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영화때문이라도 통일해야”... 한류접한 北 주민들 반응

김민서 기자 2026. 7. 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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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북한인권시민연합’ 30주년 세미나

#1.“이제야 진짜 영화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 우리나라(북한)는 남조선 영화때문이라도 조국통일해야 한다. 힘든 사람들에게 먹이지도 않으면서 집체만한 잠수함 만든 것 보고 동무들이랑 한숨을 쉬었다. 나도 김정일 장군님 아들로 태어났으면 저런 것 할 수 있다.”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를 본 평양의 30대 남성)

몇해 전 북한 당국이 남한 드라마를 봤다며 노동교화형 12년을 선고한 평양의 16세 소년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모습. /2024년 샌드연구소 영문뉴스레터 제공 영상 캡처

#.2 “자본주의 나라의 옷차림을 봤는데 난 이렇게 입고 거리 바닥에 못 다닐 것 같다. 나라가 우리 처녀들의 봄햇살 같은 마음을 어려서부터 다 짓눌러 놨다. 고운 것을 따라하고픈 내 속 생각과 그럼 안된다는 내 생각이 부딪히는데 뭐가 난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입은 사진 보면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 부러움이 든다.” (패션잡지 ‘코스모폴리탄’을 접한 자강도의 20대 여성)

#.3 “이렇게 재밌는 영화는 처음 본 것 같다. 3일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밖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본 평안북도의 50대 여성)

9일 ‘북한인권시민연합’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남한의 영화, 드라마, 음악 등 한류(寒流)를 접한 북한 주민들의 소감이 소개됐다.

민간 대북방송 전문가인 이광백 국민통일방송·데일리NK 대표는 이날 세미나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콘텐츠 전략과 관련해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문화·오락 콘텐츠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한류 콘텐츠를 접한 북한 주민들이 몇해 전 직접 전해온 소감을 발표했다.

2024년 드라마 ‘재벌형사 1’을 본 평안북도 40대 여성은 소감문에서 “빽(배경), 안면 없는 백성들만 죽고 힘있는 것들은 거들먹 거리면서 삿대질 해가면서 다니는 것을 돈도 빽도 안 통하는데로 데려다가 혼내주는 안전원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23년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를 본 평양의 30대 남성은 “잠수함에 들어갈 돈으로 쌀 달라는 소리 제발 안하니까 영화라도 멋있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살아갈 락(낙)을 누리게 해주면 나라답겠다. 입이 있어도 내 마음 속 말을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답답함을 호소해봤다”고 했다.

남한 노래를 접한 함경북도의 30대 남성 군관은 “소리와 가사가 정말 잔잔하고 너무 포근하다”며 “부대에서 힘들어하고 퇴근해서 들으면 소독솜이 마음을 문지러주는 느낌”이라고 했다. 함경북도의 40대 남성 노동자는 “인간의 감정과 생활을 솔직하게 그대로 가사에 담아 노래를 부르니 눈물이 났다”며 “우리는 왜 우리들 감정을 억누르며 이렇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이)드는 노래였다”고 했다.

남한 언론 보도를 접하고서야 다른 나라들과 달리 북한만 인터넷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주민도 있었다. 평양의 20대 여성은 북한이 230국 중 유일하게 인터넷 사용 비율이 0이라는 남한 언론 기사를 접한 뒤 “이 기사를 보고서야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인터넷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나라는 정치군사 강국이며 우리 인민은 가장 행복한 인민이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무엇이 두려워 인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위 사례들은 2024년 민간 대북방송 ‘국민통일방송’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통일미디어’의 대북 방송 수용자 실태 조사에 응한 북한 현지 주민들이 ‘통일미디어’측에 전한 소감들이다. 당시 북한 주민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액정TV와 노트텔 및 태블릿 PC, 노트북 등 기기 보급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남조선 및 외국 록화물(녹화물)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5%가 “있다”고 답했고 대부분이 USB 메모리나 마이크로SD카드에 담긴 콘텐츠를 보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런 디지털 저장장치를 이용해 노트텔이나 태블릿 PC 등으로 외부 정보를 접하면 이용 기록이 남지 않거나 삭제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광백 대표는 “문화·오락 콘텐츠는 북한 주민들의 선호도가 높아 외부 정보를 확산하는데 유리하고 뉴스도 지난 몇 년 동안 북한 주민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콘텐츠 중 하나”라고 했다. 뉴스의 경우 북한 간부들에게도 인기가 높은데 특히 중국과의 무역업에 종사하는 간부들 사이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경제 동향 정보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북한 내 미디어 기기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외부 정보를 들으려는 북한 주민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이 인터넷과 위성TV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디지털 콘텐츠를 담은 저장기기를 제공하는 것과 라디오 전파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당국은 고강도로 한류 등 외부정보 유입을 차단하고 있고 남한 콘텐츠를 접하거나 유포하는 경우 그 정도에 따라 처형까지 하는 등 처벌을 강화한 상태다. 대북 전문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2024년 7월 평양시 안전부는 남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봤다는 이유로 류경건설관리국연대 여성 돌격대원 2명을 처벌했고 평양시 국가관광총국 소속 인사는 남한 영화와 드라마 및 노래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북한 당국의 통제와 처벌이 강화된 만큼 북한 주민들에 외부 정보를 전달하는 일도 훨씬 어려워졌다. 이 대표는 “북한 내부로 (한류 콘텐츠가 담긴) 저장 장치를 넣고 북한 내부에서 널리 확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며 “북한 당국의 엄격한 국경 통제 때문에 정보를 자주 제공하거나 정기적으로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때문에 한류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단체가 적고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단체의 경우에도 몇 달에 한번이나 많아야 한 달에 한번 정도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이 대표는 “64G~128G 용량의 마이크로SD 카드 1만개를 북한에 보내려면 카드 비용만 적게는 6000만~1억7000만원이 든다”며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주기를 단축해야 네트워크도 안정적으로 가동하고 (한류 콘텐츠)구독자 확대에도 유리하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양희 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이 유엔의 인권 심리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북한 당국의 기만적 행태를 증언하기도 했다. 이 전 위원장은 200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 위원장 재임 당시 북한의 제3·4차 아동권리협약 국가보고서 심의를 주재했다. 그는 “제가 목격한 건 북한이 자신들을 ‘정상 구가’로 포장하기 위해 고도로 훈련된 대표단을 파견했다는 사실”이라며 “평양 당국이 연출한 계산된 위선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북한 대표단은 당시 여성 동시통역사 2명이 포함된 준비된 팀을 이끌고 제네바에 도착했고 평소 유엔 현장에서 공격적 언사를 일삼던 북측 인사들과는 달리 매우 정중하고 전문적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 전 위원장은 “북한 당국의 학생들에 대한 노동 착취 문제에 대해 심의하면서 아동들이 농작물 수확과 건설 현장 등에 동원되기 위해 학교 전체가 휴교한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했고 북한 대표단은 이를 두고 “전인적 교육 접근법”의 일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했다. 또 ”대규모 집단체조 ‘아리랑’에 아동을 동원해 착취하는 것도 교육권 박탈의 한 형태로 지적하자 북한 대표단은 크게 당황했다”며 “그들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반박할 준비만 해왔던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교사를 하다 2019년 탈북해 2020년 남한에 입국한 강모씨는 이날 세미나에서 “북한도 국제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국제기구의 방문, 외국 언론의 보도, 유엔의 문제제기를 의식한다”며 “평소에는 주민들을 함부로 대하던 당국자들조차 외부의 눈이 자신을 향한다고 느끼는 순간 태도가 달라진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강씨는 2017년 5월 중국에 있는 아들과 중국 휴대전화로 전화 통화를 시도하다 국가보위부에 체포돼 보위부 구류장에 약 20일 동안 수감됐다 돈을 내고 석방됐다고 한다. 강씨는 “구금된지 사흘째 되던날 평소 같으면 예심원이 부르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어야 했는데 그날은 달랐다”며 “당시 내가 학교 교사라 특별히 그런 대우를 받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엔에서 북한을 방문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2014년 제 딸이 구금돼 체포됐을 때는 심한 폭행을 받아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구금시설에서는) 고개를 들 수도 없고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굽힌채 이동해야 했다”며 “그런데 제 경우는 달랐다. 유엔 인사가 북한을 방문한 기간 그런 가혹행위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던 것 같다”고 했다. 강씨가 구금 8일째 되는날 예심원은 과자를 건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유엔에서 누군가 북한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 보위부의 태도는 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한 주민들에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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