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카드로 출전해 4강行…세계 114위 아서 페리 돌풍
세계 10위 코볼리 3대0 제압
카밀라 英왕비도 기립 박수
빠른 발과 끈질긴 수비로
키 175㎝ 단신 약점 극복

9일(한국시간) 메이저 테니스대회 윔블던 8강전이 열린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 서브에이스로 경기를 끝낸 아서 페리(영국)가 잔디 코트 위에 드러누우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자국 선수의 맹활약을 응원한 카밀라 영국 왕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고,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도 축하를 보냈다. 센터코트를 가득 메운 영국 테니스 팬들도 기립박수와 환호를 페리에게 아낌없이 쏟아냈다.
페리는 이날 세계랭킹 10위 플라비오 코볼리(24·이탈리아)를 2시간15분 만에 3대0으로 완벽하게 제압했다. 심지어 마지막 3세트는 6대0으로 압도했다.
코트에서 엄청난 함성을 즐긴 페리는 "압박이 아니라 특권이다. 센터코트에서 영국 관중의 응원을 받는 건 내 꿈이었고, 나는 그 꿈속에 살고 있다"며 응원을 부담이 아닌 에너지로 느꼈다고 밝혔다.
직전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 준우승을 거둔 코볼리를 너무나 가볍게 꺾은 페리의 세계랭킹은 불과 114위다. 게다가 복식 전문 선수에 단식 우승은 챌린저 1회, ITF 퓨처스 6회로 세계적인 선수와는 거리가 멀다. 챌린저대회 우승도 결승에서 상대의 기권으로 얻은 행운의 우승이었다. 무엇보다 세계랭킹 114위인 페리는 이번 대회에 자동출전권(104명)을 받지 못해 와일드카드(특별 추천 선수)로 출전했다. 페리는 "와일드카드로 여기에 왔지만 상대가 누구든 이기기 위해 코트에 들어서겠다"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4강 진출로 페리는 2001년 고란 이바니셰비치(크로아티아) 이후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출전해 준결승까지 오른 두 번째 선수가 됐다. 이바니셰비치는 당시 정상권이었지만 부상으로 인한 공백으로 랭킹이 밀린 사례이기 때문에 사실상 '순수한 랭킹 100위권 밖 와일드카드의 반란'은 윔블던에서 페리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대회에서 와일드카드 출전 선수가 준결승까지 오른 것도 지미 코너스(미국·1991년 US오픈), 앙리 르콩트(프랑스·1992년 프랑스오픈), 이바니셰비치에 이어 페리가 네 번째일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다.
그의 신체조건도 사람들이 응원하고 환호하는 이유다. 그의 키는 175㎝다. 190㎝가 넘는 장신선수들이 지배하는 현대 테니스에서는 작은 키다. 하지만 그는 "내 강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된다. 키가 작다고 해서 코트 위에서 작아질 필요는 없다. 나는 남들보다 한발 더 뛰고, 더 낮게 깔리는 슬라이스를 치며, 상대가 짜증 날 정도로 끈질기게 붙어버리겠다"고 인터뷰에서 답했다.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페리는 영국 테니스 중 가장 부유한 배경을 가진 선수로 꼽힌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5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린 금융인으로 2009년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의 FC로리앙을 인수해 구단주 겸 회장으로 있는 로익 페리다. 하지만 페리는 "아버지의 성공과 재정적 안정은 축복이다. 하지만 코트 위에는 나 혼자 들어간다.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코트 위에서 얻은 모든 포인트는 온전히 내 땀방울의 결과"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상상 속에서나 나올 만한 기적 같은 동화를 '페어리 테일(Fairy Tale)'이라 부른다. 그리고 페리는 윔블던에서 자신만의 '페리 테일(Fery Tale)'을 쓰고 있다. 결승 진출 티켓을 두고 그는 세계 3위 알렉산더 츠베레프(독일)와 맞붙는다. 그의 동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윔블던을 달구는 가장 뜨거운 관전포인트가 됐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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