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살아있다] 갱도의 막다른 곳…막장에 새겨진 검은 땀의 기억

성지은 기자 2026. 7. 10. 05: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4) 석탄박물관 <경북 문경>
폐광 그대로 살린 문화 공간
근대화 밑불 밝힌 석탄 역사
사진 속 ‘마지막 광부들’ 시선
‘거미열차’로 떠난 시간여행
사택촌 골목 소박한 일상도
오늘을 일궈낸 헌신의 흔적
경북 문경시 가은읍 ‘문경석탄박물관’ 내부에 전시한 ‘마지막 광부들’ 사진. 마스크를 쓴 부분 외에는 탄가루가 묻어 시커멓다. 문경=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막장 드라마, 막장 인생. 오늘날 ‘막장’은 상식 밖의 극단적 상황을 일컫는 말로 쓴다. 하지만 막장은 본래 갱도의 막다른 곳, 광부가 곡괭이를 내리찍으며 석탄을 캐던 일터였다. 목숨을 걸고 땀을 흘려야 했던 그 현장이 자극적인 비하의 수단으로 쓰이자 2009년 당시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막장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지 말아달라고 호소문을 배포하기도 했다.

막장이라는 말에 밴 오해를 씻어낼, 대한민국 근대화의 밑불이 된 산업현장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가 있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굽이치는 산길을 따라 들어서면 연탄을 형상화한 독특한 건물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복합 관광단지 문경에코월드 안에 자리한 문경석탄박물관이다.

연탄을 형상화한 박물관 외관. 문경=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과거 강원 태백·삼척에 버금가는 석탄 산지였던 문경! 그 중심에는 은성탄광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이곳은 1950년 대한석탄공사로 편입됐고, 1964년 석탄 생산량 40만t을 달성할 만큼 번성했다. 하지만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79년 44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화재 사고가 벌어졌다. 비극의 아픔을 뒤로한 채 묵묵히 사업을 영위해갔지만 시대의 변화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유가 안정과 가스 보급으로 연탄 수요가 꺾이면서 은성탄광은 1994년 문을 닫았다.

문경시는 폐광을 그대로 두는 대신, 잊혀가는 근대적 삶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1999년 이 터에 박물관을 새롭게 조성해 문을 열었다. 본관 1층엔 석탄을 비롯한 광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공간이, 2층엔 광부의 일상을 다룬 전시물이 있다. 전시장 한편에는 갱도에서 삶을 바쳤던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구술이 있어 눈길을 끈다. 탄광에서 10년간 근무한 한 노동자의 회고는 당시의 애환을 고스란히 전한다. “병반(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하는 근무)이 힘든데 자다가 일어나 일 가려면 엄청 서글프거든요. (중략) 살아서 못 오는 경우도, 다쳐서 오는 경우도 많으니까 겁이 나서 그만큼 가기 싫더라고.”

갱도 내부에 놓인 전차. 실제 운행하던 차량을 전시해 놓았다. 문경=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특히 발길을 오래 붙드는 건 ‘마지막 광부들’ 사진 전시다. 그 앞에선 쉬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코와 입 주변만 하얗게 남고 온 얼굴이 새까만 탄가루로 뒤덮인 얼굴들.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한다.

건물을 나오면 학예연구사가 가족 방문객에게 추천하는 ‘거미열차’가 기다린다. 열차가 어둠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조명과 연출로 다른 시공간에 빨려드는 듯하다. 차량에 탑승한 약 15분간 석탄의 생성과 채굴 작업 과정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신동락 문경관광공사 학예사는 “이 시설 덕분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어 주말 관람객이 많을 땐 1시간 이상 기다릴 정도로 인기를 끈다”고 했다.

거미열차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면 이곳의 백미인 실제 갱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느 석탄박물관이 모형으로 갱내를 재현한 것과 달리, 이곳은 폐광 전까지 운영했던 은성갱도를 그대로 살렸다. 지금은 통로를 넓히고 조명도 밝혀 두었으나 그 환함이 되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길도 당시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캄캄하고 비좁은 지하였을 테니.

사택촌을 재현한 공간. 일을 마친 광부들이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 문경=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갱도를 빠져나와 조금 더 걸으면 마지막 여정인 야외 사택촌에 닿는다. 1960∼1970년대 탄광촌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재현한 공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일상에 유독 금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여성이 앞서가면 부정 탄다고 믿던 그 시절 미신과 맞물려 출근길에 여성이 앞질러 가면 그날은 아예 발길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노동이었기에 미신에 기대서라도 하루의 안녕을 빌었던 셈이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설 때쯤 한가지 사실이 또렷해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은 깊은 땅속에서 헌신한 광부들의 땀방울을 딛고 만든 유산이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막장’이라는 말엔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탄을 캐내 세상을 밝혀온 이들의 땀이 배어 있다.

그래픽=전현정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