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사의 밀도로 승부한 창작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실연 박물관’과 ‘기억상실’ 판타지적 요소 결합
1인 7역의 ‘멀티맨’ 영리한 활용과 입체적 캐릭터 돋보여

로맨틱 코미디는 흔히 가벼운 웃음과 해피엔딩을 담보하는 장르로 소비된다. 하지만 수작으로 평가받는 로맨틱 코미디는 인물 간의 결합과 충돌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이나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관객이 극 중 인물들의 엇갈림에 실소를 터뜨리다가도 이내 가슴 깊이 공감하려면 보편적인 감정선을 관통하는 단단한 서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트컴퍼니 두루가 제작한 창작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김소라 작‧김민서 작곡)는 이러한 장르적 미덕에 충실하면서도 ‘실연 박물관’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기억상실’이라는 판타지를 결합해 사랑의 철학적 의미를 묻는다.
극은 감정의 속도와 온도가 다른 한 연인의 여정을 쫓는다. 전문 큐레이터를 꿈꾸는 정인(여·30)은 관계에 있어 주도적이고 솔직하다. 반면 정신과 의사인 남해(남·32)는 타인의 내면은 들여다보면서도 자신의 감정 앞에서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인물이다.
이러한 성향의 대비는 관계의 변곡점이 되는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균열을 만들어낸다. 프러포즈에 대한 기대를 안고 크로아티아 여행길에 오른 정인과 달리, 남해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확신을 주지 못한 채 상황을 회피하기만 한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작은 오해들은 결국 ‘이별’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후의 서사 동력은 두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와 기억이 지워진 채 재회하는 후반부에서 발휘된다. 머리로는 서로를 잊었지만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은 극의 중요한 포인트다. 작품은 ‘기억이 소멸해도 감정의 찌꺼기는 남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적 밀도를 높였다.
무대 위 장치적 매력도 돋보인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존재하는 ‘실연 박물관’과 ‘물건을 맡기면 사랑이 지워진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철학적 담론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1인 7역의 ‘멀티맨’의 존재도 극의 매력을 더한다. 박물관장, 택시기사, 치매 할머니 등을 오가는 멀티맨은 적절하게 극에 개입해 인물들의 만남과 엇갈림을 조율하며 서사의 틈새를 메운다. 특히 연출을 겸하는 송광일이 직접 멀티맨으로 무대에 올라 전반적인 템포와 리듬을 통제한다는 점도 이 작품만의 차별화된 강점이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탈피해 사랑과 상실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입체적인 캐릭터와 서정적인 넘버에 녹여낸 이 작품은 지난 201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첫 독회를 거쳐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레퍼토리로 선정되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본을 다듬어왔다.
소극장 뮤지컬이 종종 설정 과잉이나 애드리브에 의존하는 것과 다르게 탄탄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상처의 기억을 유쾌하게 풀어낸 창작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는 11일까지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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