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품은 마흔살 미술관, 빛으로 말을 걸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2026. 7. 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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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과천관 40주년 특별전 ‘빛의 상상들’]
터렐·파레노·나바로·김아영 등
‘빛’을 소재로 한 작품들 선보여
야외엔 ‘쉴 수 있는’ 프로젝트도
필립 파레노의 2019년작 ‘마퀴’는 미술관 관람객을 환영하듯 백남준의 ‘다다익선’으로 이어지는 전시장 입구 위쪽에 설치됐다.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극장이나 호텔 입구 등지에서 장식처럼 빛나는 ‘마퀴’는 곧 시작될 무대를 알리는 예고이자 환영의 의미다. 필립 파레노의 작품 ‘마퀴’가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 로비에 걸려 관람객들을 맞는다. 네온과 전구, 금속 구조물로 이뤄진 작품은 빛나다 깜빡이기도 하고 밝기를 바꾸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관 개관 40년을 기념해 10일 개막하는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의 시작이다. 기대감을 부풀리는 작품 너머로 ‘빛 예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다다익선’도 보인다.

과천관은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 건축가 김태수의 설계로 문을 열었다. 자연 속에 안긴 미술관으로, 2013년 서울관 개관 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추로서 한국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이끌어 온 곳이다. 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빛을 공간과 작품과 관람객을 잇는 매개로 보고, ‘빛의 상상들’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김아영의 2024년작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가 ‘MMCA 과천 40주년: 광경’ 전시를 위해 장소특정적 설치로 선보였다. /과천=조상인기자

‘다다익선’을 지나 전시실 쪽으로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 정면에서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인버스’가 빛난다. 3층 브릿지 공간에 설치된 까닭에 올려다보는 시선은 교회 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김아영은 기술과 데이터, 플랫폼 노동과 가상세계를 신화적 서사로 엮어 왔다. 가상의 도시를 횡단하는 두 인물의 여정에 속도와 시간, 과거와 미래, 현실과 가상이 교차한다. 네모반듯하지 않은 비정형의 모니터가 특이한데, 전시장을 돌아본 작가가 이 공간에 맞춰 LED 패널을 배치한 장소특정적 작업을 선보였다. 기계적 미래도시 풍경이, 유리창 너머 자연과 어우러져 감상의 맛을 더한다.

빛을 소재로 명상적 장면을 그려내는 제임스 터렐의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번 MMCA 과천 40주년 특별전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신규 공간인 2원형전시실에서는 ‘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보는 빛’이 아니라 ‘경험하는 빛’이다. 곡면의 벽을 따라 들어가 네모난 빛을 마주하게 된다. 빛은 아주 느리게 서서히, 2시간30분에 걸쳐 색채를 바꾼다. 국립현대미술관 발전위원회(MDC)가 구입해 지난해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이반 나바로의 빛과 거울을 이용한 설치작품 ‘에코(벽돌)’이 MMCA 과천 40주년 특별전에 선보였다.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칠레 수도 산티아고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반 나바로는 네온과 거울로 무한한 공간을 짓는다. 군사독재 시기를 경험한 그에게 전기와 빛은 권력이자 통제이며, 불안이자 폭력의 은유다. ‘에코(벽돌)’는 끝을 알 수 없는, 한없이 깊은 우물 속 같은 작품이다. 공포와 경이, 불안과 아름다움이 한자리에 있다. 2011년작 ‘무제(쌍둥이 빌딩)’ 사각형의 낮은 유리상자 2개로 이뤄졌다. 2001년 9·11테러로 사라진 건물의 흔적이다. 겉과 달리 작품 안쪽은 무한히 깊은 공간이 펼쳐진다. 우뚝 솟았던 건물 대신 꺼져 내린 깊이가 상실을 이야기 한다. 이번 전시는 양보다 질이다. 사립미술관 전시에서 고가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작품들을 국립미술관으로 만나는 것은 미술관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다. 김아영의 작품은 독일 함부르크 반호프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 미국 뉴욕 모마 PS1, 네덜란드 반아베 미술관 개인전 등 해외 전시에서 주목받았던 터라 더 특별하다.

김하늘의 ‘스티로폼 소파(어상자)’는 MMCA 과천 40주년 특별전 중 야외 조각프로젝트 ‘머무는 자리’ 전시의 출품작으로 선보였다.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눈여겨 봐야할 야외 조각공원 프로젝트에는 ‘머무는 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1만평 규모에 84점의 조각들이 곳곳에 배치된 조각공원의 역사와 공공적 가치를 젊은 작가들의 신작으로 보여준다. 하늘보다 더 파란 의자를 둥글게 배치한 김하늘의 ‘스티로폼 소파(어상자)’는 수산시장에 버려진 폐스티로폼으로 제작된 모듈형 의자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해 순환을 이야기 한다. 돗자리에서 출발한 하지훈의 ‘자리’는 전통 좌식 문화와 현대의 휴식을 포갠 작업이다. 곽인식의 돌탑형 설치작품 곁에 자리잡은 방효빈의 ‘고리의 궤도’는 구불구불한 금속 선의 반복이 사람과 공간, 작품과 풍경을 이어준다. 임정주의 ‘논엘로퀀트’, 황형신의 ‘재구성된 풍경’ 등 작품들은 관객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앉고 기대어 쉬어도 된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고, 터렐과 나바로의 작품은 내년 10월 말까지만 볼 수 있다. 과천관 통합관람료 3000원.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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