 그녀는 나의 솔직한 사과를 듣고 만족했”고, “어차피 두 여자에게 나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말이다.

눈물 많다던 존슨이 구사하는 유머엔 통찰이 있다. 웃음도, 슬픔도 환각보다 예리한 것이 존슨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다. 감각은 구체적 경험과 더 예리한 관찰을 전제로 한다. 유혹과 중독, 불안과 격정으로 점철된 삶의 소산이랄까. 그가 1969년 시집으로 먼저 작품 활동을 시작해, 논픽션, 희곡, 시나리오까지 넘나들며 창작해 온 동력일 것이다.

시적인 문장이 많다. 그가 창작 강의 때 강조했다는 글쓰기 삼원칙을 상기시킨다. “벌거벗은 채로 쓰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쓰란 뜻이다. 피로 쓰라. 잉크가 너무 귀해서 낭비할 수 없는 것처럼. 망명 상태로 쓰라,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처럼, 그리고 모든 세부 사항을 되짚으라.”

‘무덤 위의 승리’ 속 노작가의 친구가 수십년 전 헤어진, 그러나 이제 치매에 걸린 전처와 죽기 전 나누는 사랑은 얼마나 부조리하게 아름답던가. 그들의 생애 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미래도 과거도 없는 세계, 꿈처럼 논리도 없는 세계”. 그곳에 존슨도 이제는 있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