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콜센터 노동자가 하루 멈추는 이유

저는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문과 배송, 반품과 교환, 각종 민원을 처리하며 하루에도 100명 넘는 고객과 마주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우리를 고객응대 근로자로 규정하고 감정노동 보호조치를 사업주의 의무로 정하고 있지만 법이 있다고 해서 현장의 노동자가 보호받는 것은 아닙니다.
민간 홈쇼핑 사업의 특성상 고객 보상제도가 운영됩니다. 상품권, 적립금, 심지어 현금 보상 등이 제공되다 보니 일부 고객들은 이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폭언과 협박,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습니다. 상담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화를 받았지만, 어느 순간 그저 온몸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롯데홈쇼핑은 오랫동안 폭언 고객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상담사는 폭언을 듣더라도 즉시 전화를 끊을 수 없었고, 고객에게 여러 차례 경고한 뒤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통화를 종료할 수 있었습니다.
노조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요구 끝에 올해 4월부터는 한 차례 경고 후 상담을 종료하고 이후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됐으나 제도가 생겼다고 해서 현실이 곧바로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화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욕설과 성희롱은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지속적인 인격모독과 반복적인 항의, 수십 분에서 길게는 수시간 동안 이어지는 괴롭힘성 통화는 욕설·성희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화를 끊지 못하고 고스란히 온몸으로 버텨내야만 합니다. 제도와 법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하고, 상담사 본인 스스로 버티며 속으로 삭이며 전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저도 직접 겪은 일이 있습니다. 한 고객은 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죄송하다는 말을 한 시간 내내 수십 차례 했으나 고객은 계속 다시 "미안하다고 말해 보라"며 수십 번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결국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고객은 오히려 "남이 보면 내가 나쁜 사람인 줄 알겠다. 전화 끊지 말고 가서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와서 전화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고객은 제 목소리에 진심이 없다며 관리자를 요구했고 저는 1시간 동안, 관리자 역시 2시간 동안 총 3시간의 통화 끝에 고객은 2만원의 적립금을 받아갔습니다. 저는 울면서도 상담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고객은 욕을 하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시간 괴롭혔지만 회사의 기준으로는 상담을 종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고객은 지금도 여전히 롯데홈쇼핑 고객으로 남아 있습니다. 회사는 고객을 탈퇴시키지 않았고, 상담사들은 10년째 같은 고객의 괴롭힘에 반복적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상담을 끝낸 이후입니다. 폭언과 모욕, 인격 침해를 경험한 상담사에게 회복할 시간이 결코 주어지지 않습니다.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곧바로 다음 고객의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울음을 삼킨 채 헤드셋을 다시 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절한 목소리로 다음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욕설과 성희롱만이 감정노동 보호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됩니다. 욕설이 없이도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정노동 보호'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감정노동 보호는 이런 식의 법 한 줄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폭언과 괴롭힘을 경험한 이후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감정을 회복할 수 있는 권리, 즉 휴식권이 함께 보장돼야 합니다. 상담중지권은 시작일 뿐입니다. 상담 이후의 회복권과 휴식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감정노동 보호는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콜센터 노동자가 하루 멈추는 이유는 단지 쉬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감정노동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하루를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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