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악재 삼킨 SK하이닉스 ADR…환율 1400원대 터치

문영서 기자 2026. 7. 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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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이란 공습·원유 제재에도 달러·원 환율 1498.5원 마감
ADR 달러 유입 기대·외국인 매도 완화가 상승 압력 상쇄
지난 8일 인천공항 환전소.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1600원 전망까지 나왔던 달러·원 환율이 돌연 급락했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진정된 가운데 SK하이닉스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 따른 달러 공급 기대가 환율을 빠르게 끌어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정부가 기업들의 외화 유보와 불법 외환거래에 칼을 빼든 것도 환율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9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달러·원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9.7원 내린 1498.5원에 거래를 마친 뒤 이날 장 초반 소폭 오른 1503.7원으로 개장했다.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환율이 급등했던 흐름과는 다른 모습이다.

달러·원 환율은 올해 3월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본격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지난 3월 23일에는 장중 1517.3원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중동 긴장과 외국인의 국내 주식 대규모 순매도가 맞물리면서 원화 약세가 이어졌고, 환율은 5월 중순 이후 두 달 가까이 1500원대를 유지했다. 이달 초에는 장중 1559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시장은 이 같은 원화 약세가 단순한 달러 강세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고 봤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150조원을 넘게 순매도하며 원화 약세를 심화시켰다. 여기에 한미 금리차와 내국인의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외화 수요 증가, 통화량 확대 등 국내 요인도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도 호르무즈 해협 선박 피격 사건과 미국의 대이란 공습 재개, 이란산 원유·석유화학 제품 제재 강화 등으로 국제유가와 달러 강세 우려가 다시 커졌다. 통상 이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금리, 달러 가치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에 약세 압력을 가한다. 실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여전히 100을 웃돌며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환율 하락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국제유가가 예상만큼 급등하지 않으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완화됐고, 엔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도 동조화 흐름을 나타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규모 역시 상반기 150조 수준에서 최근 수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달러 수요 부담도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SK하이닉스 ADR 상장에 따른 대규모 달러 공급 기대도 환율 안정에 힘을 보탰다. 시장에서는 ADR 발행으로 조달되는 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국내 투자에 쓰이기 위해 원화로 환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지난 3일 달러·원 환율이 하루 만에 30.2원 내린 1525.6원에 마감한 것도 블룸버그가 ADR 발행 자금 약 290억달러가 국내로 유입될 것이라고 보도한 이후 낙폭이 확대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일부터 이날까지 해외 기관투자가 대상 로드쇼를 진행한 뒤 오는 10일 공모가를 확정하고 나스닥 거래를 시작한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2.5%인 최대 1779만주를 신주로 발행하며, 조달 규모는 증권신고서 기준 약 290억~300억달러로 예상된다.

조달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등 국내 시설투자에 활용될 예정으로, 상당 규모의 달러가 원화로 환전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두 중개회사를 거치는 달러·원 현물환 거래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일평균 175억달러로, 약 300억달러는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 규모를 웃도는 수준이다. 

아울러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도 환율 안정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은 반면, 한국은행은 이달을 포함해 연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미 금리차 축소 기대가 원화 약세 압력을 일부 완화한 데다, 정부와 외환당국의 꾸준한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도 환율 변동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올 5월 기준(4270억 달러) 13위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으로, 환율 방어를위해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고환율을 부추길 수 있는 외화 유보와 불법 외환거래 단속에 나서며 환율 안정에 힘을 싣고 있다. 관세청은 최근 환율 상승을 기대해 수출대금을 해외에 장기간 유보하거나 부당한 환차익을 노리는 불법 외환거래에 대해 기획수사를 예고했다. 월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넘어섰음에도 달러가 국내에 충분히 유입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세청도 역외 탈세 조사를 강화하며 외화 유보와 불법 자금 흐름을 집중 점검하고 나섰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정부의 스무딩오퍼레이션과 SK하이닉스 ADR 상장에 달러 유입 기대가 커졌다"며 "여기에 전체적 유가 수준이 떨어진 부분이 기존 고유가에 취약성이 노출됐던 아시아 통화의 리스크를 완화시켰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이민혁 연구원은 "그간 조단위 매도세를 보였던 외국인매도가 크게 줄어 수급적인 부담이 많이 낮아졌다"며 "SK하이닉스 ADR 상장 소식으로 달러 공급이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선반영해 미리 달러를 매도하는 움직임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6일부터 외환시장이 24시간 거래 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한 가운데, 금융당국은 이런 조치로 원화의 매력도가 높아질 것을 기대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제도 정착이 완벽하지 않아 변동성 완화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