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의 룰? 아직도 "누가 아트바젤을 따라왔느냐" 따지면 바보!

아르떼 2026. 7. 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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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준수의 아트페어 길라잡이
지속 가능한 한국형 아트페어의 새로운 패러다임

2026년 상반기 한국 미술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아트페어로 채워졌다. 상반기 아시아 최대 행사인 아트바젤 홍콩을 시작으로 아트오앤오, BAMA, 화랑미술제, 더프리뷰 서울, 루프 플러스, 하이브 아트페어, 아트부산, 조형아트서울까지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거의 매주 이어졌다. 이는 9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동시 개최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행사를 피해 일정을 앞당긴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과 달리 시장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불안정한 환율, 장기화된 소비 위축은 미술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2년 한국 미술의 최대 호황기와 비교하면 많은 아트페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기일까. 물론 그것도 이유다. 그러나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아트페어라는 형식 자체는 생각보다 오래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로 평가받는 아트바젤은 1970년에 시작됐다. 올해로 56년째다. 최초의 아트페어로 알려진 아트쾰른이 1967년에 출범했으니, 아트페어라는 형식 자체가 내년이면 어느덧 환갑을 맞는다. 갤러리가 부스를 조성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VIP를 초청하고,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본 구조는 반세기 넘게 유지되고 있다.

시장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이 모델만으로도 충분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 역시 비슷한 궤적을 보여준다. 전후 폐허 속에서 출발한 한국은 미국과 일본, 유럽의 산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학습하고 도입했다. 자동차, 조선, 전자산업 모두 선진국의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다.

한국의 아트페어 산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트바젤과 프리즈, 아모리쇼와 같은 해외 선진 사례를 참고하며 VIP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특별전과 투어, 토크 프로그램 등을 확대했으며, 국제 갤러리 유치에 힘써왔다. 그 결과 키아프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 중 하나로 성장했고, 마침내 프리즈가 서울에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추격의 시대와 선도의 시대는 서로 다른 전략을 요구한다. 선진국의 모델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더 이상 일본 전자기업을 따라 하는 기업이 아니듯, 한국 자동차 산업이 단순한 복제품 생산에 머물지 않듯, 아트페어 역시 이제는 단순히 성공한 해외 모델을 답습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장 성장률이 둔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 동일한 방식의 반복만으로는 차별성을 만들기 어렵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아트바젤을 따라왔는가가 아니라, 누가 한국형 아트페어의 모델을 제시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느냐이다.

과거 키아프를 운영할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매년 바뀌는 명칭과 디자인을 정리하고 ‘키아프 서울’이라는 일관된 브랜드를 구축하려 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 로고와 아이덴티티는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그 아트페어가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위한 플랫폼인지를 보여주는 선언에 가깝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신생 아트페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해답을 찾고 있다.

아트오앤오는 대형 아트페어가 제공하기 어려운 밀도 높은 경험에 주목하고 있다. 참가 갤러리 수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엄선된 갤러리와 작품을 통해 컬렉터와 갤러리, 작가가 보다 깊이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 ‘작품 중심의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단순한 판매 행사가 아닌 작품과 컬렉터의 진지한 만남을 추구하는 점이 특징이다. 규모의 경쟁이 아닌 콘텐츠의 밀도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화랑미술제는 올해 한국화랑협회 50주년 특별전을 보여주었듯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라는 역사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ZOOM-IN 특별전과 신진 작가 소개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작가 발굴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한국 화랑들이 육성한 작가들을 시장에 소개하는 ‘프라이머리 갤러리 중심 아트페어’라는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하며, 판매와 육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더프리뷰는 출범 초기부터 ‘젊고 새로운 갤러리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내세워 왔다. 기존 아트페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웠던 신생 갤러리와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성수라는 지역적 특성과 결합해 새로운 컬렉터 층과 젊은 관람객을 유입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올해 6회를 맞아 신진 갤러리의 등용문이자 실험의 무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하이브 아트페어는 특정 세대나 규모의 갤러리를 제한하기보다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지향했다. 기존 아트페어의 틀을 답습하기보다 부스비를 없애고, 벌집 형태의 육각형 부스를 구성하고, 기본으로 제공되던 프로그램을 갤러리 주도로 선택할 수 있게 참여 방식 전반에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며 등장했다. 특히 갤러리와 컬렉터, 관람객이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며, 신생 아트페어로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네 개의 아트페어가 모두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밀도를, 누군가는 육성을, 누군가는 신진성을, 또 누군가는 새로운 생태계를 이야기한다. 이는 현재 한국 아트페어 시장이 단순히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아트페어 모델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탐색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각자의 과제도 분명하다.

아트오앤오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컬렉터 중심 아트페어라는 차별성을 확보했지만, 그 정체성이 창립자 개인의 컬렉팅 철학과 네트워크가 강하게 반영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특정 인물의 영향력이 강한 플랫폼은 성장 과정에서 제도와 시스템으로 그 가치를 확장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화랑미술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아트페어이자 화랑협회 회원 갤러리들의 축제라는 의미를 지닌다. 반면 참가 자격이 회원사 중심으로 운영되고 심사를 통해 페어의 방향성을 조정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매년 유사한 구성과 분위기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오랜 역사와 안정성이 강점인 만큼 동시에 새로운 긴장감과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더프리뷰는 지난 6년간 신생 갤러리들의 중요한 등용문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로 초창기 참가 갤러리들 가운데 상당수가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그리고 수많은 해외 아트페어에 진출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성공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더프리뷰가 지속적으로 젊고 실험적인 플랫폼으로 남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의 갤러리를 어떻게 발굴하고 유입시킬 것인가라는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성공한 참가 갤러리들이 키아프나 프리즈 서울로 이동하면서, 더프리뷰는 끊임없이 새로운 갤러리를 발굴해야 하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어쩌면 향후에는 일종의 ‘졸업 시스템’이나 새로운 순환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올해 첫회를 개최한 하이브 아트페어는 기존 아트페어의 형식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다만 첫회인 만큼 인지도와 홍보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새로운 시도와 방향성에 비해 그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신생 아트페어에게 첫해는 완성형을 보여주는 무대라기보다 가능성을 검증하는 과정에 가깝다. 하이브가 향후 어떤 정체성을 구축해 나갈지는 앞으로의 운영을 통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어떤 해답이 옳은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국 아트페어 시장이 서로 다른 답을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아트바젤과 프리즈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모델을 구축해 왔다.

한국의 아트페어들도 이제 단순히 성공한 해외 사례를 따라가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의 현실과 시장 환경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의 실험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는 기존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아트페어 산업은 지난 20여 년 동안 성공한 해외 모델을 빠르게 학습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추격의 시대를 넘어 선도의 시대를 고민해야 한다. 밀도와 육성, 신진성, 생태계 등 다양한 해법이 모색되고 있다. 아직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는 모방이 아니라 실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의 여러 아트페어들이 시도하는 다양한 실험들 가운데 하나가 향후 10년, 20년을 이끌 새로운 한국형 아트페어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박준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