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음악창의도시 대구, 공회당에서 콘서트하우스까지
1962~1972년 KBS 지역총국 입주…방송·공연·전시 결합 복합공간 역할
기존 건물 철거 후 '시민회관' 준공

인류의 건축 가운데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보존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건축은 시대적 기능과 구조적 수명, 미적 가치를 잃으면 인간의 생명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나 어떤 건축은 같은 장소에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대구콘서트하우스가 바로 그런 건축이다.
1931년 건립된 대구공회당은 군인극장을 거쳐 KBS 대구방송총국(KG홀)이 되었고, 다시 대구시민회관으로, 오늘날의 대구콘서트하우스로 재탄생하였다. 건축의 변화는 단순한 용도 변경이 아니라 한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축적된 문화예술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문화의 집적은 2017년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되는 토양이 되었다.

◆근대도시의 출발점
이 장소에는 대구 근대도시 형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06년 대구관찰사 박중양에 의해 읍성이 철거되면서 일본 통감부 주도의 근대 도시 확장이 시작되었고, 이어 경부선 철도 부설과 대구역 개통은 대구를 교통과 상업의 중심도시로 변화시켰다. 중앙로에서 옛 경상북도청으로 이어지는 도시축이 형성되면서 대구역 서측, 지금의 대구콘서트하우스 부지는 공공문화시설이 집적되는 중심 공간이 되었다.
◆공회당에서 KG홀까지
1931년 준공된 대구공회당은 강점기 당시 대구부가 건립한 근대 공공문화시설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더욱 다양한 강연회, 연극, 음악회 등의 시민행사가 열렸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군인극장으로 사용되며 전쟁 속에서 향촌동 피난문화 예술과 연결하는 공간이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는 KBS 대구방송총국이 입주하면서 'KG홀' 시대가 열렸다. 공개방송과 음악회, 연극, 강연,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가 이어져, 방송과 공연, 전시가 결합된 지역 최초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웅장한 반원형 아치와 붉은 벽돌 외관의 절제된 근대 고전주의 양식 건축은 대구를 대표하는 랜드 마크였고, 장년의 시민들은 그 시절의 건축과 장소에서 과거 추억을 기억한다.

◆시민회관 시대
1972년 방송국이 신천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KG홀은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기존 공회당 건축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대구시민회관이 준공 1976년 개관하였다.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시민회관은 이름 그대로 공연장 이상의 시민 문화공간이었다. 문화예술 공연뿐 아니라 국경일 행사, 시민 집회, 각종 경연대회와 국제행사까지 개최되는 지역 문화의 중심이었다. 경상북도미술전, 대구시전, 국전 순회전 등이 개최되었고, 중앙의 대형 뮤지컬, 오페라, 심포니 공연도 이어졌다.
건축적으로도 시민회관은 당시 지역 건축의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공연동과 전시동은 광장을 중심으로 'ㄱ'자 형태로 연결, 공연동의 열주와 웅장하게 돌출된 곡선 처마는 한국 전통 목조건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었다. 전시동 상부는 노출콘크리트 브루탈리즘 분위기의 투박한 지역성의 건축이었다.
설계자 김인호(1932~1989)선생은 중앙의 김수근, 김중업과 함께 당시 한국 현대건축을 이끌던 지역 건축가였다. 대구의 주요 공공건축 작품들과, 최근 철거 재건축 계획이 발표된 서울 잠실야구장도 김인호 선생의 작품이다.

◆콘서트하우스의 탄생
시민회관은 약 40년의 역할을 마친 뒤, 2014년 국내 최고 수준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대구콘서트하우스로 새롭게 태어났다. 콘서트홀 건축의 특수 상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롭게 신축하는 것이 당연한 사례이다. 그러나 대구시는 기존 시민회관이 지닌 건축적 가치를 존중하는 길을 선택했다.
정면의 열주와 곡선 처마 등 상징적인 외관은 최대한 보존하면서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콘서트 공연장으로 재설계하였다. 1970년대 공공건축을 21세기 음향 중심 공연장으로 재생시킨 국내 대표적인 리노베이션 사례가 된 것이다.
다목적 공연장의 프로시니엄 무대를 버리고 객석 공간 전체가 하나의 울림통이 되는 '슈박스(Shoebox)' 형식으로 전환하여 세계적 수준의 음향 성능의 공연장이 되었다. 뛰어난 음향과 객석 환경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었고, 대구콘서트하우스는 대구오페라하우스와 함께 대구가 2017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되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

◆건축의 뒤안길, 사람들
건축의 어려운 과정과 역사 뒤에는 늘 사람들의 헌신이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초의 계획은 오래된 시민회관 건축의 리노베이션이었다. 그러나 당시 김범일 시장과 김대권 문화체육국장의 진취적 의지로 세계적 수준의 클래식 전용 홀 계획이 추진되었다.
기존 건축 형식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전용 공연장 건설에 따른 공사비 시간 증가는 행정의 과제이자 부담이었다. 난해한 과정은 건축설계(DMP 박승홍), 음향설계(김남돈), 조명설계(고기영) 등의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완성되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발전에는 초대 상임지휘자 곽승, 거장 카라얀의 제자로 세계적 명성의 줄리안 코바체프 10대 지휘자의 헌신이 있었다. 특히 2023년 갑작스럽게 타계한 코바체프를 추모하며 열린 제500회 정기연주회의 베토벤 「영웅 교향곡」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또한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유재성 회장은 최고의 콘서트홀을 만들기 위해 행정과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세계적인 지휘자 초청을 위해 직접 유럽을 오가는 숨은 열정이 있었다. 광장에 설치된 이상일 교수의 조형작품 역시 그의 헌정으로 마련된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공연장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애정을 상징하고 있다.

◆문화는 건축을 넘어 이어진다.
건축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공간에 축적된 문화와 예술은 새로운 건축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공회당에서 뿌려진 문화의 씨앗은 군인극장을 거쳐 KG홀의 전파를 타고 시민회관의 무대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대구콘서트하우스의 깊은 울림으로 꽃피었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 축적된 문화의 기억과 진화는 대구를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이끌었다. 지금 추진되는 국립오페라단의 대구 유치 역시 이러한 문화적 축적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한 도시의 건축이 어떻게 시간을 품고, 문화를 이어가며, 미래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도시문화유산이다.
건축가·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