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청 로비가 문화공간으로…배찬영 초대전 시민 발길 이끈다
도예와 유리의 조화 담은 작품 전시…지역 문화 분권 새 모델 제시

행정 업무 중심이던 공공기관의 문턱을 낮추고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공공 영역에서 흡수하려는 지자체의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경산시청이 청사 로비를 개방형 갤러리로 전환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견 작가의 미술 전시를 유치한 것은 단순한 공간 재활용에 그치지 않고, 시민 체감형 문화 분권을 현장에서 실현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산시청 본관 1층 로비 갤러리에서는 전통 도예의 문법 위에 현대적 조형미를 접목해 온 배찬영 작가의 초대 미술전이 열려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거칠고 단단한 흙의 물성에 유리의 투명한 성질을 결합한 혼합매체(Mixed Media) 작품들과 더불어 평면 도자 회화(도화), 조형 오브제 등 배 작가의 후기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채워졌다.
이번 초대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소재의 과감한 확장과 융합이다. 배찬영 작가는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14회의 개인전과 200여 회의 단체전을 치르며 흙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탐구해 온 미술가다.
그는 이번 전시의 중심축인 '사과樂(락)' 연작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자연적 소재를 빌려 인간의 희로애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전통적인 가마 소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흙의 변형과 한계를 그대로 수용하는 동시에, 그 위에 고온으로 녹여낸 유리 파편의 영롱한 시각적 효과를 병치 시켰다. 포용성을 상징하는 도자의 곡선과 분절된 유리 곡면이 자아내는 팽팽한 긴장감은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겪는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투영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평이다.

공공미술 영역에서 굵직한 행보를 보여온 배 작가의 이력도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그는 대구 비산성당 벽화길 조성, 포항 다무포 하얀마을 도벽 제작은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울릉도 저동항 프로젝트의 대표 작가를 역임하며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꾸준히 고민해 왔다.
이번 전시가 단순한 미술 이벤트를 넘어 공익적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지자체가 직접 나서 문턱 높은 미술관 대신 일상적인 공간을 문화 거점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역 중견 작가들에게는 대중과 밀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각 플랫폼을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별도의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수준 높은 순수미술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시청을 찾은 경산시 사동 주민 류모(63) 씨는 "민원 서류를 떼러 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멋진 도자 예술을 감상하게 돼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시청 공간이 한결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배찬영 작가는 "전통의 깊이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작품을 통해 대중이 일상에서 우리 도예의 가치를 깊이 있게 향유하도록 돕는 문화적 가교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배찬영 작가 초대전을 계기로 경산시가 풀어야 할 향후 과제도 명확해졌다.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청사 내 개방 갤러리 운영을 연간 기획 프로그램으로 정착 시켜 상설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 내 유망 신진 작가와 중견 작가들이 번갈아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큐레이팅 시스템을 도입하고, 전시 공간 제공뿐 아니라 실질적인 지역 예술인 창작 지원책과 연계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지역 문화 분권'이 완성될 수 있다. 관공서의 열린 변신이 지역 예술계의 자생력을 키우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속가능한 문화 정책으로 안착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