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시의 마음’에 길이 있습니다” [.txt]

최재봉 기자 2026. 7.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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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사람 l 이문재 시인
시집과 산문집에서 나란히 ‘시의 마음’ 강조
“다른 문제의식, 다른 관점이 다른 미래 열어”
매일 아침 새로 쓴 시를 지인들에게 배달도
정년퇴직 뒤에도 이런저런 일로 바삐 지내는 이문재 시인. “지금 여기가 낙원이라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즐기겠다. 폭풍우 한복판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겐 없다”는 말로 바쁜 까닭을 설명했다. 난다 제공

이문재 시인은 올 상반기에 두권의 책을 냈다. 1월 말에 일곱번째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문학과지성사)를 냈고, 5월에 신문 칼럼을 모은 산문집 ‘남들이 내려올 때 올라갔다’(난다)를 내놓았다. 시와 칼럼으로 성격이 사뭇 다르지만, 두 책의 머리말에서 그가 나란히 ‘시의 마음’을 강조하는 게 눈에 뜨인다. 일정상 비대면 인터뷰를 하면서 ‘시의 마음’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마음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물론 멀리 있는 사람, 나아가 사물, 기계와 기술 그리고 천지자연의 처지가 되어 보는 마음이 ‘시의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극단적 갈등, 단절, 소외, 고독은 시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내면에서 인간관계, 지구 생태계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시의 마음이 절실한 때입니다.”

‘시의 마음’이 시를 쓰거나 읽는 데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또 시와 문학이 제일이라는 문학주의적 태도와도 거리를 두는 생각이다. 이문재 시인은 산문집에서 문학평론가 도정일 교수가 말한 ‘문학적 상상력’과 김종철 전 ‘녹색평론’ 발행인이 추구한 ‘공공문학’을 언급하는데, ‘시의 마음’은 오히려 이 두 개념과 통한다고 보아야 한다. 도 교수가 생각하는 문학적 상상력이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에 문학 또는 문학적 마음가짐이 특히 요긴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면 공공문학이란 무엇일까.

“시뿐만 아니라 미디어에 실리는 모든 글쓰기가 공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즉 황금률을 구현하는 것이 시의 마음이라면, 시는 당연하게 공적인 맥락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모든 좋은 문학은 공공문학입니다. 공감하고 교감하는 능력이야말로 호모사피엔스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능력이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신기술에 의해 급속하게 퇴화하고 있습니다.”

시집과 산문집의 제목 역시 ‘시의 마음’에서 멀리 있지 않다. 시집 제목이 비롯된 작품 ‘너도 봄날’에는 “꿈을 꾸게 하는 꿈 말해주기// 시를 쓰게 하는 시 서로 읽어주기”라는 구절이 나온다. 병렬과 반복을 통한 심화라는 점에서 여기 나오는 ‘꿈’과 ‘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인의 부연설명은 이러하다.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습니다. 시를 쓰게 하는 시, 노래를 부르게 하는 노래, 삶을 살게 하는 삶이 있듯이, 삶의 모든 영역에 롤 모델이 있습니다. 꿈을 꾸게 하는 꿈은 일반적인,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핵심적이고 그래서 보편적인 꿈이겠지요. 동심원의 중심, 강물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산문집 제목은 지리산 자락에 살며 사진을 찍는 이원규 시인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다른 사진가들은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는 바로 그때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건진 작품들이 안개 속에서 몽환적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야생화를 담은 ‘몽유운무화’ 연작이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밤하늘의 별과 지상의 나무를 한 프레임에 담는 ‘별나무’ 연작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이문재 시인의 설명이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시의 핵심입니다. 시만이 아니겠지요. 다른 문제의식, 다른 관점이 다른 미래를 열어갑니다.”

다른 문제의식, 다른 미래의 핵심에 농업이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전형적인 ‘시의 마음’이라 하겠다. 의표를 찌른다는 점에서다. 산문집의 여러 곳에서 그는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빈약한 식량자급률을 걱정한다. “식량과 에너지를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는 지금 상태에서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수입 경로가 막히면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온다. 반도체보다, 탱크보다 농업이 더 중요하다. 발전소를 짓는 일보다 죽은 땅을 회복하는 일이 더 시급하고 절박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의 이런 생각에는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과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김종철 선생님의 글쓰기와 여러 활동을 통해 산업 문명의 근본적 폭력성, 땅과 소농의 재발견, 우애와 환대에 기초한 공동체, 민주주의와 생태 문명의 깊은 연관성 등을 배웠습니다. 지난달 25일이 선생님 6주기였어요. ‘글을 어렵게 쓰지 말라’는 선생님의 일침이 귀에 생생합니다.”

그가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과 ‘60+기후행동’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김종철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그는 지난해 2월 말 대학(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정년퇴직했지만, 글쓰기와 시 창작 강의는 계속 하고 있다. ‘나를 위한 글쓰기’ 강좌는 대학은 물론 각종 시민단체에서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나를 위한 글쓰기’는 2010년에 시작한 자기 성찰 에세이 쓰기 프로그램입니다. 지나온 삶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에세이로 재구성하면서 관계를 재발견하는 것이지요. 그간 대학 밖에서만 얼추 800명 가까이 이 글쓰기 강좌를 수료했습니다. ‘녹색평론’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책으로 묶을 계획이기도 합니다.”

시사주간지 기자를 거쳐 대학교수로 수십년 일했으니 이제 좀 쉴 법도 하련만 그는 오히려 더 바빠 보인다. 정년 뒤에 바뀐 것은 없을까.

“‘아침을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봄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시를 한편씩 씁니다. 저도 놀랐어요. 처음에는 서랍에 보관했는데 얼마 전부터 가까운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보냅니다. ‘이른 아침에 갓 지은 시’를 배달하는 일이 새로운 일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침 시 배달’을 사회화하는 방안을 궁리 중에 있습니다. 시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는 시민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시의 마음’이다. 에스엔에스를 하지 않는 시인이 인터뷰 무렵 카톡으로 보내온 시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머리가 아니다/ 뜨거운 가슴이 아니다/ 젖은 눈도 아니다// 손이다/ 손이 먼저다// (중략) // 마음의 온도와 방향을/ 가장 먼저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때로는 가장 늦거나 느리게/ 가리키는 것은 손이다// (하략)”(‘손의 속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l 이문재 지음, 문학과지성사(2026)
남들이 내려올 때 올라갔다 l 이문재 지음, 난다(2026)
올해 시집과 산문집을 잇따라 낸 이문재 시인에게는 북토크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6월에만도 세군데에 다녀왔다. “대부분 지역에 있는 마을책방인데, 다른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마을책방이 요청하면 달려간다. 마을책방이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마을책방이 하나둘 늘어날 때,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 삶의 정치가 살아나리라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난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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