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건강이 수면과 집중력, 두뇌까지 좌우합니다”
식탁이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의 뇌, 정서, 면역을 키우는 본질적인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한형선 약사를 만났다.

‘생명이 깃든 음식은 질병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요리하는 약사’ '푸드 닥터’로 알려진 모자연약국 한형선 대표 약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다. 그는 급성 질환이나 외과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현대 의학의 힘이 절대적이지만, 질병이 반복되지 않도록 몸의 환경을 만드는 힘은 음식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 세포가 살아가는 토양이 만들어지고, 그 환경이 건강의 방향을 결정하며, 나아가 정서와 두뇌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수많은 상담을 통해 식탁의 변화가 아이의 몸과 정서를 어떻게 치유하는지 목격해왔다. 또래에 비해 영리하지만 금세 집중력을 잃던 아이는 아침 식사를 식빵과 초코우유에서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계란 프리타타와 아보카도로 바꾼 뒤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매일 배앓이를 하며 감정 기복이 심했던 아이는 젤리와 초콜릿을 끊고 부드러운 단호박죽, 식이섬유와 유익균이 풍부한 채소, 플레인 요구르트 등으로 식단을 리셋한 후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산만하고 충동적이던 아이 역시 튀김 위주의 식습관을 삶은 계란과 등푸른생선 중심으로 바꾸자 점차 마음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였다. 값비싼 영양제나 특별한 솔루션이 아니라 식습관의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처럼 그가 음식과 밥상의 힘에 주목하게 된 데에는 아픈 자녀를 둔 부모로서의 절박함과 약사로서의 현장 경험이 맞물려 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그는 결혼 6년 만에 얻은 아들이 수신증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30대 후반에 뒤늦게 약대에 진학해 약학 석사를 취득했고, 이후 사회복지, 심리상담, 한약학 박사 과정까지 공부 영역을 넓혔다. 약사가 된 후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만성질환이나 장기적인 회복 과정에서는 식습관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특히 그는 최근 출간한 '4~7세 총명한 아이는 이렇게 먹습니다’에서 이 시기가 평생의 입맛과 장내 생태계, 그리고 공부 머리를 좌우하는 뇌 성장이 완성되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식단의 중요성은 비단 아이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형선 약사는 "지금 나의 모습은 지난 2년 동안 내가 먹은 음식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그와의 만남 이후, 매일 무심코 입으로 가져가던 음식 하나하나를 다시금 귀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다음은 한 약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4~7세 식단이 평생 건강과 두뇌 좌우
식습관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아들이 태아 때 수신증 진단을 받고 제왕절개로 태어나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취약했던 탓에 어릴 때 잔병치레가 잦았습니다. 신장의 부담을 줄이려면 몸에 독소가 쌓이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장 건강이 우선이었죠. 장내 미생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식습관을 개선했더니 눈에 띄게 좋아지더군요. 이후 약국에서 수많은 아이와 만성질환자를 만나며, 장 건강의 출발점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식습관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죠.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생후 34개월이었던 심장판막증 수술 환아가 기억에 남습니다. 빠는 힘이 약해 튜브를 통해 영양액을 공급받고 있었는데, 전신 알레르기에 시달렸어요. 병원 특수 영양식에도 거부반응이 있었습니다. 장내 면역 생태계가 무너진 게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단호박, 마, 바나나 등을 곱게 끓여 꾸준히 먹였죠. 그 후 장 기능과 배변 상태가 개선되면서 튜브를 제거할 수 있었어요. 이후 알레르기 증상도 완화돼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습니다. 음식은 생각보다 아이의 컨디션과 정서, 행동 패턴에 큰 영향을 줍니다.
4~7세 식단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요.
이때가 세포 성장과 두뇌 발달이 가장 활발할 뿐만 아니라 인격과 감정의 틀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이 시기에 형성된 식습관과 감정 조절 방식은 이후 삶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0~3세까지는 부모가 주는 대로 먹지만, 4세부터는 아이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극적인 가공식품에 쉽게 노출되죠. 이때 건강한 음식의 기준을 익히지 못하면 나중에 식습관을 교정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식탁은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곳이 아니라 타협과 절제를 배우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장내 생태계 관리가 면역은 물론 수면과 두뇌 건강으로까지 연결이 된다고요.
장에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 약 70%가 모여 있습니다. 그야말로 '면역 기지’인 셈이죠. 장내 유익균이 식이섬유를 발효할 때 생성되는 단쇄지방산은 인지 기능을 보호하는 핵심 물질입니다. 단쇄지방산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기억력이 감퇴할 수 있어요. 정서적 안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약 90%,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의 약 50%도 장에서 합성됩니다. 또 장에는 뇌와 직접 소통하는 미주신경이 발달해 있어요. 장내 미생물이 건강할 때 뇌는 '안전하다’는 신호를 받고 안정 상태로 전환됩니다. 숙면 호르몬인 멜라토닌도 세로토닌을 원료로 전환되기 때문에 장이 쾌적해야 깊은 잠에 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장 환경이 나빠지면 긴장 신호가 뇌로 지속해서 전달돼 아이가 산만해지거나 예민해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게 되죠.
요즘 아이들 식단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맛과 포만감에만 치우친 '가짜 식사’가 늘었다는 점입니다. 빵이나 치킨처럼 맛은 강하지만 정작 대사에 필요한 미네랄, 비타민, 효소는 부족한 음식들이 많죠. 이런 정제 탄수화물과 첨가물이 많은 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은 소아비만이나 대사 이상뿐만 아니라, 정서적 불안과 집중력 저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당과 나쁜 지방은 염증을 유발해 뇌를 만성피로 상태로 몰아넣어 아이를 산만하게 만들 수 있어요. 지나치게 부드러운 음식만 먹는 식습관도 씹는 기능과 소화 효소 분비를 약화해 장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식단이 좀 부실해도 영양제로 보완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영양제는 자연식품이 가진 생명력 중 일부, 이를테면 '물질적인 반쪽’만 모아놓은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부족한 영양소를 효율적으로 보충하는 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은 단순히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화학적 성분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그 생명체가 척박한 자연환경을 견디며 살아남은 힘, 즉 생존력까지 함께 담고 있죠. 예를 들어 물속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쉽게 썩지 않고 독성을 견뎌내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섭취했을 때도 이뇨와 해독을 돕는 방향으로 작용하죠. 설령 자연식품 속 영양 성분을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추출해 한 알의 알약으로 만든다고 해도, 온전한 생명체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두뇌 건강에 좋은 대표 식재료 계란, 고등어, 시금치
아이의 두뇌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첫째는 계란입니다. 계란 노른자에 풍부한 콜린은 장내 미생물이 만드는 단쇄지방산과 만나 아세틸콜린이라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 물질은 뇌에 안정 신호를 보내 깊은 휴식과 수면을 돕고, 두뇌 기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죠. 또 노른자에 함유된 루테인과 지아잔틴은 강력한 지용성 항산화제로, 망막을 보호하고 활성산소로부터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둘째는 고등어 같은 등푸른생선입니다. 여기에 함유된 오메가3는 단순히 콜레스테롤 개선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막을 유연하게 유지해 영양소와 신호 전달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습니다. 몸속의 만성염증을 완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셋째는 시금치 같은 녹황색 채소입니다.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산화 스트레스가 발생하는데, 색이 진한 채소들은 강력한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세포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반대로 몸에 좋을 것 같지만 주의가 필요한 음식이 있다면요.
시판용 과일주스와 과일칩이 대표적입니다. 주스 포장지에 적힌 '100% 과일’이라는 문구를 보면 막연히 건강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과일의 가장 큰 장점인 식이섬유는 대부분 제거되고 과당만 높아진 경우가 많습니다. 말린 열대 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분이 빠지면서 당이 응축돼 아이들의 혈당을 급격하게 흔들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앓고 있는 비염과 아토피에 좋은 식단을 추천한다면요.
비염과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질환도 장 건강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장 속 방어선이 무너져 독소가 몸 안으로 유입되면 면역계가 과잉 반응하게 되고, 알레르기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회복하고 장벽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이를 위한 음식으로 '과채 수프’를 추천합니다. 단호박, 당근, 양배추, 양파처럼 장에 좋은 채소를 푹 끓인 뒤 아이 입맛에 맞춰 사과, 바나나, 토마토 같은 과일을 한두 가지 곁들여 갈아주면 좋죠. 비염처럼 호흡기 증상이 두드러지는 아이라면 무, 대파, 생강을 달인 물을 베이스로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장 건강을 돕는 동시에 호흡기 점막을 보호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죠.
아이들은 식단이 바뀌면 대부분 한 달 안에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셨는데, 어른들은 어떤가요.
성인은 노화로 인해 세포 재생 주기가 길어지다 보니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이들은 성장 속도가 빠른 만큼, 잘못된 약물이나 나쁜 음식에 노출됐을 때 어른보다 더 깊고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식단 관리가 더욱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식습관 일관된 방향성이 중요
매일 빼놓지 않고 섭취하는 음식이나 식사 루틴이 있나요.저는 아침마다 몸속 독소를 비워내는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눈을 뜨면 따뜻한 물과 찬물을 반씩 섞어 음양수를 만들고, 여기에 죽염을 타서 마시죠. 그러고 나서 과채 수프와 삶은 계란 하나로 가볍게 아침을 먹습니다. 발효 음식도 좋아합니다. 김치와 청국장처럼 오랜 시간 우리 식탁에 올라온 전통 발효 음식은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 환경에 가장 잘 맞거든요.
건강을 위해 의식적으로 끊거나 줄인 음식도 있나요.
특정 음식을 무조건 금지하는 극단적인 방식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가끔은 라면도 먹습니다. 다만 반복적으로 몸에 부담을 주는 음식은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직화 구이나 튀김류는 단백질 변성과 산화된 지방 때문에 체내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설탕 같은 정제당 역시 혈당을 급격히 흔들기 때문에 주의하죠. 평생 마신 캔 음료가 10병이 안 될 거예요.
식재료에도 신경을 많이 쓸 것 같아요.
서울에 살다가 2002년 충주로 이사 와 그때부터 3300㎡(1000평) 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웬만한 채소는 농약을 쓰지 않고 직접 재배해 먹습니다. 제가 직접 키우기 어려운 작물들은 가급적 정직하게,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지은 것들을 골라 구입해 먹고 있어요.
부모들이 아이 식단 개선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미 강렬한 맛에 길든 아이의 입맛, 오랜 시간 굳어진 가족의 식습관이라는 벽 때문입니다. 식단 개선은 단순히 메뉴 몇 가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질병을 유발하던 생활 습관을 치유의 습관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오미구상(五味口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맛만 좇다 보면 입맛을 잃고 몸도 망가진다는 뜻인데, 현대 가공식품과 정제당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입맛이 딱 이런 상태일 수 있죠. 많은 부모님이 식단 개선을 아이에게만 강요하거나, 조리 과정의 번거로움에 지쳐 중도 포기하곤 합니다. 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습관의 총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완벽하게 통제하려 하기보다 조금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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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영철 기자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한형선
김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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