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의 사하라, 지중해에 美치다]①탕헤르를 아십니까

김성태 오지트레커 2026. 7. 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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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김성태 오지트레커 |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 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 3월말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시간여 달려 도착한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Tánger)가 그렇다.

탕헤르는 전설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이자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이기도 하다.

탕헤르 출신인 이븐 바투타는 1325년 21세 때 고향을 떠나 29년 동안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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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최북단,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다문화의 교차로
비틀즈가 애용한 카페 하파, 지브롤터 해협이 눈에 가득
스파이와 밀수꾼, 예술가와 망명객이 뒤엉킨 2500년의 역사
국제 고속페리 선상에서 바라본 모로코 탕헤르의 모습. 스페인 타리파 항에서 모로코 탕헤르까지 한 시간 안팎 걸린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가장 짧은 국제 항로다. © 김성태 촬영
| 서울=김성태 오지트레커 |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 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 3월말부터 2개월여에 걸친 사하라, 지중해 여행은 큰 도전이었다. 여정이 긴 데다 큰 수술을 하고 나이도 그렇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지 않고 저지른 이번 여행은 새로운 세상과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길 위의 새 여정이었다. 북아프리카 사하라와 지중해의 낯설고 이국적인 풍광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시간 여행이라는 만화경을 통해 본 혼혈의 민족 구성과 비빔밥 같은 다양한 문화의 유적들, 미각을 혼란에 빠트리는 지중해 식단, 꾸밈없는 사람들의 표정은 일정 내내 여행자를 매혹시켰다. 차를 렌트해 직접 운전하며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을 비롯해 많은 오지를 찾아다녔다. 찾아다니며 감탄하고 느끼고 생각한 단상들을 시리즈로 적어본다.

<1>모로코 탕헤르

전 세계 오지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다 보면 지리나 역사적으로 기념비적 사연을 지닌 지명이나 장소가 많다. 수년 전 파키스탄 K2와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를 트레킹할 때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길기트 인근의 인더스강과 길기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기념비 앞에서 회상에 잠긴 적이 있다. 이 두물머리는 히말라야, 카라코람, 힌두쿠시 3개 산맥이 만나는 꼭짓점이다.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 나오는 산자분수령 (山自分水嶺ㆍ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을 한 눈으로 설명해 주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다. 지구의 대들보라 일컬어지는 3개의 거대산맥이 한 뼘의 인더스강 상류 강줄기를 건너지 못한 채 무릎을 꿇으면서 산맥으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그런 지점이다. 실핏줄 같은 강줄기에 끊겨 3개의 거대산맥이 각각 딴 살림을 차린 형국이다.
해안가와 메디나를 따라 견고하게 세워진 옛 성벽. 성곽 위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답다. © 김성태 촬영

지난 3월말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시간여 달려 도착한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Tánger)가 그렇다. 바람이 단숨에 두 대륙을 넘나들고 세상의 끝과 시작이 동시에 만나는 도시, 탕헤르. 탕헤르는 아프리카의 북서쪽 끝단에서 코 앞의 유럽을 연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의 도시다. 오른쪽은 코발트 빛 지중해가 강한 햇빛에 반짝이고 왼쪽에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철썩철썩 밀려온다. 대륙과 대륙, 대양과 대양이 서로 맞대고 교차하는 변경, 경계의 도시가 탕헤르다.

유럽과 아프리카 양 대륙 사이를 가르는 것은 겨우 14km 남짓한 지브롤터 해협이다. 맑은 날이면 건너편 스페인의 산맥과 남부 해안선이 신기루처럼 아스라이 보인다. 난민들이 헤엄을 쳐서 밀입국할 정도로 가깝다.

탕헤르는 세계로 통하는 열린 길목 도시다. 수천 년 동안 아프리카와 유럽, 이슬람과 기독교, 동양과 서양이 서로 바라보고 만나고 융합한 거대한 다문화의 교차로였다. 이 같은 지정학적 요건은 탕헤르의 역사적 숙명으로 작용한다. 모로코의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은 사막에서 배양된 끈질김과 단단함의 뿌리 위에 고대 지배 국가들의 신화적 요소와 아랍의 정교함과 우아함, 그리고 코앞에 있는 유럽의 세련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문화적으로 혼혈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일주일여 스페인 여행을 마무리하고 라마단이 끝나던 3월24일, 스페인 최남단 지중해에 접한 타리파항에서 모로코행 국제여객선 페리에 승선했다. 당초에는 서울서 모로코로 곧바로 가려 했으나 라마단 기간이어서 스페인서 일주일 넘게 여행하다 배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겨울에서 이른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그런지 2층 갑판 난간에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춥고 물보라에 거센 바닷바람이 휘몰아친다. 저 멀리 아프리카대륙이 보인다.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하기 전 배 안에서 간단하게 입국 신고를 마친다.
메디나 (구시가지) 안 골목의 예쁜 벽 장식물. 벽화와 장식물, 화분 등으로 골목이 갤러리처럼 아름답다. © 김성태 촬영

탕헤르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푸르른 지중해와 만나 거품으로 부서지는 경계선상에 있다. 모로코 최북단, 대서양 입구에 자리한 탕헤르는 인구 약 백만 명에 모로코 북부 최대의 경제 중심지다. 항구에 내리자 화려한 요트장과 함께 고색이 짙은 성곽이 버티고 서 있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 속에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모로코인 특유의 환대와 친절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거리의 흰색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화사하게 반짝인다. 서너 명의 여학생이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말을 건넨다. 순수하면서도 활달하다. 한국 팬이라면서 김치, 불고기, BTS 등을 줄줄이 왼다. 뿌듯한 마음에 여학생들과 한참을 대화한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베르베르어에서 아랍어까지 웬만큼 한단다. 한국말도 배우고 있다며 어눌한 말투로 말한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가 오가는 활달한 거리풍경은 모로코의 지정학적 특성상, 개방적이고 혼혈적인 특이한 역사 문화적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탕헤르는 기원전 페니키아인들이 무역항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카르타고를 거쳐 로마제국 때 번영을 누리다 반달족, 비잔틴 제국, 아랍 이슬람 왕조의 지배에 이어 근세들어 포르투갈, 영국 등이 이 도시를 차지한다. 특히 1923년부터 1956년까지 탕헤르는 어느 국가도 소유할 수 없는, 여러 열강이 공동 관리하는 '중립적 국제지대'로 존재했다. 스파이와 밀수꾼, 예술가와 망명객들이 뒤엉키던 그 시절의 기묘한 자유는 도시 곳곳에 짙은 흔적으로 남아있다.
메디나 골목의 새벽 반짝 시장(모닝 마켓) 모습. 물건을 파는 아낙네의 밀짚모자가 인상적이다. © 김성태 촬영

탕헤르의 역사는 신화로부터 시작된다. 전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대륙을 쪼개 바닷길을 내며 지브롤터 해협을 만든다. 탕헤르의 지명도 헤라클레스가 물리친 거인의 아내 '틴기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헤라클레스가 쉬어 갔다는 '헤라클레스의 동굴'도 신화적인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이 동굴은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도시 서쪽 끝, 등대가 외롭게 서 있는 수직 절벽의 스파르텔 곶 아래에 있다. 이 동굴의 바다 쪽 입구는 기묘하게도 아프리카대륙의 모양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신화적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탕헤르는 이슬람 색이 짙다. 새벽이면 미나렛(이슬람 사원의 첨탑)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장엄한 아잔 (기도 시작 알림) 소리가 도시를 깨운다. 대모스크는 탕헤르의 랜드마크 격인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시대를 거치며 신전, 교회, 모스크로 모습을 바꾼 흔적이 뚜렷하다. 탕헤르는 가톨릭 성당의 종소리와 개신교의 찬송가,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의 고요한 침묵도 함께 품고 있다. 종교적 관용과 포용, 문화적 혼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도시가 탕헤르다.

숙소가 있는 메디나 골목은 새벽 반짝 시장인 모닝 마켓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골목마다 직접 재배하고 잡은 신선한 채소와 생선을 파는 아낙네들의 좌판과 흥정하는 주민들로 활기를 띤다. 전통 복장에 색동 띠를 두른 밀짚모자를 쓴 여인들이 넉넉한 표정으로 물건을 팔고 있다. 무슬림 지역인 메디나 주택가는 아직도 보수성향이 강해 여성들이 사진 촬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모험하듯 몰래 사진을 찍는데 가슴이 떨린다. 날씨는 우리와 비슷한 초봄 날씨로 화창하다. 겨울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로 날씨는 여행하기 좋은 봄날인데 관광은 비수기 끝물이라 전세 낸 듯 여유롭게 관광해서 좋다. 호텔, 교통비 저렴하고 날씨 좋고... 3월 중순 시기 선택은 신의 한 수 아닌가 싶다.
메디나 위쪽 언덕 정상에 자리한 카스바 성문. 성문 밖에 박물관과 전망대 등이 있다. © 김성태 촬영

메디나의 가파른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다. 오르다 보면 요새화된 성벽인 카스바의 아치형 성이 나온다. 카페, 가죽공방, 카펫 짜는 베틀,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길이 예쁘다. 성벽에 둘러싸인 언덕에 올라서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옆에 있는 카스바 박물관에서 고대 페니키아와 로마, 탕헤르의 선사시대 이후의 고대 전통 유물들을 둘러본다. 탕헤르는 전설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이자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이기도 하다. 급경사의 메디나 골목은 볼거리, 먹거리로 가득하다.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도 몇 개 보인다. 힘든 줄 모르고 오르내리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 중의 한 사람인 이븐 바투타의 박물관과 만난다.

탕헤르 출신인 이븐 바투타는 1325년 21세 때 고향을 떠나 29년 동안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그가 여행한 곳은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 페르시아, 인도, 중국,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여행 거리만 무려 12만km에 달한다. 이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보다 훨씬 긴 거리이다. 그의 여행 기록인 '리흘라여행기'는 14세기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카페 하파도 탕헤르의 전설이다. 1921년에 문을 연 이 카페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절벽 위에 계단식으로 들어서 있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 많은 예술인들이 카페를 애용했다. 그들이 앉았던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지브롤터 해협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는 것도 감성 여행의 참맛이다. 비트 세대에 히피문화의 선구자인 윌리엄 버로우즈는 이곳에서 소설 '가고 없는 자의 점심'을 썼고,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인 잭 케루악과 알렌 긴즈버그 역시 이곳 메디나에서 예술적 영감을 키웠다.
코발트 빛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성벽에 앉아있는 여인. © 김성태 촬영

바다를 바라보며 하얀 집들 사이를 걷다 보면 바람은 유럽에서 건너오고, 햇빛은 아프리카에서 내리쬔다. 두 대륙과 대양의 경계선상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여기에 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미로 같은 골목, 강하고 거센 지중해의 햇빛과 바람 등 묘한 아프리카적 매력이 나를 탕헤르의 매혹 속으로 끌어당긴다.

☞오지트레커 김성태는 누구?
오지트레커 김성태씨. © 김성태 촬영

70대 중반을 넘나드는 나이에 걸어서 세계 오지의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30여 년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일보 등 언론계에서 활동하다 은퇴 후 뒤늦게 오지트레킹과 사진에 빠져들었다. 히말라야, 안데스 등 산맥과 티베트, 파미르 등 고원, 밀림, 사막, 빙하, 소수민족 등에 가까이 다가가 교감하는 여정을 즐긴다. 티베트에 미(美)치다. 히말라야에 미(美)치다, 안데스 파타고니아에 미(美)치다, 개포동 576번지(구룡마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문화역 서울284, 전주 국제사진제 등에 초대되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고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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