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정착한 천재 피아니스트 문지영 "소리가 마음에 안들면…모네 '수련'서 위로받죠"

조민선 2026. 7. 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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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선의 아티스트룸
'클래식계의 스타' 피아니스트 문지영
예술 가득한 파리
음악에도 큰 영감
하나의 음 내더라도
나의 소리 찾아 고민
韓서 올해부터 3년간
슈베르트 무대 펼쳐
파리지앵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서울 종로구 오라카이 인사동 스위츠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화려한 기교와 자극적 타건이 무대를 장악하는 시대, 조금 다른 길을 걷는 연주자가 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31)이다. 만 19세가 되기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콩쿠르 중 하나인 제네바 국제 콩쿠르(2014년)에서 우승했다. 이듬해엔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부조니 콩쿠르는 2000년 이후 우승자를 내지 않다가 15년 만에 문지영을 우승자로 낙점했다. 최초의 동양인 우승 기록이다.

두 번의 대형 콩쿠르 우승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로 떠오른 그에게 쏟아진 찬사 중 “이 시대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발견했다”(외르크 데무스 당시 부조니 콩쿠르 심사위원장)는 말이 그를 가장 잘 표현한다.

3년간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생활을 접고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콩쿠르 우승 뒤 10년간 문지영은 여러 도시를 집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어디에서도 내가 이곳에 속한다는 감각이 없다”며 “나의 안식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음악과 무대 그 자체”라고 했다.

지난 3월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공연 한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오른쪽)와 문지영. 문지영 제공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는 연주자인 그는 왜 파리를 정착지로 삼았을까. “미술관이 많기 때문이에요. 어느 도시를 가든 미술관부터 찾는데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가 이웃하고 있는 파리는 최고의 도시죠. 가자마자 ‘루브르 멤버십’부터 끊었는데, 야간 개장 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두어 시간씩 보고 또 보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에요.”

그가 시간을 보내는 그림은 ‘모나리자’ 대신 맞은편에 걸린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이나 들라크루아의 ‘프레데리크 쇼팽의 초상’. 음악에 큰 영감을 준단다.

“좋은 그림을 보고 와서 연습하면 다른 느낌을 받아요. 어떤 이미지와 장면은 음악을 표현하는 데 바로 적용이 되거든요. 그날따라 피아노 소리가 맘에 안 들 때 오랑주리에 가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오면 그 빛과 질감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여요.”

미술관 밖에서도 파리는 도처에 예술이 스며 있다. 쇼팽, 마네, 헤밍웨이의 흔적을 밟고, 센 강가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최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는 그는 “섬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제 몸이 아픈 것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문지영은 하나의 음을 내더라도 ‘나의 소리’를 찾느라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냥 쳐도 소리가 나는 게 피아노지만, 소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어떻게 치든 자기만의 음색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스승인 언드라시 시프는 그에게 “내 제자 중 소리를 이해하는 건 너밖에 없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새 곡을 배울 때 절대 레코딩을 먼저 찾지 않는 습관도 있다. 귀에 익은 해석을 재현하는 건 자신의 음악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홀로 악보를 펼치고 텍스트와 씨름하는 철저히 고독한 과정을 거친다.

이런 뚝심은 인생의 두 스승에게서 비롯했다. 그는 10대에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뒤 10년간 자신을 이끌어준 김대진 교수를 “지금의 내가 피아노를 치게 만든 인생의 스승”으로 부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에는 2022년 독일 베를린 바렌보임-사이드아카데미에서 시프의 첫 한국인 제자가 됐다. 말보다 건반을 함께 치며 호흡을 맞춰가는 시프의 곁에서 소리를 듣는 매 순간을 그는 “다시 경험하지 못할 귀한 자산”으로 여긴다.

올해부터 3년간 문지영은 슈베르트에 집중한다. 금호문화재단이 그에게 연 1회 슈베르트 무대를 맡겼다. 첫 여정은 오는 11월 12일 후기 소나타 13번과 16번으로 시작된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이나 바흐와 달리 인간 삶의 연약함과 끝없는 ‘슬픈 아름다움’이 공존해요. 연주자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섬세한 면 없이는 닿을 수 없는 세계죠.”

지난 3월 시프와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함께 슈베르트를 연주해 뜨거운 호응을 얻은 그는 거장의 연주에서 ‘인간적 편안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과시하는 것 없이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소리였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날보다 아쉬운 날이 더 많아요. 여전히 불확신에 차 있는 게 지금의 저죠. 하지만 베토벤 같은 음악가 다수가 죽을 때까지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 순간 고통스러워했잖아요. 끊임없는 결핍과 고민이 음악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너무 어려운 일일지라도요.”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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