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 아닌 '비정'…메데이아의 분노, 두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다

정인국 2026. 7. 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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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인국의 법과 미술 사이
학대받고 살해당하는 아이들
외젠 들라크루아 <분노한 메데이아>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결연한 모습(?)

아래 그림을 보고 어떤 상황이 떠오르시나요? 누군가가 쫓아올 것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는 두 아이를 한 번에 안고 칼을 들고 서 있습니다. 누구라도 내 아이를 해하려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비장한 각오가 느껴집니다.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이 느껴지는 그림이네요.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이 그림을 보고,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놀랍게도 실제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이 그림은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이를 죽이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두 아들이 어두운 동굴 안에 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강한 빛이 아이들과 어머니의 하얀 피부를 대비시켜 비극성을 고조시킵니다. 어머니를 쫓아오는 누군가는 자신의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막으려는 아버지와 그 수하들입니다. 약간의 언어유희를 섞자면, 어머니의 '비장한' 모습이 아니라 '비정한' 모습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녀 메데이아에 관한 것입니다. 메데이아는 자신의 마법으로 이아손이 왕위를 되찾도록 노력했고, 그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아손은 권력을 위해 메데이아를 버리고 코린토스 왕의 딸과 결혼하려 합니다. 분노와 절망에 빠진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기 위해 그의 후계자인 두 아들을 직접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림은 남편 이아손의 배신에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두 아이를 살해하기 직전의 비극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아손이 도착할 때쯤엔 이미 아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부모의 자녀 살해에 대한 실정법의 태도

과거에는 산모가 영아를 살해할 경우 일반적인 살인죄에 비해 훨씬 형을 감경했습니다. 보통의 살인죄가 사형, 무기징역, 5년 이하의 징역이 그 기준인 반면, 영아살해는 10년 이하의 징역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인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 대학교 때 형법 교수님이 설명하신 내용이 기억납니다. 분만 직후의 불안한 심리상태나 양육의 어려움 등의 부득이한 사유로 자식을 살해하는 상황이므로 참작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의 경우에도 출산 직후에 호르몬 변화 등으로 인해 어미가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설명이 그리 잘 납득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자식을 살해한 어머니의 형을 감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아살해죄」는 2024년 2월에 폐지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아살해도 다른 살인과 마찬가지의 형량으로 처벌됩니다. 부모에 의해 학대받고 살해되는 아이들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법 조항 폐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를 가중처벌 하는 규정도 생겼습니다. 2021년 3월에 신설된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살해죄」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를 방치하여 굶겨 죽이거나 신체적 폭행을 가해 숨지게 하는 등 학대 정황이 뚜렷할 경우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살인죄의 하한선이 5년이니, 형량의 하한선이 2년 더 높은 것이지요. 현재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는 이 규정을 적극 적용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

학대받고 살해되는 아이들에 대한 언론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입양한 아이를 지속적으로 폭행해서 죽기 전에 아이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은 듯한 표정을 짓는 사진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습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부모가 방치해서 아이가 굶어 죽은 사건, 부모의 폭행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응급실로 후송된 아이의 배를 절개해보니 거듭된 폭행으로 이미 피가 가득 차 있었다는 사건 등등. 이런 기사들을 읽다 보면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기가 너무 힘듭니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더 가슴 아픈 이유는 학대의 주체가 다름 아닌 아이들이 가장 믿고 의존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역학관계가 너무 분명합니다. 피해자는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외부에 알릴 능력도 없는 약자입니다.

최근 들어 아동학대가 크게 문제 되는 이유는 뭘까요. 과거에 비해 아동학대의 정도와 빈도가 더 심해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 가정사에 남들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 때문에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체벌은 훈육이 아니라 아동학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지요. 덧붙여 IT 발달로 모든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고 CCTV에 저장된 학대 영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보니 충격과 공분의 정도가 더 커지게 되었구요.

모든 범죄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듯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아동학대도 근절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회의 개입을 통해 그 정도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식, 체벌은 훈육이 아니라 학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남의 아이라도 몸에 상처가 있거나 학대의 의심이 든다면 유관기관에 알리는 방법으로 아동학대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합니다.

정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