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의 고상한 취향...아메리칸 사이코가 추구하는 '미친 미감'에 대하여

아르떼 2026. 7. 9. 15:3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rte] 최영균의 공간탐구 of NETFLIX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명함 한 장에서 아파트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미감
1980년대 미국 엘리트의 뒤틀린 욕망은
어떤 공간에 머무는가
'이 세련된 색상 좀 봐. 고급스러운 두께감에...
오 이런, 워터마크까지 있다니'

명함 디자인 하나로 벌어지는 신경전. 언뜻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 같은 회사 동료들끼리 종이의 질감과 두께, 폰트의 미묘한 차이를 두고 진심으로 경쟁한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동료의 세련된 명함을 보고 깊은 열등감에 빠진다. 쓸데없어 보이는 이 사소한 장면이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전체를 관통한다.

자만심과 열등감에 취해 살인 충동을 멈출 수 없는 남자는 대체 어떤 공간에 살고 있을까.

낮에는 월스트리트에서 기업 인수합병을 하다, 밤에는 사람을 죽이는 남자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찬 베일). 군살 없는 몸, 최고급 레스토랑, 완벽한 핏의 수트, 고상한 음악 취향까지. 그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살인에 집착한다. 그것이 자신의 완벽함을 파괴할 줄 알면서도.

영화는 이 사이코 남성의 광기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나는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보다 그가 머무는 공간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이 미친 주인공에게는 끔찍이도 고상한 미적 취향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남자의 취향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그의 집은 한눈에도 고급이다. 하지만 편안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집안 모든 요소가 저마다 엄격히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청소도 얼마나 강박적으로 했는지 생활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베이트먼이 어떤 계급과 감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품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거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천체망원경이다. 베이트먼처럼 1980년대 미국에 등장한 여피(Yuppie)족의 상징이다. 젊고(Young), 도시적(Urban)이며, 전문직(Professional)에 종사하며, 개인의 성공과 취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세대의 첨단 기술 지향성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다.

그 왼쪽엔 힐 하우스 체어(Hill House Chair)가 놓여 있는데, 딱 봐도 일상적으로 앉기 위한 의자는 절대 아니다. 그저 바라보고 감상하는 오브제에 가깝다. 높은 등받이와 수많은 수평선이 엄격한 질서를 부여한다. 의자 주변엔 테이블이나 다른 가구도 없이 홀로 존재하며 주변을 압도한다. 게다가 이 의자는 베이트먼의 집으로 들어오는 출입문 동선 위에 놓여 있다. 그러니 결국 타인에게 권력자로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보이길 바라는 베이트먼의 이상적 자아상이다.

오른쪽 벽에는 흑백으로 된 커다란 이미지가 걸려 있다. '도시인(Men in the Cities)'이라는 이 작품은, 양복을 입은 남성이 극단적으로 몸을 휘청이며 쓰러지는 포즈를 묘사한다. 잘나가고 세련된 도시 남성을 상징하면서도, 마치 총에 맞은 듯 갑자기 균형을 잃고 몸이 꺾이는 듯 보인다. 어쩌면, 성공을 상징하는 고급 수트와, 실제로 그가 무너지는 방식을 동시에 보여주는 셈이다. 힐 하우스 체어처럼 이상적으로 꾸며낸 모습이 아니라, 베이트먼 그 자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실 중앙엔 유리 테이블 앞에 검은 가죽 의자가 놓여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디자인한 의자다. 미스는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Expo)에서 독일관을 설계하게 되는데, 만국박람회는 전 세계에 자국의 산업과 기술, 문화, 디자인을 과시하는 국제적 이벤트다. 미스가 설계한 그 건축물이 바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열린 첫 만국박람회는 독일의 선진 문명을 세계에 과시하기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금속과 유리를 건축 재료로 선정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이전에는 돌기둥과 조각 장식이 권위를 상징했다면, 가느다란 금속 기둥과 투명한 유리는 산업화된 근대 국가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기에 너무 좋았다. 정밀한 가공, 매끈한 표면은 마치 새로운 시대의 찬란한 미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미스는 이 건축물에 놓일 의자도 함께 디자인했는데, 그게 바로 베이트먼의 거실에 있는 바르셀로나 체어(Barcelona Chair)다. X자로 교차하는 금속 프레임과 사각형의 단정한 쿠션은, 장식 없이도 우아하며 절제된 권위를 드러낸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다.


베이트먼이 일하는 오피스 역시 미스의 작품이다. 다만 영화 속 배경은 뉴욕이지만, 실제 촬영지는 캐나다 토론토의 토론토 도미니언 센터(Toronto Dominion Centre)다. 이 건물은 미스가 이미 뉴욕에 지은 그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에서 완성한 검은 금속과 유리의 오피스 디자인 문법을, 여러 동의 타워와 광장으로 확장한 작품에 가깝다. 금속과 유리로 수직적 단순함을 구현한, 현대 고층 오피스 빌딩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절제된 격자, 노출된 구조, 장식을 거부하는 태도까지 모두,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미스의 선언과 맞닿아있다.

이런 건축 양식의 출발점을 찾아보면 바우하우스(Bauhaus)를 빼놓을 수 없다. 1919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 디자인 학교는, 모더니즘의 실험실이었다. 예술과 공예, 건축과 산업을 하나로 묶으려 했고, 아름다움은 장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구조가 정확히 맞물릴 때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미스는 그런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을 역임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상징하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설계 한 미스. 그가 독일을 대표하는 건축가였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가 집권하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금속과 유리로 구성하는 간결하고 명료한 질서는, 나치가 추구한 고전적이고 기념비적인 양식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미스는 마지못해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그런데 미국으로의 망명은 오히려 미스의 건축적 시도에 날개를 달아주는 기회가 되었다. 미국, 특히 시카고와 뉴욕은 이미 철골구조와 엘리베이터, 유리 커튼월이 적용된 고층 건물이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장식을 걷어낸 금속과 유리의 격자,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보편적 질서는 훗날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 세계적 건축 표준이 되었다. 미스가 시그램 빌딩에서 완성한 검은 금속과 유리로 만든 오피스 디자인 문법은 태평양을 건너, 서울까지 이어진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삼일빌딩은, 당시 서울이 바라던 미래의 모습이었다. 국내 최초로 커튼월 방식이 적용된 마천루였다. 31층으로 높게 솟아 당시 최고층이었던 삼일빌딩은, 한국적 전통성과 지역성 대신 글로벌로 나아가려는 존재 목적을 드러낸다. 삼일빌딩의 외관은 시그램 빌딩의 외관을 자연스레 연상시키는데, 김중업 본인도 시그램 빌딩을 참고했다 설명하기도 했다.

삼일빌딩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서울시장으로 대표되는 초고속 개발 시대와 만나 실현된 근대화의 얼굴이다. (참고로 군사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김중업은 프랑스로 강제 추방되었는데, 마치 미스가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간 것과 닮았다.)

삼일빌딩은 2020년 준공 50년을 맞아 정림건축과 원오원아키텍츠가 함께 리모델링했다. 김중업 건축가의 원안을 최대한 지키면서 현대적 오피스 기능을 담는 방향으로 잘 진행되었다. 종각역 인근, 청계천과 맞닿아 있으니 한번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최영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