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톺아보기

경북매일 2026. 7. 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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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된다. /언스플래쉬

갖고 싶던 게임기를 손에 넣었던 날을 기억한다. 출시 소식을 듣자마자 예약을 해두고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게임기를 받아 들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퇴근하면 가장 먼저 전원을 켜 게임을 했고 주말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한동안은 그 게임기가 하루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게임기는 여전히 내 방에 있지만 예전만큼 자주 켜진 않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던 순간도, 하루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마음도 어느새 희미해졌다. 행복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내가 그 행복에 익숙해진 걸까.

이처럼 처음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행복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긍정적인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큰 성취를 이루거나 원하던 것을 얻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처음 느꼈던 기쁨은 점차 줄어든다.

이러한 적응 능력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 능력이 역설적으로 행복을 오래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종종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 생기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봉이 조금만 더 올랐으면 좋겠고,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고, 원하는 물건을 가지면 만족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새로운 경험은 분명 기쁨을 준다.

새로운 목표를 이루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아주 잠시 기쁠뿐, 금세 또 다른 목표가 눈에 들어온다. 성취의 만족은 오래 머물지 않고, 어느새 다음 행복을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익숙한 것이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는 익숙해져서 미처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꽤 많다. 아프고 나서야 건강했던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나서야 함께 저녁을 먹던 시간이 큰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늘 연락하던 친구의 안부도 당연하게 여기다가 문득 연락이 끊기면 그 빈자리를 실감한다. 반복되는 일상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순간으로 남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익숙해진 행복은 보지 못한 채 새로운 행복만을 찾아다닌다는 데 있다. 익숙해질수록 감사는 줄어들고,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이미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불현듯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흥미롭게도 심리학 연구에서는 행복을 크게 만드는 방법이 반드시 새로운 것을 얻는 데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의식적으로 감사하는 습관이 행복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감사 일기를 쓰거나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떠올리는 작은 습관만으로도 삶의 만족도는 높아질 수 있다. 결국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이미 가진 것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물론 익숙함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적응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것들을 가끔은 낯설게 바라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매일 지나치는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불현듯 꽃을 건네 보고,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일상을 잠시 돌아보는 것. 그런 작은 시선의 변화가 잊고 있던 행복을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윤여진 시인

나는 행복을 늘 미래에서 찾곤 한다. 조금 더 좋은 조건, 조금 더 나은 환경, 조금 더 큰 성취가 있어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있었음에도 익숙해져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은 행복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잠시 멈춰 서서 오늘의 일상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바라보려 한다. 행복을 찾기 위해 앞으로만 걸어가기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행복을 한 번쯤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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