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울 같은 눈 들여다보다 오타쿠 문화에 푹~[Weekend 문화]
무라카미 다카시 조수로 활동 시작
현지 대중·소비문화에서 영감 받아
미소녀·고양이… 귀여운 작품 가득
눈동자엔 하트·음표·평화로 메시지
"사회적 불안 요소 공유하고 회복을"



신작 드로잉과 회화, 조각을 통해 도시 환경과 일상 속 시각문화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용산에서 열린다. 리만머핀 서울은 내달 14일까지 일본 작가 미스터의 개인전 '계절이 두고 간 것. 음? 날이 개었다.'를 선보인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0여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최근 일본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린 '미스터 개인전: 다시 만납시다(Mr. Solo Exhibition: We'll Meet Again)'에 이어 마련된 전시이기도 하다.
1969년 일본에서 태어난 미스터는 현재 사이타마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 오타쿠 문화의 시각언어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전환하며 주목받았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조수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일본 미술사와 대중문화, 소비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평면적 시각언어를 특징으로 하는 슈퍼플랫 운동의 주요 작가로 꼽혔다.
2000년 무라카미가 기획한 전시 '슈퍼플랫(Superflat)'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후 회화와 조각,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1996년 데뷔 이후 약 30년간 미소년·미소녀 캐릭터의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가 그 세계 안에 스스로를 등장시킨 드문 시도다. 미스터는 종이에 그린 낙서를 실크스크린으로 옮긴 뒤 아크릴로 채색하고, 표면을 긁어내는 스크래치 기법과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 기법을 더해 화면에 회화적 질감과 깊이를 부여한다. 과거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다는 제목처럼 작품은 기억과 환상, 작가적 자의식이 뒤섞인 장면으로 읽힌다. 두상 형태의 회화 연작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노도카-쪽빛보다 푸르게 물든'은 짙은 푸른색 앞머리 끝이 보랏빛으로 물든 둥근 얼굴의 소녀를 그린 작품이다. 초록색과 주홍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눈, 살짝 벌어진 작은 입은 놀라움과 공허함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한쪽 눈동자 안에는 토끼와 하트, 음표 같은 경쾌한 이미지가 한글 단어 '평화'와 뒤섞여 있다. 작가가 그려낸 눈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의 특징이 아닌 복잡한 심리적 풍경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가깝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대중문화의 파편, 아이콘, 상징들이 겹쳐지며 질서와 혼돈, 천진함과 냉소, 환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 드러난다.
'셀카 타임, 주머니 속 500엔.'은 미스터 작업의 도시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분홍빛 긴 머리 소녀를 중심으로 배경에는 그래피티, 만화 이미지, 스티커, 타이포그래피, 음식 일러스트, 광고와 간판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Cool!"이라는 문구와 반짝이는 별 모양의 효과는 작품 전체에 가볍고 발랄한 인상을 더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의 부흥과 희생자 애도를 뜻하는 '동북지원' 문구도 등장한다.
미스터의 작업은 오타쿠 문화를 밖에서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하위문화에 깊이 몰입한 채 그 안에서 상상계와 환상계를 구축해 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중문화의 표면을 차용하면서도 그 이면에 놓인 사회적 불안과 개인적 기억을 함께 드러낸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의 작업에는 붕괴와 상실,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감각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캔버스를 구기고 찢고 그슬리며 거친 표면을 만들고, 그 위에 반짝이는 눈을 지닌 순진한 얼굴의 만화적 인물을 그려 넣음으로써 유희와 불안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미스터의 화면 속 소녀들은 순수하고 사랑스럽지만, 그 눈동자 안에는 정보 과잉 시대의 고립, 간접경험으로 채워진 삶, 재난 이후의 기억, 그리고 희미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낙관의 가능성이 함께 머문다.
리만머핀 측은 "화려한 이미지의 표면 아래에서 관람객들은 오늘의 일본, 나아가 동시대인이 공유하는 불안과 회복의 정서를 마주하게 된다"고 평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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