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10년 만의 신작, SF영화 '호프'…한국 영화의 희망 될까

남보라 2026. 7. 1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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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 출현한 외계인
사냥감 아니면 사냥꾼 되는 지옥
"각자의 절실한 희망이 만든 비극"
"제목이 '호프'인 이유는 엔딩에"
15일 국내 개봉…9월 북미 개봉
영화 '호프'의 한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호프'의 파출소장 범석(황정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9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의 시골마을인 호포항. 거대한 무언가에게 공격당해 처참하게 죽은 소 한 마리가 논 옆에서 발견된다. 사냥이 취미인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는 소를 죽인 ‘괴물’을 찾기 위해 산을 뒤지기 시작한다. 읍내 사람들 역시 이것에게 살해당한 것을 발견한 파출소장 범석(황정민)은 벌벌 떨며 낯선 생명체를 찾아 나선다. 불길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지다 모습을 드러낸 건 키가 3m가 넘는 괴력의 외계인. 인간과 외계인의 숨막히는 사투가 시작된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2016) 이후 10년 만에 영화 ‘호프’로 돌아왔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500억 원 추정)로 만든 SF 액션 대작이다. 나 감독이 2018년 각본 초고를 완성한 후 약 9년에 걸쳐 만들었다. 지난 5월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데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까지 출연하면서 올해 영화계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호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압도적인 스케일…"대사보다 액션으로 메시지 표현"

‘호프’엔 한국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액션이 휘몰아친다. 마을에선 파출소 순경 성애(정호연)가 외계인을 자동차로 추격하며 장총을 쏘고, 울창한 숲 속에선 성기가 말을 타고 추격전을 벌인다. 2시간 36분의 러닝타임 중 액션 비중이 상당히 높다. 나 감독은 “성기가 ‘살고 싶어’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겠지만, 대사보다는 액션으로 메시지를 표현하고 싶었다”(6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 기자간담회)고 말했다.

영화 '호프' 속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호프' 속 파출소 순경 성애(정호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외계인들의 액션 역시 숨막히게 질주한다. 그들은 한 손으로 가볍게 자동차나 사람을 집어 던지고 무서운 속도로 내달린다. 외계인 캐릭터는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배우들을 모션·페이셜 캡처(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을 기록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기술)해서 구현했다. 그러나 액션이 길게 이어지면서 후반부에는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는 지점도 있다.


나홍진이 외계인 등장시킨 이유

왜 하필 외계인이었을까. SF는 한국 영화가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네거티브한 현상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고민하다 ‘곡성’의 초자연적인 상황보다 더 심화된, 우주적인 존재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 감독은 '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으로 이어지는 ‘악의 3부작’에서 인간 내면이나 사회에 도사린 '악(惡)'의 본질과 그것을 마주한 인간들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호프’에선 외계인을 그 자리에 앉혔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을 악으로 규정하면 남는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사냥꾼이 되거나, 사냥감이 되거나. 더구나 영화의 무대는 ‘반공’이 공기처럼 퍼져있는 비무장지대다. 범석이 외계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순간, 성기가 외계인 사격을 주저하는 순간도 있지만 찰나일 뿐,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홍진 감독이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호프'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가 끝난 후 당혹감을 느낄 관객도 있을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에 온 이유 등이 끝내 설명되지 않은 채 다음 편을 기약하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감독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등장인물 각자가 가진 아주 절실한 목적과 희망이 비극을 만든다”며 “그 비극 안에서 다른 희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영화 제목이 호프(희망)인 이유는 엔딩에 있다”고 귀띔했다.


침체된 한국영화 구원투수 될까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5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린 경쟁부문 진출작 ‘호프’ 포토콜에서 배우 황정민, 나홍진 감독, 정호연, 조인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호프’가 침체기에 빠진 한국 영화의 새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호프'는 200개국에 사전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우며 제작비의 절반 가까이 회수하는 등 새로운 투자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흥행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SF 블록버스터 장르에서 K콘텐츠의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해외 배우와 제작진이 참여하고, 특수시각효과(VFX) 등의 기술도 한국 주축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상징성도 크다.

일단 손익분기점(관객 700만 명 추정)을 넘길지가 첫 번째 관문이 될 전망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9일 기준 '호프'는 약 22만여 명이 영화를 사전 예매해 전체 영화 예매율의 약 50%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15일 개봉, 북미에서는 9월 개봉한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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