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해피엔딩”… 암 이겨낸 여섯 식구 구호랍니다

황규락 기자 2026. 7. 1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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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들이 바꾼 우리] 김보연·김명훈 부부

“우리는 언제나 해피엔딩이야.”

지난 7일 경기 파주시의 한 키즈카페. 네 아이가 놀이기구 사이를 뛰어다니는 동안 김보연(45)·김명훈(44) 부부는 가족 구호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부부의 아이는 첫째부터 막내인 넷째까지 나란히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연년생으로 첫째와 둘째를 갖고 2년 뒤 다시 연년생으로 셋째와 넷째를 낳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육아로 힘든 것보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 훨씬 크다”고 했다.

정경식 기자김보연·김명훈 부부와 네 아이가 웃으면서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거나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효정·다정·서정·채정이다. 부부는 “육아로 힘든 것보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 훨씬 큰 만큼, 아이를 낳기 전에 걱정부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났다. 상품 진열을 맡은 남편 김씨가 먼저 다가가 말을 붙였다. 활발한 성격의 아내는 처음엔 그를 다른 사람과 이어주려 했다. 그러다 두 사람은 6개월 만에 연인이 됐고, 7년 연애 끝에 결국 결혼했다.

부부의 성향은 정반대다. 장녀인 아내는 계획 없이 일단 부딪히고 보지만, 오남매 중 막내인 남편은 일정을 미리 짜야 마음이 놓인다. 남편 김씨는 “여행 갈 때도 아내가 아무 말이 없으면 답답해서 결국 내가 계획을 짠다”고 했다. 아이도 남편은 둘을 원했고, 아내는 어릴 때부터 “다섯은 낳겠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아이를 바랐지만, 결혼 후 아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아내 김씨가 일산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며 하루 서너 시간을 길에서 보내다 보니 부부가 얼굴 볼 시간조차 빠듯했다. 1~2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너무 좋아하면 임신이 안 된다” “집에 아기 용품을 놔두면 애가 안 생긴다”는 미신 같은 말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지나가는 아이도 다 안아줄 만큼 아이를 좋아하는데 정작 내게는 생기지 않으니 더 힘들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아예 임신 얘기를 묻지 않았다.

결국 부부는 병원을 찾아가 약물 치료 뿐 아니라 인공 수정까지 시도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나” 하며 마음을 비운 그해 6월, 결혼 3년 6개월 만에 첫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소식을 들은 날 남편은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처음은 그렇게 힘들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이가 쉽게 찾아왔다. 수유를 끊을 무렵마다 다음 아이가 들어섰다. 2014년 다정이를 시작으로 2015년 효정이, 2017년 채정이, 2018년 아들 서정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첫째는 병원에 다녀 어렵게 가졌는데 둘째부터는 신기할 만큼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했다.

네 번의 출산은 매번 순탄치 않았다. 모두 제왕절개였다. 첫째는 아이가 거꾸로 있었고, 둘째 때는 마취가 덜 돼 메스가 닿는 느낌을 그대로 견뎠다. 셋째 때는 자궁 유착이 심했다. 넷째 때는 자궁에 구멍이 나 아내가 자칫 큰일을 겪을 뻔했다. 수술한 의사는 “더 이상 임신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부부는 아이를 더 낳고 싶었지만, 서정이가 마지막이 됐다. 남편 김씨는 “아내가 얼마 전에도 아기를 보더니 하나 더 낳고 싶어했다”며 웃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아내는 그 누구보다 육아를 즐겁게 했다. 화재보험 일을 하는 남편은 당직 근무로 이틀에 한 번꼴로 집을 비웠다. 아내는 운전을 무서워했지만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틀간 연수를 받고 곧장 핸들을 잡았다. 동네를 다닐 때면 아이 둘을 앞뒤로 안고 업은 채 유모차를 밀었다. 아내는 “아이를 낳으면서 씩씩해졌다”고 했고, 남편은 “엄마가 되면서 강해진 것”이라고 거들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어울렸다. 의젓한 첫째, 평화를 챙기는 둘째, 야무진 셋째, 애교 많은 막내. 아내는 “첫째가 무엇이든 붙들면 곧잘 해내니, 동생들이 ‘한 가지라도 첫째를 이겨보고 싶다’고 말한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배운 덕인지 다정이는 전교 부회장, 효정이는 학급 부회장, 채정이는 학급 회장을 맡고 있다.

가족의 구호가 만들어진 건 큰 고비를 넘으면서였다. 둘째 효정이가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 암 진단을 받았다. 대학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니까 잘 이겨내 보자”고 되뇌었다. 둘째는 머리를 밀고도 씩씩하게 병원을 오갔다. 아내는 “병원을 다니며 괜스레 위축됐는데, 아이가 워낙 당당해서 오히려 내가 배웠다”고 했다. 지금은 티가 나지 않을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아내는 “한 명이었으면 못 넘겼을 일도 여섯 식구라서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부부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했다. 아내는 “저도 사실 겁 많고 항상 불안해하는 사람”이라며 “아이를 낳는 것에 걱정부터 앞서는 분들께 ‘나도 했는데 당신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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