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유리 바닥’ 아래로 황홀한 허공 58m…다리는 덜덜, 눈엔 절경이 훅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조선 중기 문신 양사언의 시조 ‘태산가’의 한 구절이다. 제아무리 높은 산도 하늘 아래에선 가소로울 뿐이니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는 말이다. 중국 남쪽 광시좡족자치구 북동쪽에 위치한 구이린(계림)시에 가면 이 시구에 의문이 든다. 오르지 못할 산을 만난다. 아니, 오를 엄두가 안 나는 산이다.
양숴에 있는 루이펑(여의봉) 얘기다. 웅장한 위용에 압도당하는 루이펑은 양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최근 루이펑이 구이린 여행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유가 있다. 봉우리 정상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 출렁다리 같은 현수교, 승천하는 용 꼬리 같은 모양새의 유리판 길, 깎아지른 벼랑에 설치된 유리판 길 등이 인간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감탄 또 감탄, 카르스트 파노라마
이런 천혜의 조건이 알려지면서 한국인 관광객 수도 매년 늘었다. 2024년 11월부터 허용된 한국인 무비자 입국의 편리함,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행 경비,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현지식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직항 노선을 운행하는 제주항공, 진에어 등의 항공 편수(항공정보포털시스템)를 보면, 한국인 방문객 수는 오는 12월이 되면 지난해 대비 2배를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 예약 플랫폼 트립닷컴이 추천하는 구이린 명소를 지난 5월31일부터 사흘간 둘러봤다.




최근 인기 명소는 루이펑이다. 봉우리로 이어진 케이블카의 길이는 약 2.3㎞.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눈앞에 정상 전망대로 이어진 현수교가 보였다. 길이 150m, 폭 2m 규모로, 최대 고도 58m다.
발을 내딛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호위 무사처럼 웅장하게 선 카르스트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다리 바닥은 두께 4㎝의 부식 방지 목재다. 다리 오른쪽 아래쪽에 설치된 붉은색 유리판 길도 보였다. 마치 용의 꼬리가 춤추는 듯 보였다. 무협소설가 진융(김용·1924~2018)이 살아 있었다면 단박에 자신의 소설에 차용했을 풍광이다.
아찔한 아름다움에 여행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루이펑을 포함한 양숴 지역의 카르스트 숲은 5억년 전 캄브리아기에 형성됐다. 안내판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중국 5대 아름다운 봉우리 숲 중 1등’이라 적혀 있다.
정상 전망대에 도착하면 수천개의 봉우리를 돌던 바람이 반갑게 인사한다. “거제 야호” 밈으로 역주행한 걸그룹 리센느의 노래 ‘러브 어택’이 바람결에 실려 귀에 닿는 듯했다. “아주 눈이 부신/ 너를 숨김없이 보여줘/ … / 두 눈앞은 황홀해/ … / 어서 너의 모든 걸 드러내”라는 가사처럼 루이펑은 자신을 한껏 드러냈다. 달콤한 향도 났다. 아니, 나는 것 같았다. 봉우리가 마치 ‘허쉬 키세스’ 초콜릿처럼 보여서였다. 세상 모든 것은 먹을거리로 비유할 수 있다. 위장은 인간의 가장 순수함을 상징한다.



다시 다리를 건너 산을 내려와도 되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전망대 바로 아래 갈림길이 있는데, 왼쪽 길 따라 계속 가면 유리판 길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을 통과하는 등산 코스를 추천한다.
유리판 길에 오르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아래가 우주 낭떠러지 같았다. 소름은 기억을 강화한다. 이날의 옅은 공포가 구이린을 잊지 않게 할 거다. 유리판 루이펑 스카이워크의 총 길이는 138m다. 가로 2m20㎝, 세로 1m80㎝ 강화유리 68개로 만들었다. 여행객 중엔 유리판 위에 눕는 이도 있었다. 인생 한컷 남기는 데 잠깐의 두려움이 대수일쏘냐.
스카이워크는 벼랑으로 이어졌다. 아슬아슬한 절경이 밀어닥쳤다. “온도가 바뀐 계절 사이/ … / 덜 자란 두려움과/ 리본 맨 운동화/ … / 설렘이란 맘을 실어/ 눈부셨던 장면 위로” 리센느의 ‘인 마이 로션’이 들리는 듯했다. 이 벼랑에서 어른의 ‘덜 자란 두려움’을 생각했다. 제대로 잘 자란 두려움은 어설픈 공명심을 제거한다.



벼랑에 딱 붙어 걸었다. 갑자기 발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촬영 기사였다. 1970~80년대 불국사 등 관광지에 가면 ‘사진 찍어드립니다’를 내건 이들 같았다. 왠지 속는 기분이 들었지만 여행은 추억 만들기 아니던가. 역시나, 하산 케이블카 지점에서 사진을 받았다. 놀라운 사실 하나. 촬영 기사의 실력은 출중했다. 회춘한 얼굴이 사진 안에 있었다. 결국 지갑을 열고 말았다.
오르막도 포함된 이 코스를 다 도는 데 대략 40분에서 1시간 걸린다. 땀이 속옷을 적시고 등줄기를 따라 흘렀지만 아름다운 봉우리를 등반했다는 뿌듯함이 스몄다. 케이블카를 포함한 입장료는 구매처에 따라 다른데 보통 220위안(약 4만8천원) 정도다.




트립닷컴의 두번째 추천 명소는 룽성 소수민족 자치현에 있는 계단식 논 마을(룽성 라이스 테라스)이다. 계단식 논은 경사가 가파른 구릉 지대 아시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작지다. 해발 300~1100m 산기슭에 형성돼 있다. 600여년 전 처음 조성됐다. 좡족, 먀오족(묘족), 훙야오족(홍요족. 요족의 한 지류), 둥족(동족) 등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공동체 마을이다.
머리카락 230㎝…“여긴 백발이 없어요”


마을 아래에 ‘중국 장발 과학 기술 뮤지엄’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들이 사는 마을’로 불리는 훙야오족 여인들의 거주지 얘기를 담은 박물관이다.
10년 전 기록을 살피면 훙야오족 마을엔 대략 300명이 살았고, 그중 80여명이 1m40㎝ 이상의 머리카락을 유지한다고 한다. 가장 긴 머리카락은 2m30㎝에 달했다. 이들은 태어나서 18살 성인식 할 때만 한번 머리카락을 자른다. 박물관 옆 공연장에선 이들의 장발 인생 공연이 열린다.
현지 가이드는 “이들은 백발이 없다. 나이 든 여자도 까만 머리카락을 유지한다. 이 동네 물이 좋다. 박물관에선 이들이 만든 샴푸를 판다. 흰머리 안 생기는 샴푸다”라고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공연하는 여성들의 머리카락은 깊은 밤처럼 까맸다.


세번째 추천 여행은 ‘리강 크루즈’다. 리강은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13개 강 중 하나다. 리강의 60㎞ 남짓 거리를 배로 둘러보는 여행이다. 강 양옆으로 숲, 봉우리, 절벽, 동굴, 바위, 폭포, 마을 등이 보인다. 박쥐 언덕, 남편 기다리는 바위, 자수 언덕, 벽에 달린 잉어, 9마리 말 벽화 언덕 등 이름도 다채롭다. 리강이 ‘살아 있는 갤러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4~5시간 걸린다. 중국 돈 20위안 지폐 뒷면에 그려진 ‘황부다오잉’(황포도영)을 지날 때 여행객들이 20위안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다.


이 밖에 정강왕성과 이 성터 가운데 우뚝 선 77m 높이의 두슈펑(독수봉) 등반이 있다. 정강왕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번왕 제도를 통해 왕으로 세운 질손(형제의 손자)이다. 정강왕성은 정강왕과 그의 후손들 흔적이 있는 명나라 때 유적지다. 지금은 광시사범대 캠퍼스다. 여기엔 청나라 때 과거시험장인 공원(궁위안)도 있다. 야외 복도 양옆에 여러개의 작은 방이 있다. 시험장이다. 과거시험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100만년 시간이 새겨진 거대한 석회암 동굴 루디옌(노적암)도 명소다. 동굴의 깊이는 240m다. 약 2㎞를 걷다 보면 신기한 모양의 석순 등과 당나라 때 벽화 등을 만난다. 동굴 안 호수에 비치는 반전 풍광이 유명하다. 경이롭다.




구이린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에 쌀국수가 있다. ‘구이린미펀’이다. 구이린 어디를 가나 보인다. 2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음식이다. 쌀가루로 만든 면에 소스, 달걀·두부피 등 고명, 바삭한 고기 등을 올려 먹는 국수다. 납작한 면과 둥근 면이 있다. 비벼 먹다가 육수를 부어 먹어도 좋다. 소스에 중국 약초가 들어가 특이한 향을 낸다. 가격이 6위안(약 1300원)인 것도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 구이린 사람들은 계수나무 꽃으로 술을 담그고 열매로 과자를 만든다. 계수나무에선 그들의 일상이 스쳐 지난다.


구이린/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중국 여행의 필수는 가오더(고덕)지도나 바이두지도를 내려받아 가는 것이다. 현지에선 카드나 현금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 중국 결제 수단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결제하면 편리하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페이 사용도 가능하다. ‘알리페이 플러스’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 호출 앱 ‘디디추싱’(DiDi)도 내려받아 가면 편리하다. 공유 자전거가 도로에 많다. 간단한 앱 결제로 사용이 가능하다. 엠제트(MZ) 여행객에게 인기다.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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