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는 면죄부가 아니다’…배재고 경위서에 드러난 5·18 조롱의 불편함 [배우근의 롤리팝]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몰랐다”는 말로 책임이 사라질 수 있을까.
5·18 민주화운동 조롱 논란을 일으킨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들의 경위서가 공개되며 사건의 본질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36명의 경위서에는 다수 학생이 ‘스타벅스’, ‘탱크데이’ 등의 표현이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말인지 몰랐다는 취지의 진술이 담겼다.
“스타벅스 가야지”를 선창한 A군은 경위서에서 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직 팀 분위기만을 생각했고 광주를 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는 것.
“탱크데이”를 외친 B군도 5·18과 관련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스타벅스에서 탱크데이 이벤트를 했던 게 기억났다”며 “상대방을 비하하고 조롱하려고 소리 지른 건 아니다.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위서에는 다른 정황도 담겼다. 일부 학생은 해당 구호가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학생은 “‘스타벅스 빵야’ 구호가 나와서 애들한테 ‘스타벅스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물었다”며 “5·18 광주에 대한 것이라고 해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또 다른 학생도 “이건 아닌 것 같아 A군에게 ‘야 이건 아니지. 하지 마’라고 경고했다”고 진술했다.
경기 중 조롱성 발언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는 진술도 있다.
한 학생은 광주일고 투수가 미끄러지자 “‘왜 그라노’, ‘어젯밤에 뭐했노’라고 도발했다”고 적었다. 일베는 표준어 뒤에 기계적으로 ‘노’를 붙여 사용한다는 지적이 있다.

경기가 치열하면 응원도 과열될 수 있다. 그런데 상대 팀의 플레이를 흔드는 야유와 상대 지역의 역사적 상처를 겨냥한 조롱은 다르다.
특히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항쟁이자 국가폭력이 남긴 참혹한 피의 상처다. 이를 응원구호로 사용하면, 그라운드의 열기는 혐오와 모욕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배재고 선수들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광주일고는 용서와 배려로 그들을 품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선처가 곧바로 책임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무지는 때로 변명이 된다. 그러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몰랐다”로 비켜갈 수 없는 사안도 있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몰랐다’는 해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몰랐다면 왜 하필 광주일고였나”, “눈 찢는 행위가 인종차별인지 몰랐다고 하면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는 지적은 이 사건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보여준다.
KBSA는 지난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에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배재고는 8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다.
배재고 선수단에 내려진 징계의 무게는 다시 따져볼 수 있다. 그러나 출전정지의 시간만 흘러가고 교육이 비어 있다면, 6개월은 반성이 아니라 공백이 될 뿐이다.
이제라도 몰랐다면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알았다면 그에 맞게 책임져야 한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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