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근거 된 판결, 대법서 뒤집혀

곽래건 기자 2026. 7. 10. 0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통운, 하청과 교섭의무 없어”
‘사용자' 인정한 하급심 파기환송
서울에 위치한 CJ대한통운택배 터미널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올 3월부터 시행 중인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만들어지는 데 ‘이론적 토대’가 된 과거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9일 CJ대한통운이 택배 기사들과 교섭을 거부한 것을 ‘부당 노동 행위’라고 본 하급심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CJ대한통운과 택배 기사 사이에 근로 계약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CJ대한통운을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중노위는 지난 2021년 6월 “CJ대한통운은 택배 기사들의 사용자”라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일반적인 원·하청 관계에 대해 ‘교섭 의무가 있다’는 최초의 행정적 판단이었다. 당초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 면제 등이 골자였지만, 중노위 판단을 계기로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도록 한 조항이 추가됐다.

그런데 이날 대법원이 중노위와 이를 인정한 1·2심에 대해 “법리를 오해했다”며 뒤집은 것이다. 노란봉투법으로 촉발된 원하청 교섭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질 전망이다.

◇대법 “중노위서 법리 오해”… 노란봉투법 논란 커질 듯

이 사건은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2020년 3월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원청인 택배 회사는 각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이 대리점이 택배 기사들과 계약을 맺는 구조다. 택배 회사와 대리점 소속 택배 기사 사이엔 계약서 등이 없었다.

그해 11월만 해도 서울지방노동위는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를 부당 노동 행위로 인정하고 구제해달라’는 택배 노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측 사이에 명시적, 묵시적 계약 관계가 없으니 사용자·근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중노위는 ‘근로 계약이 없어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있으면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논리로 서울지노위 판단을 뒤집었다. 당시 이 판정을 이끌어낸 사람이 박수근 현 중노위원장이다. 그는 당시에도 중노위원장이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원들이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CJ대한통운 원청 사용자성 행정소송 대법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판정은 당시 큰 논란이 됐고, 원청의 책임 확대 논의의 불씨가 됐다. 이후 2022년 6월 민노총 소속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과 맞물리며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이어졌다. ‘불법 파업에 대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당초 주장에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합쳐졌다. 노란봉투법은 기존 법에서 규정하고 있던 사용자 범위를 대폭 넓혔는데, 여기엔 중노위 판정의 논리가 반영됐다.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위와 법원이 사용자 범위를 전향적으로 확대하고 있고, 노란봉투법은 이를 명문화한 것뿐”이라며 법 통과를 강행했는데, 이날 대법원이 “당시 노동위 판정과 1·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면서 입법 명분이 무색해졌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판결로 노란봉투법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앞으로 발생하는 원청·하청 교섭 분쟁에서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달라질 전망이다. CJ대한통운 건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옛 노동조합법이 적용됐고, 이후 사건들은 법원이 노란봉투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 경우 노란봉투법에서 교섭 대상 범위를 넓히며 사용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라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를 놓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경우에 교섭을 허용해야 하는지, 결국 백지 상태에서 판례를 새로 하나하나 다 만들 수밖에 없다”며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현장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