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국정의 무게, 플루트 불며 잊었던 계몽 군주[박찬이의 올댓클래식]

2026. 7. 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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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작곡·연주 능한 프리드리히
폭압적인 아버지 피해서 음악
프랑스 문학·철학 등에 심취
‘근심없는’ 뜻의 상수시 궁전서
한 인간으로서 음악에만 전념
화가 앙투안 페느가 그린 ‘왕세자 시절의 프리드리히 대왕’.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1712~1786)은 어떤 이로 기억될까.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으로 만든 통치자, 계몽 군주로서일까. 그에게는 또 다른 의외의 면모가 있었다. 플루트를 연주하고 직접 곡까지 쓴 작곡가의 모습이다.

아돌프 멘첼의 그림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은 바로 그 장면을 담고 있다. 19세기에 그려진 상상화지만 고증은 상당히 정확하다. 샹들리에와 촛불이 찬란한 방. 왕은 보면대 위 악보를 응시하며 플루트를 분다. 곁에서 음악가들이 연주하고, 가족과 귀족들은 소파에 앉아 선율을 듣는다.

프리드리히에게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폭압적인 성향을 지녔던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군국주의적 사상에 경도되어 있었고, 복종·규율·군사 훈련을 중시하며 왕세자에게도 같은 삶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젊은 프리드리히는 프랑스 문학, 철학,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프랑스어로 사고하고, 편지를 썼으며, 플루트를 배웠다. 훗날 프랑스 계몽주의의 대표 인물 볼테르를 포츠담으로 초청한 것도 비슷한 관심의 일환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취향을 황태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약한 기질로 여겼고 때론 가혹한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화가 아돌프 멘첼이 그린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

이런 상황에서 플루트와 음악은 프리드리히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일종의 피신처와 같았다. 그는 왕세자 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플루티스트 요한 요하임 크반츠(1697~1773)에게서 배웠다.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던 크반츠는 1741년 왕의 부름을 받아 베를린과 포츠담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협주곡과 소나타를 작곡했고, 주군을 위한 맞춤 악기를 만들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가 제작했던 플루트를 11대나 소유했다고 전해진다.

음악의 중심에는 포츠담의 상수시(Sanssouci) 궁전이 있었다. ‘근심 없는’이라는 뜻의 상수시는 프리드리히가 전쟁과 국정에서 잠시 떨어져 머물렀던 여름 별궁이었다.

저녁이면 왕은 이곳에서 플루트를 불었다. 크반츠 외에도 바이올린 명인 프란츠 벤다, 오페라 작곡가 카를 하인리히 그라운, 대 바흐의 차남이자 건반 연주자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가 함께였다.

왕은 플루트 실력 역시 단순한 애호가 이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기량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음악사가 찰스 버니는 “나는 그분의 깔끔한 알레그로 연주와 아다지오에서의 표현력과 감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심지어 놀랐다. 폐하의 솜씨는 여러 측면에서 내가 들어본 아마추어 심지어 전문가들의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났다.” 이는 약간의 과대평가가 가미되었을 수도 있지만, 당대인들의 일관적인 호평은 그의 연주가 남달랐다는 점을 증언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작곡한 플루트 협주곡을 들어본다. 특히 느린 악장은 동시대인들이 극찬했던 그의 실연을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음은 라이하르트라는 작곡가의 기록이다. “그는 아다지오를 깊은 내면의 감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담백함과 진솔함으로 불었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들을 수 없었다.”

상수시의 밤을 떠올리면, 군주의 권력 대신 한 인간의 맨얼굴이 보인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 앞에서만은 온전히 자신일 수 있었던. 그는 전쟁과 정무의 무게를 내려놓고, 플루트를 부는 순간만큼은 여러 시름을 잊었던 사람이었다. ‘근심 없이’를 뜻하는 상수시 이름처럼.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QR코드를 찍으면 ‘프리드리히의 플루트 협주곡’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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