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깨달아 가는 이주노동자들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제도에 위축되지 않고 불합리한 현실에 과감하게 맞서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고 고통받는 존재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3~2004년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에서도 그러했듯이 이주노동자들은 늘 투쟁의 주체이기도 했다. 물론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쫓겨날 위험도 높기 때문에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소수라고 하더라도 '동료 노동자'로, 그리고 '동료 시민'으로 일터와 사회를 바꾸는 길에 함께해 왔다. 지난 5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앞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그렇게 투쟁하는 수백 명의 이주노동자 동료를 만났다. 이것은 정말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이날 모인 1천여명의 노동자와 연대시민들은 HD현대중공업의 차별과 나쁜 계약을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주노동자들을 응원했다. 이날 주축이 된 이주노동자들은 조선업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이유로 정부가 E-7-3(일반기능인력) 비자를 대폭 늘렸을 때 들어온 노동자들로서 현재 HD현대중공업에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이다. 이 집회에서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현장 대표는 "회사의 힘은 사측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에게 있습니다. 우린 약자이지만 우리에겐 큰 힘이 있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바로 노조 가입원서를 썼다. 행진할 때 이주노동자들의 구호는 힘이 넘쳤고 흥겨웠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먼저 집단적인 투쟁을 시작했는데, 베트남 노동자들도 이날을 기점으로 모임을 만들고 대표를 선임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만든 HD현대중공업의 차별은 심각했다. 정주노동자들에게는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는데, 사측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식대로 50만원 넘게 공제했다. 2025년 성과금이 설 전에 지급됐는데, 원청은 1천700만원가량의 성과금을 받았고 사내 협력업체 이주노동자도 500만원가량의 성과금을 받았지만 직접고용 E-7-3비자 노동자들은 성과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차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부가 2024년, 신규 도입 인원에 대해서는 도입 후 3년간 최저임금만 줘도 된다고 하자, HD현대중공업은 기존의 E-7-3 비자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리고 남은 E-7-3 비자 노동자들에게는 기본급을 대폭 삭감하고, 성과차등 임금제를 적용하며, 저성과자 해고 등을 담은 인사제도 개편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임금삭감 등의 내용을 담은 근로계약서를 내밀며 서명을 강요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집회는 바로 그런 불합리한 강제 서명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사측은 재계약을 빌미로, 혹은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없게 하겠다는 협박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굴복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집단적인 서명 거부와 집회가 계속되면서, 회사는 결국 그동안 공제한 식대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작은 승리를 거뒀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차등성과급제와 저성과자 해고라는 인사제도 개편안을 없애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집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재계약이 안 되거나, 사업장 변경이 안 될 수 있는 조건에서 집단행동을 조직하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차별'과 '불합리'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여줬다.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대표가 이야기했던, '우리는 약자이지만 우리에게는 큰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스리랑카 노동자들부터 시작하고 베트남 노동자들도 합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서명 거부, 집회와 투쟁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힘은 '단결'일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을 뒷받침하는 것은 정주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연대다. 불합리한 차별을 용인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갈라치는 일에 저항하는 이 투쟁은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만의 투쟁일 수 없다. 모든 노동자들은 이런 분열에 맞서 꾸준하게 싸워왔다. 이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힘을 깨달아 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조직되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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