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 대신 응답한다"… 설문조사 시장에 확산되는 '합성 소비자'
스타트업·전통 리서치 기업도 기술 개발
조사 비용·시간 줄이겠지만 의존은 금물

기업의 사업 전략을 결정하고 정부 정책의 방향을 짚어주는 시장조사나 여론조사에도 인공지능(AI)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합성 소비자'라고도 불리는 이 AI 기술은 리서치 시장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AI로 만들어진 가상의 소비자가 사람 응답을 대신하는 방식인데, 조사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크게 절감되겠지만 조사 결과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AI로 만든 가상 응답자들의 설문조사 답변이 실제 사람들의 답변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실험 결과를 담은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공동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오픈AI의 GPT-4를 비롯한 거대언어모델(LLM)에 다양한 가상의 미국인 응답자들을 생성하게 했다. 그리고 미국인 총 11만9,000여 명이 참여한 기존 사회과학 분야 조사 70건을 가상 응답자들에게 적용해 봤다. 그 결과 기존 조사 참여자들의 응답과 가상 응답자들의 답변 사이에 매우 강한 상관관계(피어슨 상관계수 0.85)가 있음을 확인했다.
AI로 만든 소비자 응답, 사람과 유사
네이처 논문은 가상(합성) 소비자가 사람이 할 응답을 거의 정확히 예측해 답변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미 국내외 테크업계에서 합성 소비자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소비자나 유권자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특정 성별·연령·성향을 가진 가상 인물을 수천 명 생성하고, 이들이 사람을 대신해 설문에 답하는 방식이다.
국내 스타트업 인텔리시아는 CJ제일제당, LG유플러스를 비롯한 20여 개 기업과 60여 건의 조사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합성 소비자가 3차원(3D) 가상 매장에서 상품을 고르는 시뮬레이터를 공개하며 인간의 답변 외에 행동까지도 예측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아루는 인구 통계와 행동 데이터로 훈련된 AI 에이전트 5,000개를 활용해 지난해 6월 뉴욕시장 민주당 예비선거 결과를 예측해 낸 뒤 시리즈A 투자에서 1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중국에선 여론 확산을 시뮬레이션하는 오픈소스 미로피시가 최근 공개돼 개발자 플랫폼 깃허브에서 화제를 모았다. 입소스, 닐슨 IQ 같은 전통 리서치 기업들도 자사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합성 소비자 도구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변수 많은 트럼프, AI가 대신 응답 불가"
합성 소비자 기술의 강점은 비용과 시간 감축이다. 4~6주 걸리던 사람 대상 조사 기간이 2~3일로 줄고, 돈도 훨씬 덜 든다. 미국 리서치 기업 퀄트릭스가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의 시장조사 전문가 3,200여 명을 조사했는데, "3년 안에 시장조사의 절반 이상이 합성 응답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데 71%나 동의했다.
다만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AI가 학습할 데이터가 없는 질문엔 응답이 어렵고, 선거 직전 후보 단일화처럼 급변하는 상황은 AI 답변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이번 논문에서도 생각이나 태도에 대한 내용은 AI와 사람 응답이 비슷했지만, 백신 접종 여부처럼 다양한 측면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응답에선 상관계수가 크게 떨어졌다. 그만큼 설문·여론조사를 AI에만 맡기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처 논문 연구진도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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