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65> 함경도해안지도첩

지도는 땅의 모습을 그리지만, 때로는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까지 보여준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한 ‘함경도해안지도첩(咸鏡道海岸地圖帖)’은 조선 후기 북방 해안의 지형과 어촌 마을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은 지도로, 현재 부산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도첩은 총 35면으로 구성되었으며,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절첩 형태로 제작되었다. 지도를 길게 펼치면 남쪽의 덕원부에서 북쪽의 단천군까지 조선 동북부 해안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북한의 원산과 문천에서 영흥 정평 함흥 홍원 북청 이원을 거쳐 단천에 이르는 지역이다.
지도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푸른 바다와 청록색 산줄기, 주황색으로 채색된 마을이다. 해안선을 따라 자리한 마을과 섬에도 색을 입혀 각각의 위치와 규모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화려한 채색보다 지도 곳곳에 적힌 숫자와 설명이다. 해안 마을마다 읍치까지의 거리, 가구 수, 마을 앞바다의 수심도 빠짐없이 기록하였고, 일부 지역은 가까운 바다와 먼바다의 깊이를 따로 표시할 정도로 구체적이다.
마을의 규모도 단순히 마을의 위치만 점으로 표시한 것이 아니라, 집들이 모여 있는 모습과 가구 수를 함께 나타내 당시 해안 마을의 규모까지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흔히, 조선시대 함경도 지도라고 하면 국경 방어를 위한 군사용 지도를 떠올린다. 함경도는 북방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기존 지도에는 진(鎭), 병영(兵營), 봉수(烽燧) 같은 군사시설 중심으로 제작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경도해안지도첩’은 이러한 군사시설이나 해상 방어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수심은 어선의 출입과 정박, 어업 활동에 직접 관계되는 정보이기 때문에 이 지도는 단순한 해안 방어용 지도가 아니라 해안 마을의 지리와 생활 기반을 파악하려는 행정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 지도는 지도 속 기록을 통해 제작 시기도 추정할 수 있다. 덕원부 신안 지역에는 “주부자와 송우암의 서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훼철되었다(新安有朱夫子宋尤庵書院 今以毁撤云)”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서 송우암은 덕원으로 유배되었던 우암 송시열을 가리킨다. 덕원 사람들은 그의 학문을 기리기 위해 용진서원을 세웠으며, 이 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따라서 이 지도는 1871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지도는 과거의 공간을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기록이다. ‘함경도해안지도첩’은 오늘날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조선의 북쪽 바다를 150여 년 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지도 앞에 서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그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고 조사하며 기록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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