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의 사하라, 지중해에 美치다]①탕헤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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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김성태 오지트레커 |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 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 3월말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시간여 달려 도착한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Tánger)가 그렇다.
탕헤르는 전설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이자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이기도 하다.
탕헤르 출신인 이븐 바투타는 1325년 21세 때 고향을 떠나 29년 동안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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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가 애용한 카페 하파, 지브롤터 해협이 눈에 가득
스파이와 밀수꾼, 예술가와 망명객이 뒤엉킨 2500년의 역사


<1>모로코 탕헤르

지난 3월말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시간여 달려 도착한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Tánger)가 그렇다. 바람이 단숨에 두 대륙을 넘나들고 세상의 끝과 시작이 동시에 만나는 도시, 탕헤르. 탕헤르는 아프리카의 북서쪽 끝단에서 코 앞의 유럽을 연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람의 도시다. 오른쪽은 코발트 빛 지중해가 강한 햇빛에 반짝이고 왼쪽에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철썩철썩 밀려온다. 대륙과 대륙, 대양과 대양이 서로 맞대고 교차하는 변경, 경계의 도시가 탕헤르다.
유럽과 아프리카 양 대륙 사이를 가르는 것은 겨우 14km 남짓한 지브롤터 해협이다. 맑은 날이면 건너편 스페인의 산맥과 남부 해안선이 신기루처럼 아스라이 보인다. 난민들이 헤엄을 쳐서 밀입국할 정도로 가깝다.
탕헤르는 세계로 통하는 열린 길목 도시다. 수천 년 동안 아프리카와 유럽, 이슬람과 기독교, 동양과 서양이 서로 바라보고 만나고 융합한 거대한 다문화의 교차로였다. 이 같은 지정학적 요건은 탕헤르의 역사적 숙명으로 작용한다. 모로코의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은 사막에서 배양된 끈질김과 단단함의 뿌리 위에 고대 지배 국가들의 신화적 요소와 아랍의 정교함과 우아함, 그리고 코앞에 있는 유럽의 세련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문화적으로 혼혈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탕헤르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푸르른 지중해와 만나 거품으로 부서지는 경계선상에 있다. 모로코 최북단, 대서양 입구에 자리한 탕헤르는 인구 약 백만 명에 모로코 북부 최대의 경제 중심지다. 항구에 내리자 화려한 요트장과 함께 고색이 짙은 성곽이 버티고 서 있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 속에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모로코인 특유의 환대와 친절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거리의 흰색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화사하게 반짝인다. 서너 명의 여학생이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말을 건넨다. 순수하면서도 활달하다. 한국 팬이라면서 김치, 불고기, BTS 등을 줄줄이 왼다. 뿌듯한 마음에 여학생들과 한참을 대화한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베르베르어에서 아랍어까지 웬만큼 한단다. 한국말도 배우고 있다며 어눌한 말투로 말한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가 오가는 활달한 거리풍경은 모로코의 지정학적 특성상, 개방적이고 혼혈적인 특이한 역사 문화적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탕헤르의 역사는 신화로부터 시작된다. 전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대륙을 쪼개 바닷길을 내며 지브롤터 해협을 만든다. 탕헤르의 지명도 헤라클레스가 물리친 거인의 아내 '틴기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헤라클레스가 쉬어 갔다는 '헤라클레스의 동굴'도 신화적인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이 동굴은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도시 서쪽 끝, 등대가 외롭게 서 있는 수직 절벽의 스파르텔 곶 아래에 있다. 이 동굴의 바다 쪽 입구는 기묘하게도 아프리카대륙의 모양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신화적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탕헤르는 이슬람 색이 짙다. 새벽이면 미나렛(이슬람 사원의 첨탑)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장엄한 아잔 (기도 시작 알림) 소리가 도시를 깨운다. 대모스크는 탕헤르의 랜드마크 격인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시대를 거치며 신전, 교회, 모스크로 모습을 바꾼 흔적이 뚜렷하다. 탕헤르는 가톨릭 성당의 종소리와 개신교의 찬송가,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의 고요한 침묵도 함께 품고 있다. 종교적 관용과 포용, 문화적 혼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도시가 탕헤르다.

메디나의 가파른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다. 오르다 보면 요새화된 성벽인 카스바의 아치형 성이 나온다. 카페, 가죽공방, 카펫 짜는 베틀,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길이 예쁘다. 성벽에 둘러싸인 언덕에 올라서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옆에 있는 카스바 박물관에서 고대 페니키아와 로마, 탕헤르의 선사시대 이후의 고대 전통 유물들을 둘러본다. 탕헤르는 전설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이자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이기도 하다. 급경사의 메디나 골목은 볼거리, 먹거리로 가득하다.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도 몇 개 보인다. 힘든 줄 모르고 오르내리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 중의 한 사람인 이븐 바투타의 박물관과 만난다.
탕헤르 출신인 이븐 바투타는 1325년 21세 때 고향을 떠나 29년 동안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그가 여행한 곳은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 페르시아, 인도, 중국,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여행 거리만 무려 12만km에 달한다. 이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보다 훨씬 긴 거리이다. 그의 여행 기록인 '리흘라여행기'는 14세기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바다를 바라보며 하얀 집들 사이를 걷다 보면 바람은 유럽에서 건너오고, 햇빛은 아프리카에서 내리쬔다. 두 대륙과 대양의 경계선상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여기에 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미로 같은 골목, 강하고 거센 지중해의 햇빛과 바람 등 묘한 아프리카적 매력이 나를 탕헤르의 매혹 속으로 끌어당긴다.

70대 중반을 넘나드는 나이에 걸어서 세계 오지의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30여 년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일보 등 언론계에서 활동하다 은퇴 후 뒤늦게 오지트레킹과 사진에 빠져들었다. 히말라야, 안데스 등 산맥과 티베트, 파미르 등 고원, 밀림, 사막, 빙하, 소수민족 등에 가까이 다가가 교감하는 여정을 즐긴다. 티베트에 미(美)치다. 히말라야에 미(美)치다, 안데스 파타고니아에 미(美)치다, 개포동 576번지(구룡마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문화역 서울284, 전주 국제사진제 등에 초대되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고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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