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잘부〉, 고향 풍경 간직한 ‘진짜’들의 “야호” [콘텐츠의 순간들]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알게 되었을 때, 해당 멤버들의 출신 지역부터 검색하는 오랜 버릇이 있다. 지역으로 편 가르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일까 어디에서도 밝힌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 버릇을 나쁘게 생각한 적 또한 없다. 아이돌은 10대의 마음을 노래하는 이들이니 그들이 어떤 땅에서 자랐는지, 어떤 풍경을 보며 학교를 오갔는지 상상하는 일은 그들의 음악과 세계에 다가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개설된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이하 〈안원잘부〉) 채널은 5월22일 공개한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라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며 몇 달 만에 폭풍 성장해 어느새 구독자 100만을 넘어섰다. 해당 영상에서 자신의 고향인 거제 사랑을 보여준 원이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힘입어 거제시 홍보대사(리센느 멤버 전원)로 선정되었고, ‘갸루’를 연기한 일본인 멤버 미나미의 “거제 야호!”는 2026년 상반기를 대표하는 밈이 되었다. 작은 기획사의 아이돌 리센느의 곡 ‘러브 어택(LOVE ATTACK)’ 역시 이 영상의 흥행을 타고 역주행에 성공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중소의 기적’이라며 무명 그룹의 고군분투와 마침내 찾아온 결실에 박수를 보냈다.
지역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내게 서울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인간으로 ‘데뷔’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데뷔를 위해 상경한 지역 출신 아이돌을 보면 왠지 나와 비슷한 각오로 이곳에 왔으리라 짐작하며 그들이 모두 성공하기를 바랐다. ‘거제에서 태어나 옥포초등학교와 옥포성지중학교, 거제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리센느의 리더로 활동’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원이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서울에 오자마자 사투리를 고치고 내 고향과 매일 마음으로 작별한 나는, 상경 후에도 고집스럽게 고향의 말씨를 쓰며 고향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여자들을 보면 ‘진짜’라는 감동을 받곤 했는데, 거제 사투리로 조선소를 소개하고 건물 대신 바다가 보이는 거제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태어나도 거제에서 태어나고 싶다”라고 말하는 원이는 그런 내게 ‘진짜 중의 진짜’처럼 다가왔다.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이 모이는 곳에서
원이가 드러내는 애향심에는 짧은 서울살이에서 얻은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다. 원이는 거제 시내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서울에는 없고 거제에만 있는 것을 가려내며 우쭐댄다. 그러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 단지가 가까워지자 “거제에도 이렇게 높은 건물들이 있다”며 ‘서울과 다르지 않은’ 고장의 번화한 풍경을 자랑한다. 경주 출신 멤버 제나와 함께 하루 종일 사투리를 쓰는 미션에서도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자신의 억양을 알아볼까 위축되고, 새침하다며 흉을 봤던 ‘서울 가스나’들에게 ‘서울 언니들은 전부 왜 이렇게 예쁘냐’ 말을 건네며 애교스럽게 다가가기도 한다. 케이팝이 서울 중심의 음악이자 문화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안원잘부〉에서 원이가 보여주는 이런 모습은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주민들의 동경, 열등감 같은 양가적 감정의 단면처럼 느껴진다.

이 콘텐츠의 또 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미나미 역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민이기에 원이가 가진 감정을 공유한다. 오랜 시간 한국에서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하며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그에게 서울은 비슷한 꿈을 지닌 이들이 모두 모여드는 곳, 말하자면 자기 세계의 수도다. ‘한국어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아이돌’이란 말을 들을 만큼 한국에 동화되었지만, 미나미가 많은 이에게 알려진 계기는 공교롭게도 자신의 이국적 정체성을 과장되게 수행하는 ‘갸루’를 연기했을 때다. 도쿄 시부야와 하라주쿠를 중심으로 탄생한 ‘갸루’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하위문화다. 그렇기에 원이가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울에 맞섰다면, 미나미는 대도시가 만들어낸 환상을 연기해 그 인위성을 폭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거제 바다를 풍경으로 야외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원이와 의욕 잃은 몸짓으로 파라파라를 추는 미나미의 모습은 어딘가 한심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이들의 이런 한심함을 통해 사람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허구성을 인식한다. “건물 만들지도 않았는데 쓸데없이 깔롱 부리고. 그게 성수 아닙니까? 그냥 이런 걸(벽돌) 두고 카페라 한다”라는 원이의 불평에 서울 사람들조차 공감의 웃음을 짓는 것을 보라.
고향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상경한 원이와, 바다를 건너온 미나미의 모습은 고향을 좋아하지만 떠나고 싶기도 한 지방 젊은 여성들의 복잡미묘한 마음을 고스란히 닮았다. 서울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를 타자화하지 않고, 자신들의 처지를 주체적인 농담 소재로 삼아 무대를 옮겨가며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로 함께하는 두 사람.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지역민의 편에서 나는 이 서사가 다시 서울의 판타지로 재흡수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전하고 무해한 지역성’이란 프레임에 갇히기엔, 이들이 보여준 생존 방식은 치열하고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매일 고향과 마음으로 작별해야 했던 과거의 나를 지나, 이곳에 머물면서도 결코 이곳이 정한 룰에 순응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것을 지켜내는 여자들을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울이라는 무대에 데뷔하지 않아도, 내가 나고 자란 자리를 사랑하며 그 정체성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거제 소녀’와 ‘지바 갸루’가 ‘중소 도시의 기적’을 일으키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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