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생물학] 기계가 되기를 거부한 초파리

● 자정을 넘긴 실험실, 기계 속의 유령을 찾아서
자정을 넘긴 늦은 밤, 실험실에 홀로 앉아 초파리 활동 측정기의 가느다란 유리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초파리 유전학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고독이자 경이의 시간이다.
깊은 정적 속에서 연구자는 뇌파도 측정되지 않고 복잡한 대뇌도 없는 이 작디작은 곤충이 인간과 똑같이 고요한 잠에 빠져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바라보며 기묘한 경이감에 붙들리곤 한다.
일찍이 17세기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동물을 영혼이 없는 정밀한 기계이자, 시계태엽처럼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자동장치로 규정했다. 그가 이끈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외부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톱니바퀴의 파열음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 행동유전학 역시 때때로 통제된 실험 환경 속에서 동물의 유전적 인과관계만을 추적하며 생명을 기계적으로 환원하는 데 머물러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랄프 스타네프스키 독일 뮌스터대 연구팀의 연구는 이러한 데카르트적 도그마를 뿌리째 뒤흔든다. 그들은 초파리가 단순히 외부 자극에 순응하는 기계가 아니라 가혹한 환경 속에서 어둠의 덮개를 스스로 찾아가 내면의 무너진 시계태엽을 자발적으로 감아 올리는 능동적인 행위자이자 개척자임을 입증해 냈다.
● 가혹한 우주와 망가진 내부 시간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일주기 생체시계(Circadian Clock)를 품고 진화해 왔다. 초파리는 전형적인 일주기성 생물로 하루 중 빛과 어둠의 경계인 황혼과 새벽에 가장 활발히 움직이며 완벽한 암흑 속에서도 약 24시간의 자유 실행 주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생태적 탈출구가 차단된 채 지속되는 상시 광조사(LL) 환경은 이 정교한 내부 시계를 무참히 파괴한다. 끊임없이 내리쬐는 빛은 크립토크롬 단백질과 다른 단백질들의 상호작용을 유도해 생체시계의 핵심 톱니바퀴인 타임리스 단백질을 쉼 없이 분해해 버린다. 그 결과 뇌 내 일주기 오실레이터가 완전히 멈추고 초파리는 시간의 방향성을 상실한 채 행동적 무리듬 상태에 빠진다.
기존의 정형화된 일주기 행동 실험 환경에서 초파리들은 일정한 광조건에 그대로 방치된 채 자극에 반응할 수만 있었을 뿐, 그 환경 자체를 모면할 기회를 박탈당해 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폐쇄적 실험 설계가 동물의 고유한 주체성을 은폐하는 보이지 않는 창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주목했다.
● 스스로 환경의 장막을 드리우는 주체적 행위자
연구팀은 초파리에게 스스로 빛과 어둠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이 수동성의 굴레를 걷어냈다.
그들은 실시간 비디오 추적 장치인 에토스코프(Ethoscope) 시스템을 기반으로 활동 튜브의 절반을 적외선 고패스 필터로 덮어 초파리에게는 완벽한 어둠이지만 카메라는 투과하는 어둠의 대피소를 구축했다. 양 끝에 모두 먹이를 배치해 먹이에 의한 이동 편향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연구자들은 네 가지 독특한 실험 조건 속에서 초파리의 리듬 변화를 관찰했다.

논문의 정교한 수치들이 증명하듯 어둠의 덮개를 통해 환경을 조각할 권리를 얻은 초파리들은 절반 이상이 상시 불이 켜진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한 일주기 리듬을 유지해 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상시 광조사에 사흘간 방치되어 내부 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행동적 무리듬에 빠졌던 초파리들조차 뒤늦게 어둠의 장막이 놓이자 무려 62%의 개체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가 내면의 멈춰 선 태엽을 다시 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생태지위 구성(Niche Construction)'의 극적인 발현이다.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가혹한 체에 걸러지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서식지와 물리적 자극을 재배치함으로써 자신에게 작용하는 선택 압력을 유리하게 변경해 나간다. 2밀리미터의 초파리는 스스로 어둠의 지도를 그리며 자신의 물리적 우주를 개척해 낸 것이다.
● 뇌 세포가 증명하는 분자적 시간의 재점화
초파리들의 이러한 자발적 왕복 행동이 참으로 내면의 분자 시계를 부팅시킨 결과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리듬을 재가동한 초파리들의 뇌 속 시계 단백질인 피리어드(Period, PER)의 거동을 추적했다. 이미 상시 불빛 아래 노출된 지 5일이 경과했기 때문에 기존에 동기화되어 있던 시계 단백질들은 소멸한 지 오래였다.

연구진은 행동 양상을 정밀하게 관찰하여 각 초파리가 활동기에 있는지 혹은 휴식기에 도달했는지를 개별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 주기에 맞춰 뇌를 적출했다.
그 결과 일주기 행동 리듬을 주도하는 뇌 속의 핵심 생체시계 뉴런군인 등쪽 뉴런(DN3, DN2), 외측 뉴런(LNd), 그리고 작은 외측 복부 뉴런(s-LNv) 등에서 뚜렷한 피리어드 단백질의 농도 진동(PER oscillation)이 되살아나 있음을 확인했다.
초파리가 휴식기에 접어들었을 때 뇌 속의 PER 수치는 정점을 찍었고 활동기에는 바닥을 쳤다. 외부에서는 상시 불빛이 지속적으로 내리쬐고 있었지만 초파리의 뇌는 스스로 창조해 낸 어둠을 발판 삼아 분자적 수준에서 시계의 초침을 다시 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초파리의 주체적 행동 뒤에는 세포 내 분자 샤페론 네트워크의 정교한 지원 체계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 조각난 잠을 씻어내는 일주기 생체시계의 보상
초파리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 스스로 공간의 명암을 재조직하고 뇌 속의 분자 시계를 다시 점화하려 애쓰는 근본적인 생리적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연구팀은 그 생존적 보상의 실체를 '수면의 본질적인 구조'에서 찾아냈다.
상시 광조사 하에서 일주기 리듬을 잃어버린 초파리들은 총수면 양 자체는 리듬이 있는 초파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 수면의 질은 참담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쉴 새 없이 깨고 다시 조각잠을 반복하는 심각한 수면 분절화(Sleep Fragmentation)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반면 자발적으로 어둠의 장막을 이용해 생체시계를 활성화한 초파리들은 전혀 다른 규칙적이고 조화로운 수면 지형을 구축했다.
일주기 리듬을 회복한 초파리들은 잠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 훨씬 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지속해 잠든 시간(Sleep Bout Duration)이 획기적으로 길어졌다. 생체시계를 재가동한 초파리의 최장 수면 지속 시간의 중앙값은 약 4시간으로 무리듬 상태에서 흐느적거리던 초파리들의 2시간에 비해 2배에 달했다. 수면의 질을 저하시키는 자잘하게 쪼개진 수면 횟수 역시 현저히 감소했다.
겨우 2밀리미터의 작은 초파리가 끊임없이 불빛의 고통 속에서도 어둠의 문을 열어젖히며 생체시계를 다시 돌려놓았던 치열한 삶의 투쟁은 다름 아닌 자신의 조각난 잠을 정화하여 뇌를 온전히 씻어내기 위한 생존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 낭만생물학의 시선, 스스로 단순해지기를 거부하는 생명
현대 생물학의 거대하고 산업화된 생태계는 종종 과학자의 낭만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을 "논문이 되고 돈이 되느냐"는 현실의 잣대로 차갑게 밀어내곤 한다.
그러나 과학의 참된 낭만은 모두가 시시하다며 덮어둔 각주 속으로 되돌아가 그것이 실상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거대한 연대의 지도였음을 발견해 내는 고집스러운 신뢰에 있다.
우리가 단순한 기계장치로 너무나 쉽게 읽어내리려 했던 저 보잘것없는 초파리는 스스로를 단순화한 적이 없다. 2밀리미터의 눈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가혹한 상시 광조건 앞에서도 이 작은 생명체는 어둠의 틈새를 찾아 영토를 일구고 뇌세포 속 생체시계의 태엽을 감아 올려 자신의 수면을 지키고 뇌를 정화해 냈다.
기계 속에서 고통 없이 울리는 단순한 째깍거림을 넘어 이들은 환경을 주체적으로 직조해 나가는 거룩한 생명의 역동을 고스란히 웅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정을 넘긴 늦은 밤, 적외선 빔이 가르는 차가운 유리관 속에서 길게 0의 침묵을 그리고 있는 저 작은 몸뚱이 안에서도 진화가 선사한 가장 숭고한 주체성과 시간의 영토를 향한 위대한 개척 정신은 이 순간에도 도도하게 요동치며 살아 숨 쉬고 있다.

※필자소개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하얼빈공업대학 생명과학센터(HCLS) 교수. 바이러스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 품어온 동물행동학의 꿈을 초파리 행동유전학 연구로 꽃피우고 있다. 초파리의 교미 시간을 통해 생명체의 시간 인지 메커니즘을 추적해왔으며, 이제 그 시선을 실험실 너머 생태계로 확장 중이다. 초파리 유전학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의 꽃가루 매개자인 꿀벌을 살리고, 나아가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작은 초파리들로 언젠가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낭만적이고도 야무진 꿈을 꾸며 산다. 저서로 《보통 과학자》, 《플라이룸》 등이 있다.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 교수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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