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지그시 눌러주는 ‘서정 시인’ 고명재 “내게 詩란 내밀한 사연 꺼내 보여주는 것”
과거의 평범한 일상 詩로 깊이 응시

고명재(39) 시인은 고즈넉했다. 대구에 사는 시인이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 코엑스 전시장 앞 북적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이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장소였다. 그러나 시인은 해사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저 집중 잘해요.” 집중은 오히려 기자가 하게 됐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주변의 소음이 묻혔다. 요란함이 사라졌다.
요즘 문단에서 보기 드문 젊은 서정 시인.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등을 펴냈다. 얼마 전 두 번째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난다)을 냈다. 시집으론 4년 만이다.
살포시 누르는 다정한 힘이 느껴진다. 어깨에 머리를 기댈 때 느껴지는 정도의 무게감이다. 여기엔 누르는 대상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깃들어 있다. 시 ‘호떡’에선 이렇게 쓴다. ‘‘우리’의 ‘우’는 뒤집어보면 호떡 같다 누르기 직전의 부드럽고 몽실몽실한’ 고명재의 시에선 그 몽실몽실함이 느껴진다.
어느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호떡을 먹는 어르신들을 보고 시인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 손에 자랐던 그는 “우리 할머니 보고 싶다. 단 거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가 보고플 때 당신을 보았고 당신은 딸 대신에 내 얼굴을 보았다 우리 가운데 눈부신 결정(結晶)이 있어서 씨름처럼 붙어살던 시절이었다 (…) 반죽 사이로 압착된 설탕이 자클거리며 도망갈 곳도 없이 달게 타고 있었다’(‘호떡’)

시인의 어머니는 반찬 가게를 20년간 운영했다. 그의 시에는 타인이 무얼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환대의 마음이 자연스레 담기곤 한다. 그는 국수나 빵 같은 음식을 시에 쓰길 즐기는데, “아주 섬세하게 사물을 미분화했다가 다시 합치는 정성스러운 조리법을 시적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57편의 시 사이에 띄엄띄엄 놓인 ‘문진’이란 부제가 붙은 여섯 편의 시도 눈에 띈다. ‘글월 문자에 진압할 진이래 뒤에서 애인이 등을 꼭 끌어안으며 몸을 기댄다 그때 나는 돌솥밥의 원리를 알았지 바둑처럼 아름다운 진압을 보았지’(‘솥밥 – 문진 2’) ‘당신이 눕던 요와 베개가 오목하였다 그걸 어쩌지 못해 석 달을 깔아두었다’(‘요 아래 – 문진 6’) 같은 구절들. 시인은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베개 자국이 나 있다. 결국엔 땅 위에서 무게를 가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포개지는 마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그 무게감이 너무 좋다”고 했다.
고명재에게 서정이란 무엇일까. “서정시(lyric)는 음악에서 왔다고 하는데요. 고대 악기인 리라(lyra)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해요. 리라는 동물의 내장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안쪽의 이야기, 안쪽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안이라는 것은 민망한 것. 그러나 나에게는 궁극적인 것들”이라고 했다. ‘가장 어두울 때 우리는 일단 가슴을 칩니다/ 그건 그 속에 분명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샘터’) 고명재의 안[內]을 들여다본다.

고명재 시에는 슴슴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이 자주 나온다. 아래는 시 속 음식에 관한 시인과의 일문일답.
-시에 음식이 많이 나와요. 음식을 향한 애정이 많이 묻어나는데요.
“음식은 환대인 것 같아요. 먹는 일은 나 아닌 존재를 내 안으로 넣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가 내가 전생에 나무였고, 새였고 이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먹은 쌀알이 제 몸 안에서 흡수돼서 제 하루가 되잖아요. 그것도 윤회의 한 양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타인이나 타자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예요. 그래서 먹는 일은 저한테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일이고, 완전히 타자를 향해 개방되는 사건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가족들이 다 요식업을 해요. 어머니가 20년간 반찬 가게를 했고, 동생도 빵집을 하고요. 집에 가면 다들 유튜브로 요리하는 거 보고 있거든요. 같이 구경하고요. 눈뜨면 생각하는 게 마늘, 근대 뭐 이런 것들. 음식과 식재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타인이 뭘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은 뭘까요.
“사람을 걱정하는 여러 형태가 있잖아요. 특히 그 사람이 뭘 먹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그 사람의 안위에 제 마음이 다 향해 있는 것 아닐까요. 저 이거 진짜 많이 묻거든요. 누구한테든 전화하면 ‘뭐 먹었어~? 아~ 콩국수 좋겠다.’ 하면서 저도 콩국수를 상상하고, 그러면서 연결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음식을 시에 자주 쓰게 되나요.
“시에서 다짐육을 쓰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다짐육, 항정살 이런 것들은 좀 쓰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어찌 됐건 그 말에는 파괴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국수라든가, 죽 같은 것들은 아주 곱게 갈고 미분화해서 그걸 다시 응집하는 조리 과정이 있잖아요. 아주 섬세하게 사물들을 미분화했다가 다시 합치는 그 태도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조리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과정이 들어간 음식이 확실히 시적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육회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데, 리소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죠. 점성도 있고, 갈아야 하고, 어느 정도 열도 일으켜야 하고…. 그 과정이 세상을 만나는 일 같아요.”
-묘하게 다 탄수화물입니다.
“그러니까요. 문제입니다(웃음). 그래서 제가 살이 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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