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으로 지워진 배재고 혐오발언, 언론은 혐오를 제대로 규정했나

윤유경 기자 2026. 7. 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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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왜곡대응 프로젝트]혐오를 혐오라고 규정하지 않는 언론의 위험성
'5·18 응원 논란', '스타벅스 구호 논란' 배재고 혐오발언 보도에서도 반복
혐오를 찬반 대립으로 치환… "페미 논란""여경 논란" 대상 멸칭화 문제도
'혐오' 정의한 차별금지법 필요 "언론보도, 교육, 내규 제정시 근거될 것"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2026년 7월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6월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스타벅스의 5·18민주화운동 혐오 마케팅을 본뜬 응원 구호로 징계 처분을 받았다.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경기를 치르던 배재고 선수들은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말하며 응원했고, “탱크데이”를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앞서 스타벅스는 5월18일에 맞춰 내놓은 이벤트에서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붙인 텀블러 세트를 내놓으며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 진입, 1987년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한 명백한 혐오 마케팅이다. 광주제일고 학생들을 겨냥해 이같은 스타벅스 마케팅을 비하 소재로 삼은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구호 역시 분명한 혐오 발언이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선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구호를 '혐오'가 아닌 '논란'으로 치환했다. '5·18 응원 논란'(공감신문), '스타벅스 구호 논란'(매경이코노미), '스타벅스 가야지 논란'(주간조선), '배재고 야구부 5·18 논란'(뉴시스)처럼 학생들의 혐오 발언은 하나의 '응원 논란', '구호 논란'으로 축소됐다. 배재고 학생들의 발언을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기를 회피하는 보도 방식이다. 각종 차별·혐오 발언을 '논란'으로 명명하는 관행은 한국 언론 전반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돼 왔다.

여러 명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툰다는 뜻을 가진 '논란'은 모호하고도 간편한 단어다. 특히 언론이 한 사안을 판단하기 어렵거나, 판단을 유보하고 싶을 때 특정 단어 뒤에 '논란'을 붙이면 그럴듯한 하나의 의제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론이 사용하는 '논란'은 사안의 본질을 지우고 존재하는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없애버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일부 커뮤니티 반응을 인용해 논란이 아닌 대상을 논란화시키는 문제, 논란이라는 단어를 붙여 특정 대상을 멸칭화시키는 문제도 있다.

혐오를 명확히 규정하고 설명하기 위해선 결국 무엇이 혐오표현인지 정의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명한 법적 근거에 기반해 왜 특정 표현이 혐오표현인지 정의할 수 있어야, 언론을 포함해 전체적인 사회적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구호를 '혐오'가 아닌 '논란'으로 치환한 언론보도 제목.배재고 사태 외에도 언론은 수없이 많은 사안을 논란이라는 단어로 규정해왔다.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 대한 언론의 “페미 논란”, “숏컷 논란” 보도,넥슨코리아에서 게임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이 남성 비하를 상징하는 이른바 '집게손가락'이라며 집단 항의가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게손 논란” 보도,대림동 경찰 폭행 사건 관련 여경이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에 대한 언론의 “대림동 여경 논란” 보도 등이 대표적이다.

“혐오를 혐오라고 부르지 않는 언론의 언어, 중립 아닌 2차 가해”

배재고 사태 외에도 언론은 수없이 많은 사안을 논란이라는 단어로 규정해왔다. 특히 차별과 혐오발언을 논란으로 다루는 기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2023년 발행된 논문 <'논란' 키워드로 본 뉴스 의제의 연성화와 정치화': 김영삼~문재인 정권 기사 텍스트마이닝 분석>은 최근 30여 년간 제목에 '논란'을 포함한 기사를 분석한 결과 사회 섹션에서 차별과 혐오발언을 논란으로 규정하는 기사가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했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정책 관련 논란 기사는 감소하는 데 비해 차별과 혐오 발언 논란 기사는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언론의 '논란' 규정이 특정 발언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그치는 갈등유발형 의제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해당 논문을 작성한 문미진 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박사수료생은 지난 8일 미디어오늘에 “'논란'이라고 부르는 순간 문제의 초점은 혐오표현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 반응이나 찬반 대립으로 이동한다”며 “그 결과 배재고 앞 근조화환 행렬이 이어지는 가 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보다도 정파적 정쟁으로 핵심이 옮겨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표현이 왜 문제인지, 학교와 스포츠 공동체는 어떻게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할 사안이, 언론이 '논란'이라고 칭해버리면서 마치 대등한 의견 대립의 문제처럼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혐오를 혐오라고 부르지 않는 언론의 언어는 중립, 객관이 아니라 축소, 나아가 2차 가해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언론이 논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악영향은 복합적이다. 우선 배재고 혐오 응원 구호 사례처럼 명확히 피해와 가해가 있는 사안을 '논란'으로 틀 짓는 경우, 혐오를 찬반 대립의 문제로 치환해 혐오를 축소시킨다. 반대로 논란거리가 아닌 것을 논란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커뮤니티 게시글 반응 일부를 가져와 마치 공적으로 알아야 할 사안인 것처럼 확대시키는 행태다.

▲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2021년 7월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 사례가 2022년 집중적으로 기사화된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에 대한 언론의 “페미 논란”, “숏컷 논란” 보도다. 당시 일부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가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공격하거나 '페미니스트 아니냐'며 비난하자 이를 기사화한 제목이다. 안산 선수가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주최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후원한 사실을 인증하자 “전장연 논란”이라는 기사 제목까지 나왔다. 당시 한국 언론과는 달리 외신에서는 안산 선수에 대한 공격을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로 규정하면서, 한국 언론의 무분별한 '논란' 단어 사용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페미 논란” “여경 논란”, 대상을 멸칭화시키는 보도

언론의 '논란' 규정은 논란거리가 아닌 것을 논란으로 만드는 동시에 대상을 멸칭화시킨다. 책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저자 이슬기 칼럼니스트는 같은 날 미디어오늘에 “'페미니스트'라는 말 자체가 문제적인 단어가 아닌데, '논란'을 붙이면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멸칭화되고 있던 걸 언론이 수면 위로 올렸다”며 “'페미 논란'이라고 하는 순간 페미니스트가 멸칭이 되고, 대림동 여경 사건의 경우에도 '논란'을 붙이면서 여경을 멸칭화시켰다”고 지적했다. 2019년 벌어진 대림동 경찰 폭행 사건 관련 여성 경찰이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퍼지자 일부 온라인상에선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발언이 쏟아졌고, 다수 언론은 이를 “대림동 여경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2023년 넥슨코리아에서 게임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이 남성 비하를 상징하는 이른바 '집게손가락'이라며 집단 항의가 벌어졌던 사건도 다수 언론에서 “집게손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남성 이용자들은 해당 그림을 그리지도 않은 하청업체 직원 애니메이터의 신상을 온라인에 유포하며 집단 괴롭힘을 가했고, 넥슨은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고 사과문을 올리며 이용자 민원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칼럼니스트는 “이는 '집게손'이라는 이름의 억지이자 여성 노동자를 향한 괴롭힘”이라며 “언론 입장에선 당장 사건을 규명하기 쉽지 않고 부담이 되니까 논란을 붙였다고 말하지만, 모든 사안에 '논란'을 붙여 기사화하지는 않는다. 하필 특정 의제를 택해 '논란'을 붙여 기사화했다는 사실은 이 자체가 언론의 게이트키핑이 들어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2023년 12월8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된 '온라인 집게손가락 억지논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긴급토론회 자료집. 사진=장혜영 의원 페이스북

'갈등' 역시 혐오표현을 축소시키는 단어 중 하나다. 명백한 여성혐오 사안을 '젠더갈등'이라며 치환하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보수 기독교 세력의 혐오 발언, 지방자치단체의 차별 행정을 'VS'라는 문구를 통해 마치 대결 구도처럼 묘사하는 보도는 매년 반복된다. 퀴어문화축제의 본질에 집중한 보도가 아닌, 축제를 둘러싼 갈등을 부각하거나 축제 자체를 '논란'으로 치부하면서 사실상 성소수자 혐오 의견을 재생산하는 보도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같은 날 미디어오늘에 “언론은 항상 중립을 말한다”며 “과거 성소수자 관련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성소수자 찬성', '성소수자 반대' 측 패널을 한 명씩 두고 토론했다. 문제를 제기했으나 '언론은 공정해야 하므로 한쪽 편을 들 수 없다'고 답했다”고 회상했다. 기계적 균형 맞추기를 통해 오히려 혐오를 재생산하지만, 이를 '중립'이라는 단어 아래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박 변호사는 “이건 공정이 아니라는 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언론이 들어줄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짚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 혐오표현 판단 근거 될 수 있어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건 온라인상 혐오표현이 급증했던 2010년 경부터다. 공론화된 기간이 짧기에 혐오에 대한 개념상 혼란도 계속되고 있다. 혐오표현은 수위나 내용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강력하게 제재해야 할 표현이 있을 수 있고, 제재가 없더라도 사회적 교육을 통해 근절해야 할 표현, 너무 만연해 본인이 혐오인지 모른 채 사용하고 있는 표현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밀한 이해 없이 모든 혐오표현이 일률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박 변호사는 “해외에서도 모든 혐오표현을 다 동일한 수준으로 다루진 않는데, 이 부분이 잘 안 짚어지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혐오니까 없애야 돼'라고 하면, 그 표현을 한 사람들은 '이게 왜 혐오야', '이런 말도 못해'라고 이야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럴수록 혐오를 설명하는 언론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특정 표현이나 내용이 왜 혐오표현인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서 왜 부적절한 발언인지 짚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혐오 발언을 '논란'으로 축소시키고 정치권과 온라인 상 공방만 다루다가 끝나면, 혐오를 확산하는 데 그칠 뿐 근본적인 성찰로 이어질 수 없다. 박 변호사는 “혐오표현은 차별이나 증오를 조장하는 표현이어야 한다. 단순히 누가 싫다는 것과 혐오표현은 다르다”며 “관련해 언론의 밀도있는 고찰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2022년 5월26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단식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차별표현,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고 세세한 차이를 정의한 기본법이 제정되어야 사회적으로 혐오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국회나 정부에서 하고 있는 가해자 처벌 방식은 근본적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왜 이 표현이 혐오이고 차별적인지를 법이 계속 정의하고, 국가는 단순히 가해자 처벌에 그치는 게 아닌 캠페인이나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며 “찍어누르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어서 '저런 행동은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별과 혐오가 법으로 규정되면, 언론 보도 기준을 포함해 각종 방침을 만들 때도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책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같은 날 미디어오늘에 “법으로 차별과 혐오표현이 금지됐는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계속해 '논란', '혼란'으로 보도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무슨 근거냐'는 식의 불필요한 논쟁이 계속된다”고 지적한 뒤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언론에서 보도할 때도, 교육을 하거나 내규를 만들 때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을 기본으로 이후 관련된 후속 입법, 영역별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선택적 '혐오' 보도 문제

혐오와 관련된 이슈를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행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차별금지법 같은 기본법 제정이 중요하다. 가령 혐오에 대한 특정 사안이 정치권 내에서 정쟁화되는 경우엔 언론의 이목도 집중되지만, 이주민 혐오, 장애인 혐오 등에 대해선 '원래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이슈화하지 않는 등 선별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에 대한 지적이다. 이 칼럼니스트는 “이러한 온도 차를 줄이고 기본 밑바탕을 다지는 데 차별금지법 논의가 중요하다”며 “우리 사회 차별과 혐오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사안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밑바탕을 다지는 데 차별금지법 제정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대책으로는 편집국 차원에서 초반 논의를 통해 특정 사안을 어떻게 규정할지 정하고 시작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배재고 사태처럼 다수 부서에서 같은 이슈를 다루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처음에 '논란'으로 보도해버리면 타 부서나 타 언론사에서도 따라서 쓰며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니스트는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기사에 언급할 건지 이야기하는 풍토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여성혐오, 퀴어혐오, 지역혐오, 이주민 혐오 등 혐오의 축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권 감수성에 대한 뉴스룸 내 구성원에 대한 재교육도 필요하고 채용 과정에서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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