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정착한 천재 피아니스트 문지영 "소리가 마음에 안들면…모네 '수련'서 위로받죠"
'클래식계의 스타' 피아니스트 문지영
예술 가득한 파리
음악에도 큰 영감
하나의 음 내더라도
나의 소리 찾아 고민
韓서 올해부터 3년간
슈베르트 무대 펼쳐

화려한 기교와 자극적 타건이 무대를 장악하는 시대, 조금 다른 길을 걷는 연주자가 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31)이다. 만 19세가 되기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콩쿠르 중 하나인 제네바 국제 콩쿠르(2014년)에서 우승했다. 이듬해엔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부조니 콩쿠르는 2000년 이후 우승자를 내지 않다가 15년 만에 문지영을 우승자로 낙점했다. 최초의 동양인 우승 기록이다.
두 번의 대형 콩쿠르 우승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로 떠오른 그에게 쏟아진 찬사 중 “이 시대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발견했다”(외르크 데무스 당시 부조니 콩쿠르 심사위원장)는 말이 그를 가장 잘 표현한다.
3년간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생활을 접고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콩쿠르 우승 뒤 10년간 문지영은 여러 도시를 집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어디에서도 내가 이곳에 속한다는 감각이 없다”며 “나의 안식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음악과 무대 그 자체”라고 했다.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는 연주자인 그는 왜 파리를 정착지로 삼았을까. “미술관이 많기 때문이에요. 어느 도시를 가든 미술관부터 찾는데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가 이웃하고 있는 파리는 최고의 도시죠. 가자마자 ‘루브르 멤버십’부터 끊었는데, 야간 개장 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두어 시간씩 보고 또 보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에요.”
그가 시간을 보내는 그림은 ‘모나리자’ 대신 맞은편에 걸린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이나 들라크루아의 ‘프레데리크 쇼팽의 초상’. 음악에 큰 영감을 준단다.
“좋은 그림을 보고 와서 연습하면 다른 느낌을 받아요. 어떤 이미지와 장면은 음악을 표현하는 데 바로 적용이 되거든요. 그날따라 피아노 소리가 맘에 안 들 때 오랑주리에 가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오면 그 빛과 질감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여요.”
미술관 밖에서도 파리는 도처에 예술이 스며 있다. 쇼팽, 마네, 헤밍웨이의 흔적을 밟고, 센 강가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최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는 그는 “섬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제 몸이 아픈 것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문지영은 하나의 음을 내더라도 ‘나의 소리’를 찾느라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냥 쳐도 소리가 나는 게 피아노지만, 소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어떻게 치든 자기만의 음색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스승인 언드라시 시프는 그에게 “내 제자 중 소리를 이해하는 건 너밖에 없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새 곡을 배울 때 절대 레코딩을 먼저 찾지 않는 습관도 있다. 귀에 익은 해석을 재현하는 건 자신의 음악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홀로 악보를 펼치고 텍스트와 씨름하는 철저히 고독한 과정을 거친다.
이런 뚝심은 인생의 두 스승에게서 비롯했다. 그는 10대에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뒤 10년간 자신을 이끌어준 김대진 교수를 “지금의 내가 피아노를 치게 만든 인생의 스승”으로 부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에는 2022년 독일 베를린 바렌보임-사이드아카데미에서 시프의 첫 한국인 제자가 됐다. 말보다 건반을 함께 치며 호흡을 맞춰가는 시프의 곁에서 소리를 듣는 매 순간을 그는 “다시 경험하지 못할 귀한 자산”으로 여긴다.
올해부터 3년간 문지영은 슈베르트에 집중한다. 금호문화재단이 그에게 연 1회 슈베르트 무대를 맡겼다. 첫 여정은 오는 11월 12일 후기 소나타 13번과 16번으로 시작된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이나 바흐와 달리 인간 삶의 연약함과 끝없는 ‘슬픈 아름다움’이 공존해요. 연주자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섬세한 면 없이는 닿을 수 없는 세계죠.”
지난 3월 시프와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함께 슈베르트를 연주해 뜨거운 호응을 얻은 그는 거장의 연주에서 ‘인간적 편안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과시하는 것 없이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소리였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날보다 아쉬운 날이 더 많아요. 여전히 불확신에 차 있는 게 지금의 저죠. 하지만 베토벤 같은 음악가 다수가 죽을 때까지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 순간 고통스러워했잖아요. 끊임없는 결핍과 고민이 음악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너무 어려운 일일지라도요.”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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