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원 피해자 심층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우석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건물 2층에는 색색깔 공과 스윙호스, 바퀴가 달린 롤브레트와 낙하산 천(파라슈트) 등이 있다. 어린이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술 외 수단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중증 발달장애인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우석대 인지과학연구소는 비언어적 행동관찰과 ‘심리운동 기법’으로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비롯해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 염전 강제노역 사건, 서울 인강원 사건 등 장애인 학대 문제를 조사해왔다. 심리운동 기법은 사람을 의미의 생산자로 보고, 시선 회피·신체 긴장·몸짓·표정·반복 행동·특정 반응 등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에 담긴 경험적, 사회적 의미를 해독하는 방법론이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인천 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서 피해를 당한 남녀 거주인들이 이곳에 방문해 1박 2일간 머물렀다. 우석대 연구팀은 이들이 조사 과정에서 전한 ‘몸의 언어’들을 정리해 ‘색동원 피해자 심층조사 보고서’를 엮었다. 조사를 담당한 전지수 우석대 교수(인지과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를 6월19일 만났다.
피해 심층 조사는 어떤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나?
친밀감(라포르) 형성, 의사소통 ·인지·사회정서·신체 능력 파악, 소집단 관찰, 피해 조사, 영상 분석 등을 거친다. 다만 각 단계는 분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조사 기간에 다양한 심리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목적에 맞춰 특정 환경을 설정한 프로그램이다. 입소자가 놀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친밀감을 쌓는 동시에 대상자의 의사소통 방식, 정서적 상태, 인지능력, 신체감각 등을 파악한다.
예를 들면 어떤 활동인가?
예컨대 세탁기 호스처럼 생긴 여러 색깔의 ‘스윙호스’가 있다. 이걸 가지고 놀때 다양한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돌리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재미있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긴장이나 위축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 여러 색을 덧댄 ‘파라슈트’로는 다 같이 천 끝을 잡고 위아래로 동시에 움직이는 단체 활동이나 가운데에 짐볼을 올리고 공중에 띄우는 협력 활동을 할 수도 있다. 하나의 목표를 같이 달성하는 일이기에 빠르게 친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손가락이나 다리를 움직이는 방식 등 구체적인 신체 활용과 승부욕, 타인과의 관계 등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반응이 없거나 놀이에 흥미가 없는 대상자는?
대형 시설에서 온 분들 절반은 처음엔 가만히 있는다. 우선은 재촉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반응이 없는 분이 절반이라면 새로운 공간·사람·경험이 너무 즐겁고 호기심이 가득한 분이 절반이다. 다 같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게임을 하면서 놀면 어색해하던 분들도 천천히 다가온다.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여는 거다. 색동원 조사 때도 초반에는 놀이공간을 이탈하고 조사자들을 경계하던 분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계속 방에 들어와 계시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도구를 조사자에게 주며 친근감을 표현했다.
친해지는 것으로 중요한 피해 진술을 얻을 수 있나?
입소자들이 자신이 있는 공간과 사람들을 안전하다고 인식하고 호감을 가지게 되면 예상치 못한 순간이 벌어지기도 한다. 색동원 조사 당시, 다 같이 줄다리기를 한 적이 있다. 여성 입소자분이 그 시간이 무척 재미있으셨는지 친근하게 느끼는 조사자가 있는 팀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적극적으로 놀이에 임했다. 놀이가 끝난 후 그분이 남성 조사자에게 다가가 두 손을 모으게 하고 손을 줄로 묶었다. 그 후에 세게 밀치는 것까지 직접 보여줬다. 그걸 보고 있던 다른 여성 입소자분이 다가와 자신도 손을 내밀며 묶으라는 표현을 했다. 그 후에 무서운 표정도 지어 보였다. 소통하고 싶고, 설명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몸에 오랫동안 새겨진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현한 거다. 그분은 처음에는 계속 소리 내며 울던 분이었는데도 새로운 환경에 집중해 ‘진술’한 거였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해 보인다.
프리킥 연습을 오래 한 축구 선수에게 공이 주어지면 그간 쌓아온 경험대로 공을 차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반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조사 기법의 핵심이다. 자신의 몸을 본뜬 ‘신체상’ 활동을 한다고 하면, 종이에 몸을 그린 다음 자신의 눈·코·입을 따라 그리거나 가장 좋아하는 신체에 색칠하면서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다음에 밴드를 주면 아픈 곳, 아팠던 곳에 자연스럽게 붙인다. 때로는 옆 사람도 그런 장치가 될 수 있다. 소그룹으로 면담을 하면 1:1 상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 나오기도 한다.
언어 진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존 수사 방식을 보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사람의 말에는 왜곡이 많다.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심리 상태에 따라 축소·과장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달변가라고 해서 자기의 피해 사실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사 당시, 언어 진술이 어려운 입소자분에게 피해 경험을 묻자 그분이 상의를 올려 가슴을 보여주기도 하고, 손으로 움켜쥐기도 했다. 굉장히 직접적이고 진실한 진술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색동원 사건의 경우 우석대 심층 조사에서는 여성 거주인 19명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찰은 3명의 성폭력 피해만 인정했다.
퇴보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석대 연구팀에서 진행한 피해 조사 결과는 법적으로도 증거능력을 인정받고 채택돼왔다. 내가 직접 법원에 가서 연구 방법과 결과에 대해 진술을 하기도 했다. 시도경찰청에서도 우리 연구팀에 의뢰를 많이 한다. 움직임을 통해 상황을 분석하는 데 특화되어 있고 그 역량을 인정받기 때문에 CCTV 분석 등에 협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간 거다. 이번 사안을 통해 경찰 수사 방식의 한계를 파악했으니 앞으로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피해 조사 방식을 보완하려면?
우선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피해 경험을 반복적으로 말해야 하는 시스템부터 개선돼야 한다. 특히 장애인 피해 조사는 지금처럼 1박 2일 짧은 시간을 하기보다 긴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 장애에 따른 움직임과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소통하기 위한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수사기관뿐 아니라 인권 조사 기관 담당자, 특수교육 전문가, 임상심리 전문가 등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조사를 통해 피해자의 마음도 이해하게 될 텐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색동원을 퇴소하고 가족과 사는 분이 계셨다.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는데 “원하는 시간에 밥 먹고 원하는 시간에 잘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우리는 피해자들이 폭력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 해결된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시설을 나와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자유가 주어질 때 피해가 회복된다. 2019년 발생한 전북 장수 벧엘의집 장애인 학대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증장애인분이 탈시설을 하게 되었는데 연구팀과 정이 많이 들어 새집도 방문하고 인연을 이어갔다. 연말에 큰 어묵차를 빌려 아파트 마당에서 주민들에게 어묵을 나눠드리며 그분과 떠들썩하게 놀았다. 지금도 지역에서 잘 살고 계시고 장애인 투쟁 현장과 연대하시더라. 얼마 전 탈시설 장애인상도 받으셨다고 한다. 장애라는 게 다리가 불편해서 장애가 아니라 ‘다리가 불편해서 어딘가를 못 가기 때문에’ 장애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어디든 갈 수 있게 되면, 어디에서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장애인이라서 겪어야 하는 지금의 폭력과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완주·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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