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5·18 조롱 사태를 보며 아이유의 명언을 다시 되새기는 이유[위근우의 리플레이]

가수 아이유가 남긴 오래된 명언이 있다. “이거 뭐야, 내가 가해자인가? 싶을 정도로 헷갈렸는데 뭐 처벌은 해야죠.” 2013년, 그가 고소한 악플러가 반성문에 아이유와의 일 때문에 이혼을 당하게 생겼다고 선처를 요구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다들 아이유의 말에 공감하고 속 시원해했다. 왜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 죄책감을 강요하나. 그런데 현재까지 배재고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조롱 사태 이후의 진행은 정확히 아이유가 겪었던 황당무계한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이거 뭐야, 광주일고와 광주가 가해자인가?
사건의 추이만 간략히 따라가 보자. 지난 6월 29일 목동야구장에서 벌어진 광주일고 대 배재고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중 배재고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가를 불렀고 심지어 한 선수가 “탱크데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5월 18일 텀블러 이벤트에 ‘탱크데이’라는 문구를 썼다가 5·18 조롱 의혹과 정용진의 사과로 이어진 소위 스타벅스 사태를 염두에 두고 광주일고와 연고지 광주를 모욕하는 응원이었다. 당연히 제정신 박힌 다수는 배재고 선수들과 방치한 코치 및 감독을 비판했다. 당일 배재고 측은 정용진의 사과가 그러했듯 딱히 사과 같진 않은 공식 사과문을 어쨌든 공개했고, 다음 날 한 번 더 사과문을 올렸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명백한 잘못을 했고, 사과를 했고, 처벌을 받았다. 사과가 적절했는지, 처벌 수위가 적당한지에 대한 후속 논의는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가해자가 가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료한 원칙과 과정에 군더더기가 붙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번 사태 이후 가해자를 편들던 정치인들의과 보수 언론은, 과거 아이유가 경험했듯 사태의 원인을 오히려 광주일고와 광주와 5·18에 돌리는 가해자-피해자의 자리바꿈을 시도한다. 먼저 가해 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부류.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스타벅스가 5·18과 무슨 관계냐’는 메시지의 응원 화환을 배재고 앞에 보냈다. 앞서 말했듯 스타벅스와 5·18은 관계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5월 18일에 ‘탱크데이’라는 이벤트 문구로 논란을 만든 건 스타벅스다. 최대한 선해해 스타벅스 측에선 조롱의 의도가 없었다 해도 그 사건을 인용해 광주 연고 학생들 앞에서 스타벅스 가겠다고 한 배재고 학생들은 명확한 지역 혐오의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이 맥락을 싹 지우고 스타벅스 가겠다는 말이 가해가 아니라 하면 결국 징계받은 배재고가 억울한 피해자가 되고, 응원에 항의한 광주일고는 누명을 씌운 가해자가 된다. ‘학생들의 철없는 응원을 너무 쉽게 지역 혐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 스타벅스 가자는 말이 언제부터 혐오의 언어냐’라고 옹호한 같은 당 김민전 의원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담론 구조에서 이번 사태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인데, 일이 벌어졌으니 피해자가 문제를 만든 원인이고 그래서 가해자가 된다는 기적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그나마 가해 행위 자체가 없었다는 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소수 의견처럼 보인다. 징계를 문제 삼는 건 그보단 훨씬 합리적인 지적처럼 보인다. 김재섭 의원이 그러하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배재고 선수들이 5·18민주화운동을 조롱거리로 삼은 행태는 저열하다”며 적어도 혐오 행위가 벌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까지다. 젊은 남성 정치인의 혐오 표현에 대한 글 첫 문장이 나름 멀쩡하게 시작될 경우 십중팔구 이어질 말은 ‘하지만’이다. “하지만 이들 고등학생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무게는 비정상적으로 무겁다.” 나는 배재고에 대한 징계가 너무 심하다는 반응을 볼 때마다 엄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령 중앙일보 이현상 칼럼니스트는 지면을 통해 “인생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너무 비정”하며 “권위주의 시대의 그늘이었던 연좌제를 연상케 한다”고 비분강개했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과거 조직폭력배 이정재처럼 이름표를 목에 매고 ’나는 지역혐오자입니다. 광주 시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광주 시내에서 조리돌림이라도 당했나 싶다. 그래도 징계 수위에 대한 얘기라면 논의의 가능성이 조금 남겠지만 김재섭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징계로 해결하는 대신 “민주당 기득권의 스타벅스 때려잡기와 무차별적인 일베 몰이가 청소년 사회에 불러온 뒤틀린 백래시”부터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위한 밑밥에 불과하다. 즉 이진숙과 김민전은 별 일 아닌 게 광주일고가 민감하게 받아들여 가해 행위로 둔갑했다는 논리라면, 김재섭은 가해 행위는 맞지만 그 원인은 배재고의 혐오가 아닌 그렇게 청소년을 몰아넣은 민주당에 있다는 식으로 순서만 바꾼 논리로 또 한 번 피해자와 가해자를 역전시킨다. 이번 일을 “민주당의 분열 정치가 빚어낸 과잉 이념화 촌극”으로 명명한 나경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감히 광주일고의 정당한 분노가 원인이라 말할 용기는 없지만, 결국 5·18에 대한 민주 진영의 과도한 반응이 문제의 원인이라 한다는 점에서 결국 조금 더 합리적인 척하는 김민전 수준일 뿐이다.

이런 식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일 때 “5·18이 성역이 된 것”이라는 이병태 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이 나올 수 있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상황을 우려했다고 하지만, 결국 여기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배재고가 피해자로, 5·18을 성역화해 지역 혐오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광주가 가해자가 된다. 이번 발언으로 권고 사퇴한 이병태는 “어린 학생들의 스포츠 경기에 쓰인 간단한 구호마저 정치적 도구와 진영 간 이념 대결로 비화하는 현상”을 우려했다고 하지만 탱크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시민 학살을 옹호하고 당사자들을 조롱하는 행위를 ’간단한 구호‘로 축소하는 것이야말로 이념에 경도된 짓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병태의 사퇴 과정을 안타까워하며 “사과와 용서로 해결해야 할 학생들의 잘못을 어른들이 앞장서서 증폭시키고 정치권이 가담해 진영 대립, 이념 검증의 양상으로까지 몰고 갔다”며 이 사태의 진짜 원인은 “수업의 연장인 운동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학교 밖으로 끌어내 과도한 진영 간, 지역 간 갈등으로 증폭시킨 어른들”이라 짐짓 꾸짖는다. 정작 수업의 연장인 운동장에 학교 밖에서 만들어진 호남 비하와 5·18 조롱의 언어를 가져와 휘두른 건 가해자들이라는 가장 단순한 사실 관계도 이렇게 왜곡된다. 결국 이들의 논리에서 광주일고의 피해는 충분히 용서 가능한 것, 배재고의 가해는 사과로 끝날 수 있는 걸로 축소되며 사과와 용서로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관용 부족만이 문제가 된다.
징계에 대한 재심을 앞두고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일고에 직접 사과하러 찾아오고, 그 다음날 광주일고에서 배재고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아름다운 용서와 화해, 교육의 복원처럼 묘사하는 언론들의 반응에 공감하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배재고가 재심을 노리고 방문했거나 광주일고가 떠밀리듯 선처한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앞서 인용했듯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지속적으로 가해 행위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화해를 종용하는 압박이 벌어졌다. 이 상황이 교육적인가? 교정의 기회라는 것을 위해 바로 처벌을 통해 책임지는 경험이 필요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가? 이쯤 되면 대체 배재고 학생들이 당했다는 “마녀사냥”(김재섭)이나 “아이들 꿈마저 빼앗는”(나경원) 처벌은 어디에 있는지, “공포에 질려있을지 모를 배재고 학생들”(이진숙)이란 존재하긴 하는지 의문이다. 중앙일보를 포함해 언론마다 이건 결국 어른들의 잘못이라 관성처럼 말하며 아이들의 화해를 종용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유일하게 어른 노릇을 한 건 화를 내며 배재고 응원을 제지하고 학생들을 보호한 광주일고 코치진이었다. 반면 가해와 피해를 뒤섞어 가해 행위를 감싸기 바쁜 어른들은 한가득이다. 혐오에 찬성한다고 말하진 않지만, 혐오에 반대하는 것을 가해로 몰아 결과적으로 혐오를 정당화해주는데, 대체 교육이 정상화되고 앞으로의 잠재적 가해자들이 지역 혐오와 조롱의 재미를 스스로 포기할 이유가 어딨겠나.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나는 다시 한 번 아이유처럼 헷갈린다. 이거 뭐야, 광주일고와 광주가 가해자인가? 그래도 아이유는 단호히 말했다. 뭐 처벌은 해야죠. 이 당연한 말도 관용 부족이 된 가해자 피해자의 역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역전은 딱 그라운드에서만 짜릿할 수 있는 일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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