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8% “동물은 물건 아니다”…5년 만에 다시 불붙은 민법 개정 논의
국민 87.8% “동물, 일반 물건과 구별해야”
학대 동물 소유권 박탈 등 후속 논의 주목

동물을 '물건'으로 분류한 현행 민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법무부가 반려동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골자로 한 '동물 비물건화' 민법 개정 추진에 재시동을 걸면서다. 그간 반려동물이 죽으면 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봉투에 담아 배출하거나, 소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생명'이란 가치가 더 존중받는 사회적 변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9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동물 비물건화'를 위한 민법 개정 재추진을 위해 오는 16일 '동물의 비물건화 입법 쟁점 토론회'를 열고 구체적인 입법 방안과 반려동물 압류 문제 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다. 토론회에선 △동물 관련 법제화 현주소와 개선 방향 △동물 비물건화 민법 개정 필요성 및 의의 △압류 과정에서 반려동물 취급 등 3개 주제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법무부 측은 이 토론회를 동물 법적 지위 개선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아 민법 개정 재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번 민법 개정 추진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 4월 '반려견 비비탄 난사 사건'과 관련해 "엄정 대응이 필요한 야만적인 동물학대 범죄"라고 지적하며 민법 개정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 신호탄이 됐다. 앞서 법무부는 2021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신중 검토' 의견을 내며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개정안은 결국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현행 민법 제98조를 보면 유체물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도 법적으로는 물건의 지위에 놓여 있다.
이 민법 개정안은 '물건'으로 치부된 동물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게 핵심 목표다. 반려동물 '죽음'과 관련해 '쓰레기'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현실과 '학대'에 대한 낮은 처벌 등이 문제 의식으로 자리한다. 현행법이 정서적·윤리적 쟁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물론, 상식밖의 법적 판결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5년 만에 재개된 개정 논의에 대한 국민적 호응도도 높은 편이다. 법무부가 한국갤럽을 통해 지난달 22~25일 전국 18세 이상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7.8%가 '민법상 동물을 일반적인 물건과 구별해 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역 내 반려인과 동물보호단체는 이 민법 개정안이 동물복지권 인식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며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10살 푸들을 키우는 김향호(59·대구 중구)씨는 "동물이 법적으로 일반 물건과 똑같이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민법 개정을 계기로 동물을 함부로 대하거나 학대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책임도 한층 강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측은 "법무부의 민법 개정 추진 의지를 적극 환영한다. 민법 개정 논의가 장관 개인의 의견 표명에 머무르지 않고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입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민법이 전격 개정되면 동물 학대자 소유권 제한과 피해 배상 현실화 등 후속 제도 개선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행법상 동물 학대자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학대받은 동물의 소유권을 박탈하거나 향후 동물 사육을 금지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다.
한주현 변호사(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안에 관한 실무상 평가와 향후 과제 논문 집필)는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민법상 소유권은 물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만큼 이를 제한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란 관점에서 동물 학대 당사자라 하더라도 피해 동물 사육금지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며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민법 규정이 시행된다면 일반 물건과 달리 일정한 경우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소속 박주연 변호사는 법원이 형량과 손해배상 범위를 판단할 때 동물의 생명성과 특수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할 근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그동안 '반려견은 인간과 공감하는 능력이 있는 생명체로서 여타의 물건과는 구분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등 반려동물의 특수성을 고려한 판결이 다수 나왔지만, 수의사의 의료과실로 반려토끼가 죽은 사건에서 교환가격인 8만원만 재산상 손해로 인정한 판례도 있었다"며 "즉 지금껏 사건마다 판단자(판사)의 재량에 맡겨져 결과가 엇갈렸지만, 민법이 개정되면 동물의 가액을 초과하는 치료비 등 재산상 손해와 보호자의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는 법리가 보다 안정적으로 형성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민법 개정이 반려동물에 대한 최우선 가치를 생명 존중으로 삼는 사회 인식 전환에 포커스를 둬야 한다고 피력했다.
대구대 김규섭 교수(반려동물산업학과)는 "동물은 일반 물건과 달리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며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생명체"라며 "민법 개정은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고 학대·유기 예방과 소유자의 책임 강화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은 2021년 동물을 '지각력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물건에 관한 조항도 동물의 본성과 보호 원칙에 부합할 때만 적용하도록 했다"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생명체로서의 특성을 반영해 실질적인 사회 인식 전환이 이뤄지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윤화기자 truehwa@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