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한국 작품이라 고른 게 아니다"… 日 호리프로의 '작품 퍼스트'

김소연 2026. 7. 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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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뮤지컬국제마켓 찾은 이카와 가오루 프로듀서 인터뷰
국적보다 작품…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협업
"처음부터 세계 바라보는 시각, 한국의 강점"
"아시아 콘텐츠, 서구 공연계 새 관객 끌어들여"
이카와 가오루 호리프로 프로듀서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K뮤지컬국제마켓에서 '원천 IP의 공연화와 확장 전략'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작품 퍼스트.'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호리프로의 이카와 가오루 프로듀서가 글로벌 협업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국적보다 작품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작품을 가장 좋은 형태로 완성할 수 있다면 영국이든 프랑스든 한국이든 최고의 창작진과 손을 잡는다.

호리프로의 글로벌 사업 담당 부부장인 이카와 프로듀서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한 K뮤지컬국제마켓(6월 29일~7월 3일)의 초청 인사로 한국을 찾았다. 방한 기간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그는 "연극·뮤지컬은 본질적으로 국경을 넘는 힘을 가진 예술"이라며 "다른 나라의 관점이 더해질수록 작품 표현은 풍성해지고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대표 극단 시키가 전용관 기반의 장기 공연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호리프로는 일찍부터 해외 협업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니나가와 유키오(1935~2016) 연출과 만든 연극을 해외에서 공연했고,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메리 포핀스' 등을 제작하며 장기 공연 노하우를 쌓았다. 아시아 유일 프로덕션으로 2022년 도쿄에서 개막해 올 연말까지 공연되는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통해서는 대규모 마케팅 전략을 체득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탄생한 지식재산권(IP)을 세계 시장으로 내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뮤지컬 '데스노트'가 일본·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데 이어 30일 런던에서 영어 버전으로 개막한다. 중국에서는 호리프로의 2인 창작 뮤지컬 '시로쓰메쿠사'를 10일부터 공연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영국, 프랑스, 한국 공연을 앞두고 있다.

연극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일본 공연 포스터. 호리프로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 신선한 질감으로 브로드웨이 사로잡아"

이카와 가오루 호리프로 프로듀서가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에서 한국일보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작품 퍼스트'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기도 하다. 이카와 프로듀서는 지난해 일본에서 초연한 한국 웹툰 원작 뮤지컬 '미생'을 예로 들며 "한국 작품이라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직장인의 현실을 그렸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미래를 향해 도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 매료돼 선택했다는 것이다.

보편적 메시지를 담은 IP는 새로운 관객도 끌어들인다. 그는 런던 '데스노트' 콘서트에 만화 팬과 젊은 관객들이 몰려든 경험을 언급하며 "아시아 콘텐츠는 새로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구 공연계가 지금 아시아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팝의 세계적 성공으로 아시아 콘텐츠의 신선함을 알게 됐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기존 관객층만으로는 시장 확대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IP와 관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시아와의 협업이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브로드웨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역시 기존 미국 작품과 다른 신선한 질감과 보편적 가치가 통한 훌륭한 사례로 꼽았다.

뮤지컬 '데스노트' 런던 공연 포스터. 30일 바비칸센터에서 개막한다. 호리프로 제공

이카와 프로듀서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덧붙였다. 그는 "대극장과 대학로 소극장 시장이 완전히 두 세계처럼 분리돼 있어 놀라웠다"며 "대학로라는 독창적인 브랜드를 고도로 발전시킨 것은 장점이지만, 뛰어난 인재들과 보석 같은 작품들이 소극장에만 머물기보다 규모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더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짚었다.

그가 보는 한국 뮤지컬 산업의 가장 큰 강점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최근 한국 제작사들이 뉴욕 워크숍을 잇달아 열고 글로벌 개발에 나서는 모습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는 한일이 기획 단계부터 공동 제작에 나선다면 두 나라를 동시에 시장으로 확보할 수 있고 예산 규모를 키워 수준 높은 작품으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한일 공동 제작은 선택이 아니라 미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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