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봇은 왜 소금쟁이를 따라 해?… "쓸모없어 보여도 미래 산업 된다" [2026 차이나 리포트]
"반값·이틀 납품, 중국 생태계 압박 사실"
"결국 로봇으로 승부...한국 기회 틈 있어"
"실패하더라도 낯선 가능성 지지해줘야"
"서울대 로보틱스 연구소, 안전망 맡아야"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멋진 도전이다."
2015년쯤이었을까.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연구실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물 위를 뛰는 소금쟁이의 움직임을 로봇으로 구현하겠다는 공언과 함께였다. 당장 공장에 팔 수 있는 산업용 로봇도, 눈앞의 시장 수요가 있는 돈 되는 기술도 아니었다. 그러나 조 교수가 보기엔 물 위에서 튀어 오르는 곤충의 원리를 알아내 로봇으로 구현하는 일 자체로 가치 있는 '멋진 도전'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렸다. 로봇 연구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 교수는 종이접기 원리를 활용한 로봇도 연구했다. 당시에는 "장난감 만드는 것이냐"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자재로 접었다 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로봇은 사이언스 로보틱스 논문에 단골손님이 됐다.
그는 지금도 한국 로봇공학의 '기회'를 말하면서 그때를 떠올린다. "남들이 당장 쓸모없다고 판단하는 연구를 할 수 있어야 미래의 산업도 생긴다." 출발점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아이디어가 곧 제품 되는 중국 생태계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조 교수는 2016년 중국 선전의 제조 현장을 둘러본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나라가 창업하지 않으면 망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선전에는 용산전자상가를 몇 배로 키워 놓은 듯한 공간에 드론과 휴대폰, 로봇 부품을 만드는 수많은 업체가 모여 있었다. 필요한 부품을 찾고 설계·가공업체를 연결하는 과정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이뤄졌다. 중국 드론 하면 한두 개 기업을 떠올리지만, 그 뒤에는 수백 개의 관련 업체가 부품과 공정을 나눠 맡고 있었다. 조 교수는 "중국은 똑같은 것을 반값에, 하루이틀 안에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중국이 한국을 이미 모든 면에서 앞질렀다고 보지는 않는다. 로봇 기술과 연구 실력만 놓고 볼 때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중국이 많이 따라왔지만 아직 추월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물론 자만이 아니다. 그는 연구실 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다양한 로봇 제품 생산으로 확장되는 생태계는 중국이 분명 앞서 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중국은 휴머노이드와 드론처럼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에 대규모로 자금을 투입하고, 학생 선발부터 창업 공간, 멘토, 시제품 생산 공장, 투자조합까지 연결한다"고 말했다. 연구 역량의 우위가 남아 있는 지금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면, 한국이 기술 경쟁에서도 결국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그는 놓지 않는다.
최근 중국 기술 굴기에 대한 위기의식은 학계 안팎으로도 번지고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이 중국 과학기술 패권에 맞서 '글로벌 선도 기술 분석 및 전략 도출을 위한 연구 단체'를 신설하는 것(본보 6월 11일 자)도 이 같은 맥락이다. 특히 본보 창간 72주년 기획 '차이나 리포트'를 보고 매년 1억 원을 서울대 공대에 기부(본보 6월 25일 자)하기로 한 독지가가 등장할 정도로 '위기감'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이 기부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년 넘는 대규모 투자로 일궈낸 기술 굴기 앞에, 한국 과학기술이 영영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고 했다.
"결국 로봇에서 승부...한국, 기회의 틈 있다"

조 교수는 중국의 질주가 곧 한국의 패배를 뜻한다고 보지 않는다. 중국 로봇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미국 등 주요국이 보안 문제와 국제관계 리스크 때문에 중국산 로봇 도입을 주저하는 상황이라며, 이것이 오히려 한국에는 기회의 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이라는 '뇌'를 얹을 하드웨어를 찾고 있는 만큼, AI 시대의 최종 승부도 결국 로봇에서 갈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또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을 단순히 따라가는 건 답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휴머노이드'로 대표되는 로봇 산업의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로봇이 단순히 사람을 닮은 기계만을 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낙상 위험이 큰 노인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 장애인이 혼자 식사하도록 돕는 보조기기, 사용자가 기술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장치도 로봇이라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기술은 멋있어 보이려고 하면 안 된다"며 "갑옷처럼 보이는 기술보다 안경이나 렌즈처럼 자연스럽게 쓰이는 기술이 더 멋진 기술"이라고 했다. 지금의 휴머노이드 열풍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 미래 로봇의 형태를 미리 정해놓고 국가 자원을 몰아주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기회를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면 사람이 모이고, 그 안에서 좋은 연구 주제, 새로운 기술은 알아서 나온다"고 말했다.
선대 공학자에게 배운 '도전의 공학'

이런 철학은 그의 학문적 이력과 맞닿아 있다. 서울대 기계공학부에 입학한 그는 고(故) 주종남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의 '창의공학설계' 강의를 통해 공학을 바라보는 방식을 배웠다. 1993년 처음 만들어진 이 강의는 학생들이 직접 팀을 꾸리고 문제를 정의해 기계를 설계·제작하는 서울대 공대의 대표 과목이다. 정답을 찾아가는 수업이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며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수업이었다. 조 교수는 "이 수업의 경험이 MIT 유학과 로봇 연구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MIT에서도 그는 비슷한 장면을 봤다. 세계적 석학들이 학생 연구실을 찾아와 완성된 결과물보다 낯선 시도와 가능성을 먼저 들여다보는 문화였다. 그 안에서 남들이 "그게 되겠느냐"고 묻는 연구를 밀어붙이는 사람이 결국 새로운 분야를 연다는 사실도 체감했다. 일본, 미국 등지의 학생들과 팀을 꾸려 로봇을 만들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경험도 그에게 강한 전율로 남았다. 조 교수는 "학생들도 이런 전율을 느껴야 한다"며 "도전적인 일을 해보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도 새로운 것을 하기 어렵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배웠던 창의공학설계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부생에게도 휴머노이드와 인공지능 장비를 직접 만지게 하고, 연구와 교육, 창업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로보컵 대회에는 서울대 학부생 팀이 출전했다. 다른 참가팀이 대부분 대학원 연구실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학생들이 직접 만든 로봇으로 무대에 섰다. 조 교수는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빌 게이츠 세대가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갖고 놀았듯, 이제는 학부 1·2학년이 로봇을 갖고 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해도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연구 안전망 있어야"

올해 출범한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는 이 같은 구상의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조 교수는 초대 소장을 맡았다. 연구소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의 국가연구소 사업에도 선정됐다. 10년간 매년 100억 원을 지원받는 대학 부설 연구소 육성 사업으로, 선정된 8곳 중 로봇 분야는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가 유일하다.
조 교수는 특히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가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로 창업을 했다가도 실패하면 언제든지 연구소로 돌아와 연구를 지속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실패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있어야 새로운 연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이를 위해선 교수는 물론 장비를 관리하고 시제품 제작을 돕는 박사급 기술 스태프, 기업과 연결하고 사업화를 지원하는 전문가까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연구 생태계도 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학부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친 뒤에도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는 것이 당연한 경로처럼 여겨졌다. 이제는 해외 연구자가 한국 연구소를 선택하는 사례도 나온다. 조 교수는 최근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에 MIT 출신 연구자가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한 사례를 언급하며 "서울대에서 박사를 하고 서울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는 흐름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의 젊은 연구자가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에 가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브랜드로의 진화를 그는 꿈꾼다.
조 교수는 한국 로봇공학계와 산업계가 지금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로봇공학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데다, 인적 자원도 그만큼 성장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낯선 문제를 붙잡는 학생,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연구자, 이를 제작과 창업으로 잇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는 때"라며 "지금 한국 로봇공학에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빨리 고르는 일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을 연구와 창업으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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