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조롱·혐오…악몽에서 깨어나려면 [.txt]

한겨레 2026. 7.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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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겹겹의 도시 l 최도은 글·그림, 소원나무(2023)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악몽이다.” 아름답지만 슬픈 어른들의 그림책, ‘겹겹의 도시’에 등장하는 말이다. 조롱과 혐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것은 악몽이다. 이 악몽에서 어떻게 깨어날 수 있을까.

“혐오와 조롱, 미움과 불안이 가득한 도시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한숨이 붙은 이 책에는 비명과 슬픔, 상처에 관한 열세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타인이 던진 말에 하루가 온전히 사라진 적이 있다면, 그런 말을 나도 남에게 던진 적이 있다면, 무엇보다 사람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면 당신도 이 책이 풀어놓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말없이 말 많은 책이다. 감정이 절제된 그림들 사이로 온갖 감정이 차오른다. 이 책은 올해 나미콩쿠르(남이섬 국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 퍼플아일랜드상을 받았다.

자꾸 퍼져 나가는 미움의 덩어리 속에서 모두 괴물이 되는 이야기, 끈적하게 달라붙어 자신을 잠식하는 조롱을 벅벅 씻어내려고 노력하지만 되풀이되는 혐오의 말에 결국 빨간 괴물이 되고 마는 사람의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돌의 전설’이다.

커다란 돌을 향해 사람들이 조롱과 혐오를 쏟아낸다. 하하하 웃으면서, 꼭 재미있는 일이라도 하듯이. 그런 모진 말들은 가시가 되어 돌의 몸에 박힌다. 눈물 흘리는 돌에게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시 하나를 빼 주니 그리로 눈물처럼 물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조각배를 타고 그 돌 위로 올라가 살아남지만, 물이 빠지자 다시 돌을 홍수의 주범으로 몰아세운다. 도끼와 굴착기를 가지고 나타나 결국 돌을 파괴하고 옭아매 추방하는 사람들…. 출입 금지 팻말이 붙은 곳에서 작아진 모습으로 홀로 누워 눈물을 흘리는 돌의 모습이 마음에 큰 돌처럼 내려앉는다. 광주의 전설이 꼭 이 돌의 전설을 닮았다.

고교야구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응원의 가면을 쓰고 튀어나온 조롱의 말이 화제가 되었다. 정말이지 반복되는 악몽이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가득해야 할 구장 위, 그것도 잔디처럼 풋풋한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충격이 더 컸다. 승리와 기술만 가르치고 역사의 무게와 타인을 향한 존중을 가르치지 못한 탓일까. 협회에서는 단체 기합을 주듯 야구부 전체에 징계를 내려버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이들이 있었다.

페어플레이는 선수뿐 아니라 코치진과 심판 및 관객, 즉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세대론으로 서로를 나누고 교육은 점점 불가능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떳떳한 플레이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가르칠 수 있을까? 자유를 위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순간이 때로 필요하고, 관용이 관용의 역할을 하려면 관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상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타인의 결점을 보고 크게 웃는 것은 자기가 비겁하다는 표시라고 했다. 타인의 결점도 아닌 현대사의 고통을 보고 크게 웃는 것은 사회가 비겁하다는 표시겠다. 책 속 ‘호수의 전설’에는 고기를 낚으려고 했지만 결국 스스로 삼켜지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훗날 학생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 외국 구장에서 인종차별을 겪는다면, 즉 자기 자신이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그때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게 될까. 사실 학생에게는 잘못도 하며 배울 권리가 있다. 문제는 전혀 고칠 생각이 없는 어른들이다.

이진민 정치철학 박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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