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억 움직이던 '주식 고수', 이젠 우리밀 빵을 굽는다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2026. 7. 1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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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다르마키친 김지영 셰프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 셰프죠. 신문기자 출신이자 식당 '어라우즈'를 운영하는 장준우 셰프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묵묵히 요리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셰프들을 만납니다. 한국 미식계의 최신 이슈와 셰프들의 특별 레시피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김지영 셰프가 경북 구미에 위치한 빵집 다르마키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준우 제공

우리밀로 만든 빵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고정관념이 있다. 거칠고, 무겁고, 떡처럼 뭉쳐 있어 씹기 부담스럽다는 편견이다. 빵의 본고장인 서양의 밀과 달리, 우리 땅에서 자란 밀은 빵의 골격을 형성하는 글루텐 단백질 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제빵사들 사이에서 우리밀 100%로 가볍고 폭신한 식사빵을 만들어내는 건 난제로 통한다.

경북 구미의 한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빵집, 다르마키친에서 마주한 빵은 그간의 상식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에 툭 찍어 맛본 우리밀 빵은 놀랍도록 가벼웠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흩어지며 진하고 구수한 밀의 향을 뿜어냈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깊은 풍미였다. 재야의 숨은 고수 김지영 셰프가 우리밀과 씨름하며 보낸 10년의 세월이 빚어낸 결실이다.


증권계 떠나 찾은 '우리밀 빵'

다르마키친의 포카치아 반죽. 금강백밀, 김천참밀 전립분, 앉은키백밀, 현미를 블렌딩했다. 장준우 제공

김 셰프의 이력은 그가 만드는 빵의 풍미와 텍스처만큼 독특하다. 간호학을 전공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님을 일찍 깨달은 그는 20대 초반 우연히 주식 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남다른 통찰력으로 온라인 증권 사이트에서 연일 종목 적중을 하며 20대 중반의 나이에 수십 명의 회원을 거느린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됐다. 하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에 타인의 수십억 원이 오가는 중압감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증권계를 떠나 2007년 구미에 작은 로스터리 카페를 열었다. 빵과의 인연은 거기서 시작됐다.

"손님들에게 커피와 곁들일 빵을 내고 싶은데, 서울에서 냉동 생지나 빵을 택배로 받아쓰려니 제 성에 안 차는 거예요. 하나라도 내 손으로 직접 구워봐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빵을 굽기 시작했죠."

김지영 셰프가 경북 구미 빵집 다르마키친에서 빵 반죽을 옮기고 있다. 장준우 제공

김 셰프가 굳이 어려운 우리밀을 고집하게 된 건 건강 때문이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스트레스로 수술까지 해야 할 병이 찾아오자 그는 수술 대신 식단 관리를 통한 자연 치유를 선택하면서 유기농 제품과 건강식에 눈을 떴다. 자신이 먹기 위해 그리고 손님에게 내기 위해 화학비료나 방부제에서 자유로운 우리밀을 선택했다.

건강한 우리밀로만 빵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는 뚜렷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수입밀 반죽이 발효를 거치며 둥글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면, 글루텐이 천성적으로 부족한 우리밀 반죽은 마치 달걀프라이처럼 바닥으로 푹 퍼져버리기 일쑤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밀로 유럽식 하드 계열 빵을 만드는 데이터 자체가 없었어요. 처음 연 빵집 '여여브레드'에서는 유기농 수입밀과 우리밀을 5 대 5로 섞어 썼죠. 수입밀의 골격과 우리밀의 풍미를 모두 잡기 위한 타협이었습니다."

김 셰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50%였던 수입밀의 비중을 49%, 48%, 45% 정도로 아주 느린 속도로 줄여나갔다. 수입밀을 줄이다가 빵이 퍼지면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비율을 조절하고, 반죽에 적응하면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더딘 걸음이었다. 그렇게 수입밀을 0%로 만들고 완전한 100% 우리밀 빵을 완성하기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우리밀의 새로운 매력

김지영 셰프가 김천참밀 통곡을 손에 담아 보이고 있다. 장준우 제공

김 셰프의 지난 10년은 곧 우리밀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치열한 여정이기도 하다. 그가 전국 각지의 농가를 누비며 연구한 우리밀의 세계는 생각보다 다채롭다. 크게는 글루텐이 적은 대신 고유의 구수한 풍미가 압도적인 앉은키밀, 찰밀, 검은밀 등의 '재래종'과, 제빵에 적합하도록 단백질 함량을 높인 금강밀, 백강밀, 황금알 등의 '개량종'으로 나뉜다. 김 셰프는 특유의 단맛과 농후한 향을 지닌 유기농 금강밀을 반죽의 뼈대로 삼고, 김천과 의성 등지에서 자연재배로 기른 재래종 밀을 섬세하게 블렌딩한다. 우리밀 생태계를 지키는 농부들의 땀의 결실이 그의 손을 거쳐 완벽한 식감과 풍미의 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 다채로운 밀을 다루기 위해 그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법론을 일궈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수입밀을 다루듯 우리밀을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업계에 만연한 저온숙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밀에 글루텐이 적다는 건 그만큼 미생물이 분해할 단백질이 적어 발효가 훨씬 빨리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수입밀 다루듯 장시간 저온숙성을 고집하면 빵이 퍼지고 힘을 잃게 된다.

반죽 시간도 획기적으로 짧다. 치댈수록 글루텐이 형성되는 수입밀과 달리 우리밀은 오래 반죽하면 도리어 조직이 끊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단점을 억지로 극복하려 하기보다 재료의 특성 안에서 최대의 퍼포먼스를 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 매장에서 직접 밀을 빻아 100% 진짜 통밀인 전립분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구수한 향과 영양을 온전히 살려냈다. 김 셰프는 우리밀의 매력을 '스페셜티 커피'에 비유했다.

"처음 스페셜티 커피가 등장했을 땐 대중이 그 산미와 향미를 낯설어했지만 좋은 커피에 익숙해진 뒤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잖아요. 우리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밀이 가진 특유의 구수함과 먹고 속이 편안한 경험을 하고 나면 수입밀이나 다른 밀로 만든 빵이 다르게 보일 거라고 믿어요."


'내가 먹고 싶은 빵'이 기준

금강백밀, 김천참밀 전립분, 앉은키백밀, 현미를 블렌딩한 다르마키친의 대추야차 치즈 빵. 장준우 제공

다르마키친의 메뉴는 대추야자가 들어간 파삭한 빵, 리코타 치즈를 품은 부드러운 빵 등이다. 인기 품목은 오픈 초창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김 셰프는 오픈 이래 한 해도 똑같은 빵을 구운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겉보기엔 같은 빵이라도 그 속을 채우는 밀은 매년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일반 우리밀에서 유기농 우리밀로, 다시 단일 농가의 유기농 밀과 자연재배 밀로 끊임없이 베이스 밀의 조합을 업그레이드했다. 소비자는 미세한 퀄리티의 변화를 단번에 알아채기 힘들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 조절이야말로 다르마키친의 진가다.

'빵은 이래야 한다'는 고집보다는 '이런 빵을 먹고 싶다'고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곧 빵으로 표현된다. 사워도우 같은 빵에는 천연발효종을 쓰지만 지나치게 시큼한 맛이 우리밀이 가진 구수함을 가릴 수 있기에 그는 신맛을 조절한다. 시큼한 산미를 기대하고 사워도우를 샀다가 먹어보곤 고개를 갸우뚱하는 손님도 더러 있다.

김천참밀전립분(자연재배 유기농 토종밀) 100%로 만든 캄파뉴빵(아래)과 금강백밀, 김천참밀 전립분, 앉은키백밀, 현미를 블렌딩한 포카치아 빵(위). 장준우 제공

다르마키친은 일주일에 단 3일만 문을 연다. 새벽 2시 반부터 시작되는 고된 제빵 노동 속에서 삶과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매일 최대치로 빵을 구워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빵이 모자라서 돌아가는 손님을 보면 마음이 조급했죠. 하지만 결국 내가 행복해야 빵도 맛있게 구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숫자보다 오늘 나의 행복이 훨씬 더 중요해요."

마음을 비우자 역설적으로 빵의 퀄리티는 더 높아졌다. 전국 각지에서 그의 빵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고, 전체 매출의 40%가 택배로 전국에 뻗어나간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일부러 알고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소화가 잘되어 더부룩하지 않다는 손님들의 피드백은 그가 매일 새벽 오븐 앞을 지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우리밀 베이킹을 시도하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김 셰프는 말했다. "빨리 결과를 내려 하지 마세요. 남들이 좋아할 만한 빵, 유행하는 빵을 좇기보다는 내가 진짜로 먹고 싶은 빵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자기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영 셰프가 경북 구미 다르마키친에서 빵 반죽을 오븐으로 옮기고 있다. 장준우 제공
[레시피] 드라이 토마토 샌드위치
<재료>
치아바타 1개, 완숙토마토 2~3개, 하바티치즈 1장, 임실치즈 20g,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10ml, 소금 약간, 후추 약간

<만드는 법>
1. 완숙토마토는 열십자로 4등분하여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2. 80도 오븐에서 12시간 정도 말려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에 버무려둔다.
3. 샌드위치용으로 자른 치아바타 밑면에 하바티치즈 1장을 깔고 2~3㎜ 두께로 슬라이스한 임실치즈를 올린다.
4. 말려둔 토마토를 가지런히 올린 후 윗면을 덮는다.
5. 220~230도로 예열한 오븐에 통으로 넣고 6분 정도 구운 후 잘라 접시에 담는다.

장준우 어라우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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