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의 추상과 진주의 역사 위에 올라탄 한국 현대미술사

인현우 2026. 7. 1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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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3개 전시장 걸쳐 대형 기획전
전시 중심 이성자미술관은 추상미술 선봬
옛 차량정비고에선 사회 현실 묘사한 작품
국립진주박물관은 유물 닮은 현대미술 전시
편집자주
때로는 예술품 하나, 오래된 물건 하나를 보고 싶어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특별한 전시와 그 전시가 펼쳐지는 공간을 소개합니다.
경남 진주시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면의 풍경'전에 소개된 김윤신의 '즐거움의 울림' 연작(왼쪽)과 심문섭의 '제시'. 진주시 제공

서부 경남의 중심 도시이자, 진주성과 남강 유등축제로 유명한 진주시에서 전시장 세 곳에 걸친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진주시가 고향인 한국 현대 추상화가 1세대 이성자(1918∼2009)의 화업을 기념하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국립진주박물관, 근대 문화유산인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에는 현대미술 작가 35명의 작품 총 148점이 들어찼다.

세 전시장을 망라한 전체 전시 제목은 '이미지의 미래들'. 예술감독을 맡은 미디어아트 작가 김기라가 기획했다. 전시장별 특색에 맞게 작품을 배치하되 작가 세대 구분은 지웠다. 김 감독은 "다양한 현대미술의 이미지가 공존하면서 관람객의 재해석을 유도하는 전시가 좋겠다고 생각해,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고 중첩하는 전시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린 '내면의 풍경'전은 이성자의 그림을 중심으로 관람객의 상상을 유도하는 추상회화와 조각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들은 추상적인 미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엮여 있지만 그 출발점은 저마다 다르다. 음양을 주제로 한 이성자의 채색 추상화를 중심으로, 수묵화 기법을 추상화로 연결한 오수환의 작품과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에서 출발한 안상수의 우주적인 문자도 등이 등장한다. 자연의 모습을 출발점으로 삼아 나뭇조각과 평면 회화를 만들어낸 김윤신과 심문섭의 작품도 한자리에 놓였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 내에서 열린 '광장의 기억' 전시 모습. 위에 매달린 걸개그림은 이우성의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이고, 앞에는 이동욱의 설치작품 '존재하는 결합'이 놓였다. 오른쪽 벽에는 서용선의 '기총소사' '병사들' 등 전쟁 소재 역사화가 소개됐다. 바닥에는 전시장으로 리모델링하기 전 남아 있던 철로가 보존돼 있다. 진주시 제공

옛 진주역사 차량정비고에서 진행되는 '광장의 기억'에 나온 작품들은 사회 현실에 직면한 개인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근대 유산이자, 한국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의 성격에 맞춘 것이다. 민중미술 작가 신학철이 젊은 시절에 그렸던 '비상탈출' 연작과 서용선이 전쟁을 소재로 제작한 그림은 한국 역사 속 고난에 찬 개인들의 삶을 증언한다. 이들 그림 앞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작은 인간 모형을 플라스크에 담은 이동욱의 테이블 설치 작품이 놓여 현대인의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 '시간의 중첩'은 현대미술 작품을 박물관 유물처럼 연출하고 있다. 이강소의 흙덩이를 던지듯 쌓아올린 조각(앞)과 노상균의 반짝이는 비늘과 같은 소재로 장식한 불상 등이 박물관 진열장 안에 놓였다. 진주시 제공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 '시간의 중첩'에는 전통적 기법과 소재를 계승한 현대미술 작품을 모았다. 무속을 소재로 한 박생광의 강렬한 채색화, 산수화를 본떠 한국 현대사의 풍경을 묘사한 이세현의 붉은색 그림, 도자기 파편을 금박으로 접합한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시퀸(반짝이 장식)으로 플라스틱 재질 불상을 뒤덮은 노상균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익숙한 박물관 유물을 닮았지만 이를 뒤집듯 재해석한 현대미술 작품이 박물관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묘한 느낌을 준다. '이미지의 미래들' 전체 전시 기간은 8월 25일까지다. 단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이달 26일 끝난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전경

전시의 중심인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은 2015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성자는 30대에 홀로 프랑스로 떠나 미술을 배웠고 '예술적 고향'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업 활동을 해왔지만, 태어난 고향을 잊지 않고 2008년 작품 370여 점을 고향에 기증하기로 한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 설립된 것이 이성자미술관이다. 전시관의 입지로 강가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를 따라 영천강변 신도시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공원 관리사무소 건물을 증축한 것이라 졸속 개관이란 지적이 있었지만, 증축·리모델링을 통해 아트숍과 교육 공간 등을 추가 확보해 2020년 재개관했다.

이 미술관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2022년부터 3년 연속으로 진행된 특별기획전 '한국 채색화의 흐름'이다. 고려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통회화에서 덜 주목받아온 전통 채색화와, 이를 계승하는 근현대 한국화를 함께 조명했다. 1·2회는 국립진주박물관과 공동으로, 3회는 차량정비고까지 확장해 치러졌다. 이 연속 기획전이 진주시 밖으로도 널리 알려지며 3회에 걸쳐 누적 관람객 20만 명을 모으는 성과를 냈다.

이번에 연 대형 현대미술 전시는 표면상 '한국 채색화의 흐름'을 계승하지만, 더 광범위한 현대미술 쪽으로 보폭을 넓힌다는 면에서는 이전 전시와 다르다. 이르면 2029년 국립진주박물관이 현재 위치에서 철도문화공원 근처로 확장 이전하는데, 남은 전시장을 이어받는 진주시가 이곳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진주시와 이성자미술관은 당분간 대규모 현대미술 기획전을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다. 이정희 진주시 문화시설사업소장은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축하지 않아도 곧바로 미술관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시장이 있다는 걸 (분관 유치의) 강점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가볼 만한 전시관
▲진주실크박물관: 100년간 국내 실크산업의 중심지였던 진주시에 개관한 국내 첫 실크 전문 박물관. 시 동쪽 문산읍 실크융복합전문농공단지 내에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상설전시는 실크의 특징과 쓰임새, 실크산업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특별전으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이어 온 '금기숙 작품전-비움을 엮다'가 9월 27일까지 열리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성 내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박물관. 진주성이 임진왜란의 대표 전장이었기에 임진왜란 때 쓰인 화포류 등 무기·갑옷과 당시를 다룬 고서화가 전시의 중심이다. 서부 경남의 역사를 담은 유물도 있다. 유튜브 영상 '화력조선' 시리즈로 유명하다.

진주=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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