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광주 박물관에는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체험활동이 준비돼 있다. 아이들이 만든 풀짚 공예품. 윤원규 기자

경기일보 2026. 7. 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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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역마다 다양한 풀짚공예의 재료와 특색을 알리고 있다. 윤원규 기자


망태와 소쿠리를 언제 써 봤을까. 함과 합, 고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는 여성은 얼마나 될까.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문형산길 76) 풀짚공예박물관을 찾으면서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이다. 풀짚공예박물관(관장 전성임)에 들어서면 아득하게 잊고 있었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흥미롭게도 박물관 문을 나설 때쯤이면 풀짚공예박물관은 풀과 짚으로 엮어 만든 ‘인문의 창작실이자 놀이터’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풀짚 공예 기법이 소개되고 있다. 윤원규 기자


■ 풀짚공예, 초연결시대의 연결을 묻다

2026년 풀짚공예박물관 기획전시의 주제가 사뭇 진지하다. ‘풀짚공예, 초연결시대의 연결을 묻다!’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졌을까. 황여림 학예실장의 안내로 기획전시장을 둘러본다. “1부 정겨운 인연, 2부 ‘진짜’와의 연결, 3부는 서로 지탱하는 연결입니다.” 가장 먼저 만난 전시물이 물건을 담는 ‘함’이다. “함은 소중한 것을 담고 뚜껑을 닫아 지켜내는 공통의 인연으로 만난 유물입니다.” 안내물에 유물의 사진과 함께 기록된 친절한 해설에도 인문정신이 충만하다. “쉽게 연결되고 단절되는 효율 중심의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 손의 온기와 기다림이 만든 결을 바라보며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우리의 연결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함’이란 이름이 비로소 기억에서 슬며시 걸어 나온다. 가는 대나무 살로 촘촘하게 엮어 만든 ‘이중반짇고리’에 무엇을 담으면 좋을지 잠시 상상해 본다. 그 옆에 놓인 ‘계란 망태’는 포근하면서 튼튼해 보여 더욱 정이 간다. 짚을 엮어 깨지기 쉬운 달걀을 안전하게 보관했던 옛사람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정겨운 유물이다. 이처럼 다양한 ‘삼태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그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서로 다른 모습의 삼태기들,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삶의 맥락을 품고 있습니다.” 삼태기를 소개하는 글도 재미있다. “지금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이미지 속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모두가 같은 정답을 찾지 않기에 믿고 싶은 이야기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바라보고, 천천히 살피며 질문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짜’와 연결되는 감각을 다시 깨워봅니다.” 우리 시대의 고민을 짚과 풀로 만든 생활용품과 연결해 해석하고 질문하는 상상력의 깊이가 놀랍다. 그러면 ‘서로를 지탱하는 연결’은 어떤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을까. 봄이면 나물을 담고 여름이면 갓 건져낸 국수를 담아 식혔던 다용도 그릇 ‘소쿠리’에 그 답이 있을 것 같다. 소쿠리를 만든 재료가 궁금해 물어보니 길가나 풀밭에서 흔히 자라는 ‘그령’과 줄기나무인 ‘댕댕이’를 엮어 만든 것이란다.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식물이지만 이름은 물론이고 쓰임조차 모른 채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70년대까지는 도시에서도 사용했던 소쿠리도 이제 농촌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 됐다. 한국인의 숨결과 지혜가 담긴 풀짚공예를 세상에 알리고 그 전통을 잇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사람들과 이를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풀짚으로 만든 다양한 동물 공예품들. 윤원규 기자


■ 자연을 디자인하는 집

“풀짚공예박물관은 풀과 짚을 이용해 조상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민속생활도구와 공예품을 수집하고 연구·전시·교육하는 곳으로 2006년 6월 설립됐습니다.” 설립자 전성임 관장은 어렵고 힘든 이 길에 어떻게 들어섰을까. “과거 농경사회에서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 때 쓰였던 풀과 짚을 이용한 공예는 그 특성상 구전 외에는 특별한 전달 방식이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전 관장은 풀짚공예에 필요한 교육적 체계를 만들기 위해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전국의 어르신을 찾아다니며 공예기술을 정리하고 재료의 특성과 지리적 연관성, 유물과 자료를 수집해 박물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풀과 짚문화 체험을 통한 교육으로 자연 소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창조적인 공예 예술 분야가 될 수 있도록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박물관의 설립 이념과 운영철학이 담긴 발언이다. 비록 공간의 크기는 작지만 풀짚공예박물관에 전문 기능과 최고 학력을 가진 학예사가 셋이나 존재하는 까닭이다. “예부터 서민들은 집 근처에서 재료를 구해 생활소품을 만들어 썼습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짚과 풀로 가마니와 멍석, 망태기를 짜고 쌀독과 달걀 꾸러미까지 만들었지요. 짚신부터 초가지붕까지 ‘짚일’은 한국인의 생활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풀짚은 재료를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만큼 전세계 곳곳에도 다양한 풀짚공예 문화가 있다. 베트남,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공예품들. 윤원규 기자


예쁜 그릇이나 바구니를 아주 좋아했던 설립자 전 관장은 어려서부터 웬만한 생활소품은 직접 만들어 썼을 정도로 손재주가 있었다. 그는 1970년대 말 등공예와 죽세공예가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던 시절에 등공예를 배우면서 공예의 매력에 빠져든다. 타고난 손재주 덕분에 1982년엔 서울 반포에 등공예연구실을 차릴 정도가 됐다. 이 무렵 불현듯 ‘등공예가 일본에서 들어왔다면 우리나라의 전통공예는 뭘까’ 하는 의문이 들어 우리 전통공예를 찾으며 그가 발견한 것이 풀짚공예였다. “1980년대도 ‘풀짚공예’라는 이름이 없었고 그냥 ‘짚일’이라 했어요. 도자기와 칠기 등 다른 민속공예는 전수라도 되고 있는데 풀짚공예만 전수도 안 되고 맥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지요. 그래서 손재주가 좋은 할아버지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다양한 기술을 익히던 전 관장이 풀짚공예가로 우뚝 서게 한 특별한 일이 있다. 풀짚공예품을 수집하러 전주의 골동품상에 들렀다가 승려들이 지고 다니는 커다란 짚망태기를 발견한다. 탐내는 것을 눈치챈 골동품상은 100만원을 달라고 했으나 살림하는 주부에게 그런 거금이 없었다. 그는 흥정하는 척하고 골동품점을 들락거리며 망태기를 유심히 살피며 제작 기법을 파악해 수첩에 기록한다. 수첩을 보며 망태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그 망태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이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수집한 1천여점의 공예품이 아파트를 뒤덮었을 때 그는 결단을 내린다. “어차피 수집했으니 후배에게 뜻있는 일이라도 해야겠다 결단하고 분당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인근 광주시에 박물관을 연 것입니다.”

박물관에는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체험활동이 준비돼 있다. 아이들이 만든 풀짚 공예품. 윤원규 기자


■ 걸어온 길, 걸어갈 길

2006년 개관한 풀짚공예박물관의 뿌리는 1982년에 연 ‘생활공예연구실’이다. 전 관장은 2001년 ‘풀짚공예기법’을 출판한다. 이 책은 전국의 풀짚공예 기술을 가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익힌 소중한 기술을 담았다. 2012년에는 ‘풀짚공예 배우기’(미진사)를 출판해 풀짚공예의 매력을 느끼는 대중에게 그동안 터득한 비결을 풀어 놓았다. 박물관은 국제 교류도 활발히 가졌다. 2002년 중국과 인연을 맺었고 2003년부터 시작한 ‘한일 바스켓트리 교류전’은 10년 넘게 꾸준히 이어진다. 2009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크라프트쇼’에 참여해 한국 풀짚공예의 아름다움을 미국인들에게 알렸다. 이때 출품작 대부분이 고가에 팔려나가 한국 공예품의 가치를 인정받은 일도 즐겁고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G20 정상회담 기념 ‘나들이전’(2010년)을 비롯한 국제행사에도 적극 참여해 한국인의 미적 표현이 응축된 공예품을 선보였다.

풀짚공예박물관을 찾으면 짚으로 새끼를 꼬거나 보릿대궁을 엮어 귀틀집이라도 만들어봐야 한다. 광주시 문형산길에 나오는 ‘문형(文衡)’은 조선시대 대제학의 별칭으로 이곳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진 것이다. 박물관이 문형산(496.7m) 자락에 안겨있는 것에도 어떤 까닭이 숨어있을 것 같다. 광주 풀짚공예박물관은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고 단절된 공동체정신을 잇고 가꾸는 인문의 숲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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