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주변 1.5㎞가 인파로 꽉 찼다, 중남미 강타한 K컬처

윤수정 기자 2026. 7. 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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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브라질 공연 현장 르포
지난 4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시 알리안츠 파르키에서 열린 엔하이픈 공연에 몰려든 현지 팬들 모습. 이들은 새벽부터 선착순으로 배부되는 앞자리 좌석을 사수하기 위해 긴 대기줄을 만들었다. /윤수정 기자

“달려, 달려(Vamos)!”

지난 4일(현지 시각) 오후 5시 브라질 상파울루 주 알리안츠 파르키 공연장에선 주변 1.5㎞에 달하는 도로를 가득 메운 인파가 일제히 달리고 있었다. 모두 오후 7시 30분 열리는 K팝 보이그룹 ‘엔하이픈’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주변 상인들은 “좋은 자리 잡아”라고 응원까지 했다. 브라질의 대형 공연장은 VIP석과 일반석만 구분할 뿐, 지정 좌석 없이 선착순으로 앉기 때문이다. 입장 알람과 함께 관객들이 달려나가는 모습은 마라톤 출발 장면 같았다.

관객들은 전날 자정부터 길고 긴 대기 줄을 형성했다. 극성 팬들의 공연 대기 노숙 텐트를 뜻하는 현지어, 일명 ‘바라카스(Barracas)’가 곳곳에 펼쳐진 가운데 4만1000석 규모의 관객들이 오전부터 도로를 점거했다. 약 10시간 전부터 대기 행렬이 생기면서 공연장 인근 교통이 마비되고 고속도로 정체 때 등장하는 보따리상까지 나왔다. 대기 줄에서 만난 타이나 모레이라(Thaina Moreira·27)씨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3개월 전부터 이 공연 관람만 준비했다”며 “엔하이픈을 통해 한국 문화를 배웠고, 스스로 ‘이나’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고 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보이그룹 '엔하이픈'의 공연을 보기 위해 팬들이 몰려든 모습. /엔하이픈 팬 X

이날 약 2시간 30분 동안 24곡을 부른 엔하이픈 공연은 포르투갈어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관객 대부분이 영어나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이프’(Knife), ‘엑스오’(XO) 등 현지에서 인기를 끈 노래들이 이어질 때는 좌석 의자가 웅웅거릴 정도로 한국어와 영어 ‘떼창’이 이어졌다. 멤버들이 “함께 즐기자”고 외칠 땐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릴 크기로 “네!” 소리가 쏟아졌다. 엔하이픈은 브라질을 시작으로 리마, 멕시코시티 등에서 데뷔 후 첫 남미 투어를 이어간다. 오는 8월 21일에는 브라질 펑크 장르를 접목한 신곡이 담긴 새 앨범을 공개한다.

현지 공식 활동 없이 첫 브라질 공연에서 단번에 4만1000여 관객을 모은 그룹 엔하이픈. 왼쪽부터 멤버 성훈·정원·제이·선우·제이크·니키. /빌리프랩

◇중남미 강타한 ‘K’

이날 엔하이픈의 공연은 중남미에서의 K팝 열풍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보여준다. 인구 2억명이 넘는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인 브라질은 외국 문화의 진입 장벽이 높다. 동시에 가장 큰 규모의 대중과 음원 스트리밍 시장을 보유한 곳이다. 박웅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브라질 비즈니스센터장은 “브라질에선 외국 가수가 인정받기 쉽지 않지만, 여기서 인기를 얻으면 중남미 전체의 흥행 보증수표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엔하이픈은 이곳에서 현지 활동 없이 지난해 주요 시상식 ‘브레이크투도 어워드 2025’에서 국제 남자 그룹상을 받았다. 최근 한 달간 스포티파이에서 엔하이픈 음악을 가장 많이 들은 국가 톱3는 미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에선 최근 2~3년 사이 K드라마 인기가 급등했다. 지난해 브라질 넷플릭스는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에 K드라마 전용 채널을 ‘엄마플릭스(Ummaflix)’란 이름으로 개설했다. 한국어 ‘엄마’에서 따온 것이다. 현지 넷플릭스 시청률 톱5 목록에 한국 드라마가 빠지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 관련 통계 조사를 하는 ‘나 코레이아 템’(Na Coreia Tem) 운영자 캐롤 파르디니(39)는 “작년 브라질 내 K드라마 시청자들의 연령대는 35~44세(24.1%), 25~34세(21.4%), 45~54세(20.1%) 순”이라며 “상당히 안정적인 재정 구매력을 가진 팬덤”이라고 했다. ‘뱀파이어’를 앞세운 엔하이픈의 앨범 주제와 스토리도 현지 팬들 사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K팝과 K드라마 열풍으로 현지 핫플레이스가 된 상파울루 한인타운 봉헤치로. 이곳을 찾은 현지인 헬렌(26, 왼쪽)과 발렌티나(14)는 자신들이 구매한 한식과 K팝 음반, 한국 양말 등을 자랑해 보이며 "최근 또래들 사이 한국 체험이 정말 인기"라고 전했다. /윤수정 기자

◇ ‘핫플레이스’ 된 브라질 한인타운

상파울루 시내 한인타운 ‘봉헤치로’는 현지 10대~20대들 사이 핫플레이스로 변신했다. 심종우 상파울루 한인회 사무장은 “최근 2~3년 사이 급격히 관광객이 늘었고, 주로 토요일에 관광버스가 많이 온다”며 “매 주말 봉헤치로에선 잡채, 김밥, 한국 음료수 등을 파는 한국 음식 체험 장터도 열린다”고 했다.

지난 4일 점심시간에 찾은 봉헤치로에선 한국 음식 장터를 비롯해 김치 등을 파는 반찬 가게, 한인 마트들 앞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K팝 음반을 함께 파는 한국식 카페 ‘투 투’(Two Two)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질 현지 카페 대부분은 커피에 얼음을 넣지 않지만, 여기선 한국식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불티나게 팔렸다. 카페 매니저 라리사(Larissa·28)씨는 “매달 K팝 스타들의 생일 카페도 개최 중”이라고 했다. K팝의 인기는 봉헤치로를 넘어 도시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상파울루의 인기 관광 명소인 맥도날드 1000호점 ‘메키 미우’(Méqui 1000)를 비롯한 도심에선 K팝이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었다. 브라질 주재 한국문화원 관계자는 “상파울루시 당국에서도 K팝 가수 공연을 시 공식 행사에 적극 유치 중이고, 여러 현지 기업에서도 협업 문의가 많이 온다”고 했다.

이를 활용한 현지 수익 활동까지 등장했다. 최근 두 달 사이 브라질리아 ‘K-페스티벌’, 리우 데 자네이루 ‘페이라 한류’(Feira Hallyu) 등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K팝 페스티벌이 줄줄이 열렸다. 2016년부터 한국 여행 전문 콘텐츠를 게시하며 관련 여행사를 운영 중인 인플루언서 에퀴페 미도리(32)는 “최근 브라질인이 가장 궁금해 하는 한국 드라마 속 장소는 경복궁이고, 이밖에 고시원, CU편의점 체험 게시물이 큰 인기”라며 “현지에서 한국 문화는 이제 틈새시장을 넘어 훨씬 확장됐고, 18~30세 사이 다양한 직업군이 최소 2주 이상 한국 여행을 꿈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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