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로 읽는 청오 차상찬] 장맛비 속 스쳐간 인연, 가을 하늘의 그리움이 되다

김진형 2026. 7. 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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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조선문화의 기본조사’ 답사 일화
지리산 천은사서 평양 출신 여교사와 동행
“붉은 복숭아꽃” 비유 다정한 시선 담아
절제된 감정으로 ‘인류의 사랑’ 표현
두 번째 만남 후 오래된 그리움으로 기억
사회비평가 넘어 산문가로서의 재발견
30. 방장산에서 만난 여선생

어느 날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7월 19일 듯). 그날도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아니하고 아침으로부터 정오까지 내리 계속하였다. 나는 고요함을 깨기 위해 심심풀이로 화엄경을 읽다가 머리가 아파서 책을 덮어 두고 법당 앞에서 산책을 했다.

한참 있노라니까 뜻밖에 어떤 가르마 없이 뒤로 묶어 붙인 머리를 한 젊은 여자 한 분이 절 문으로 들어오는데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가 흠뻑 다 젖고 머리털은 비와 바람에 시달려서 가을 구름같이 흩어 젖어 있었다. 발은 버선도 구두도 다 벗어 버리고 정강이까지 걷어붙인 맨발이었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미인 축에 드는데 혈색이 매우 좋아서 두 뺨에는 때아닌 붉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듯하고, 두 눈은 맑고도 서글서글한 것이 마치 새벽하늘에 비치는 별과 같았다. 그는 어디로 보든지 미인이라기보다 여장부였다.

나는 그를 원래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적한 산중 지루한 그 장마 속에 그를 만나보니 그때 반가운 말이야 어찌 다 형언할 수 있으랴. 더구나 그가 나를 향하여 “이 절이 천은사입니까?” 하고 다정한 평양 사투리로 물었다. 그 순간 평양을 아는 나로서는 더욱 반가워서 마치 고향의 친구를 만난 것과 같았다. 그도 나를 서울 사람인 줄 짐작하고 퍽 반가워하는 듯하였다. 급기야 신분을 알고 보니 그는 원래 평양 여자로서 현재 모 보통학교에 교사로 있던 중 여름방학을 하고 바로 고향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다른 때에는 천은사 구경할 여유가 없으므로 그 빗속임에도 불구하고 험한 산길을 넘고 물을 건너서 온 참이라고 한다. 나는 그의 용감하고 활달한 면모에 감복하여 속으로 혼자 칭찬하기를, ‘옳지! 평양 여자이기에 이 빗속에 저렇게 용감하게 산간의 험한 길을 걸어 왔지, 다른 곳 여자 같으면 어림도 없다!’라고 하였다. 덕분에 나도 없던 용기가 저절로 나고 여러 날 동안 장마에 피곤하던 권태의 기분이 다소 사라졌다.

나는 그 정도만 하여도 그곳 지리나 역사에 익은 까닭으로 지리산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천은사, 화엄사의 내력 담을 자세히 하여주고 또 이곳저곳의 볼 만한 것을 소개했다. 그도 매우 감사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은 뒤에 그와 나는 같이 구례읍으로 들어가기로 햇다. 나도 그와 같이 발을 벗고 의복을 둘둘 말아 뭉쳐서 바로 절을 나왔다. 다행히 큰비는 그쳤으나 장마로 인해 도로가 모두 파괴되고 개울물은 곳곳마다 폭포수 혹은 깊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여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여자는 고사하고 남자라도 발걸음을 내딛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관계치 아니하고 태연히 잘 걸어 나갔다. 그렇지만 여자인지라, 피부가 약한 까닭에 발이 상해서 피가 줄줄 흘렸다.
1938년 조선일보에 실린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나는 그를 보기에 너무나 애석하여, 촌가에 들어가서 짚신 한 켤레를 사다 주었었다. 인류의 사랑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와 내가 피차에 인사는 처음 하였을지라도 그날의 정다운 것은 어떤 청춘남녀의 여러 해 동안 쌓은 친한 정분보다도 몇 배나 더한 것 같았다. 천은사에서 구례읍까지, 약 20리가량이나 되는 거리를 오는 동안에 잠시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치지 않았다. 혹은 교육 문제, 혹은 정치문제, 혹은 여자 해방 문제, 심지어 연애 문제까지 별 토론을 다 하였다. 그도 평양에서 온 뒤로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여 본 기회가 처음이라 하고 나도 지방에 와서 이성과 그러한 이야기하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찌하였던 그때의 인상은 퍽 깊었었다.

그날밤에도 몸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학생 한 사람과 같이 여관까지 찾아와서 재미스러운 담화를 하여주고 그 이튿날 아침에 내가 순천으로 떠날 때는 자동차 정류장까지 와서 전송해 주었다. 그리고 그 뒤 사흘만이었다. 나는 순천에서 우연히 설사병이 와서 하룻밤에 34회나 설사하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러서 현지 매산병원에 입원했다. 사방 의지할 곳 없는 한 객지에서 입원까지 하고 보니 그때 적적한 마음이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었으랴. 그에게 감사의 편지 겸 입원한 사실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때 나는 물론 그가 벌써 평양으로 갔겠거니 하였지만, 서울에 편지하자니 홍수로 통신이 두절 되고 혼자 하도 적적한 까닭에 그가 받아 보든지 못 보든지 무심길로 한 편지였다. 더구나 그가 그 편지를 혹 본 다 하여도 거리를 초월한 순천까지 찾아와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천만뜻밖에 그는 서울의 교통이 끊긴 관계로 지금까지 구례읍에 있다가 나의 편지를 보고는 광주로 가는 길에 내가 있는 병원까지 일부러 찾아 주었었다. 그때의 감사하고 반가운 말은 참으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광주로 갈 시간이 바쁜 까닭에 장시간 있지 못하고 잠깐 담화하다가 떠났었다.

그 뒤로는 피차 반가움보다도 섭섭한 편이 더 많았다. 서로 일이 바빠서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무심하여 그렇게 되었던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남북이 아주 떨어져 있기에 편지 한 장도 잘하지 못하고 만나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지금 그는 아직 그곳에서 분필 생활(교사 생활)을 그대로 하는지 혹은 다른 곳으로 전근하였는지 소식조차 묘연하다. 비록 3년이 지난 오늘이라도 그때의 그의 기억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가을바람이 새로 들고 흰 구름이 높이 나는 이때 그는 행여나 신체 무탈하게 지내고 옛 생각을 잊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다시금 남쪽 하늘을 향하여 멀리멀리 바라볼 때 ‘그리운 이를 하늘 끝 먼 곳에서 바라 본다’는 옛사람의 노래에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겠다.
차상찬의 글 ‘방장산에서 만난 여선생’ 이야기가 실린 1927년 별건곤 2권 7호

[해설]‘차상찬’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종종 ‘수필가’라는 설명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서정적 수필과는 조금 다르다. 언론인이었던 그는 빈부의 대조, 노동·여성·아동 문제, 풍자와 휴머니즘, 리얼리즘적 시선을 두루 담아냈고, 그래서 흔히 ‘사회비평적 수필가’로 이해된다. 하지만 일부 글을 읽다 보면 그가 단지 사회를 비판하는 문필가에 머물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풍경을 포착하는 감각, 인물을 바라보는 다정한 눈, 감정을 절제해 오래 남기는 산문가의 힘이 있다.

이 글은 을축년 대홍수가 있었던 1925년 7월, 개벽사의 ‘조선문화의 기본조사’를 위해 전라남도를 답사하던 때의 일을 다룬 작품이다. 차상찬은 지리산 천은사에 들렀다가 장마로 발이 묶인다. 교통이 끊기고, 산중의 고립 속에서 그는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인연은 장맛비가 그치지 않은 산사에서 시작된다. 비에 잠긴 절, 산중의 적막, 책을 덮은 사람의 권태. 그 분위기 속으로 한 여성이 절문 안에 들어선다.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는 비에 젖어 있고, 머리는 바람에 흐트러져 있으며, 발은 맨발이다. 그런데 차상찬은 그 모습을 초라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녀에게서 “붉은 복숭아꽃” 같은 두 뺨과 “새벽하늘에 비치는 별” 같은 눈을 본다.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경탄, 그리고 인간을 향한 다정한 시선이 이 비유 속에 함께 담겨 있다.

이 여선생은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다. 그는 평양 출신의 교사로,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길에 빗속을 무릅쓰고 천은사를 찾아온 진취적인 인물이다. 근대 여성을 발견한 것이다. 험한 산길과 불어난 물길을 건너온 모습에서 차상찬은 용기와 활달함을 본다. 두 사람은 산길을 함께 내려오며 온갖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대목에서 글은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선다. 산길은 사상의 길이 되고, 우연한 동행은 시대를 관통하는 지식인들의 대화가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다. 여선생의 상한 발을 보고 짚신을 사다 준다. 그리고 그 순간 “인류의 사랑”이라는 말을 꺼낸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 사이의 감정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낯선 사람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처음 만난 사이에도 피로와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다.

차상찬의 수필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빛난다.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감상에 빠지지도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잠깐 피어나는 온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만약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댔다면, 글의 균형은 분명 깨졌을 것이다.

뒤이어 차상찬이 순천에서 병을 얻어 입원하고, 여선생이 뜻밖에도 찾아오는 장면은 이 글의 정서를 한층 깊게 만든다. 객지에서 병든 사람에게 찾아온 한 사람의 방문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수필은 본래 그런 작고 사적인 순간을 통해 인생의 결을 보여주는 장르다. 차상찬은 그 방문을 극적으로 꾸미지 않는다.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떠난 짧은 만남을 “감사하고 반가운” 일로만 적는다. 그 절제 때문에 고마움은 더 오래 남는다.

글의 마지막은 더욱 수필답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화자는 그 여선생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그가 아직 교사로 지내는지,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조차 모른다. 다만 가을바람이 불고 흰 구름이 높이 나는 계절이 오면, 문득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장맛비 속의 만남은 가을 하늘 아래의 그리움으로 바뀐다. 차상찬의 문장은 여기서 기록을 넘어 여운이 된다. 만남보다 오래 남는 것은 이별이고, 사건보다 깊은 것은 기억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피천득의 ‘인연’을 떠올린다. 한림대학교의 전신인 성심여대가 배경인 탓에 종종 학생들에게 읽혔던 글이다. 어딘가 두 작품이 닮았음을 느낀다.

차상찬은 풍경을 묘사할 줄 알았고, 인물을 그릴 줄 알았으며,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 우연한 만남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았다. 근대 신문·잡지 문체의 생생함을 품으면서도, 한 편의 산문시처럼 여운을 남긴다. 장맛비 속에 나타난 한 여선생은 문장을 통과해 오래된 그리움의 형상이 된다. 옛사람인 소동파의 말을 빌어, ‘그리운 이를 하늘 끝 먼 곳에서 바라본다’로 갈음할 때 지긋이 가슴이 뛴다. 그 그리움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누구에게나 삶에는 잠시 스쳐 갔으나 끝내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현대어 번역=(사)차상찬기념사업회 △해설=이현준 한림대 강사·소설가 △발췌문헌=靑吾生 ‘方丈山中의 女先生’ 별건곤 2권7호, 1927.10, ‘차상찬전집7’ 332~336쪽, ‘차상찬현대문선집’, 298~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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