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잔치에 담긴 개성상인 위상[붓 끝의 美학]

개성 유지 64명 ‘노인 연대’ 모임 기념
가을 송악산·다채로운 인간 군상 표현
홍의영의 글과 유한지 서예로 격 높여
정조가 “무릇 그림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주관토록 했다”고 친히 기록한 최고의 궁중화원, 단원 김홍도(1745~1806년 이후)다. 그의 만년의 걸작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 전시돼 있다. 1804년 9월 개성 유지 64명이 고려 왕궁터인 송악산 만월대에서 개최한 모임을 기념하는 그림이다.
김홍도는 화면 상부에 넉넉히 여백을 두고 송악산을 비스듬하게 배치했다. 그 여백을 간재 홍의영(1750~1815)의 수려한 행서가 채우고 있는데, 글이 없었다면 탁 트인 공간 가운데 송악산이 더 돋보였을 듯도 하다. 글 쓸 자리를 미리 안배한 것인지 시원한 여백을 무심히 막아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척 귀하게 글줄을 대접하고 있음이 확연하다.
홍의영의 글은 약 200년 전인 1607년에 있었던 선조들의 모임을 본받아 계회를 열고 김홍도에게 그림을 주문했음을 알려준다. 글 왼쪽 아래에 “단원이 그리다(檀園寫)”라고 쓴 관서와 서예가 유한지(1760~?)가 쓴 예서 “기로세련계도” 제목이 있다. ‘기로’는 60대와 70대 노인을, ‘세련’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연대함을 뜻한다. 화면 하단에 작게 이름과 본관을 기재한 64명이 연대의 주인공들이다.
역사적인 모임의 장소는 고려의 왕궁터인 송악산 만월대다. 김홍도는 송악산 산면을 특유의 하엽준(荷葉皴)으로 표현하고, 붉은빛이 감도는 단풍으로 가을의 느낌을 살렸다. 자연스럽게 공간을 나누는 연무는 운치를 자아낸다. 송악산에 머무는 눈길을 애써 내리면, 본격적인 그림의 주제가 펼쳐진다.
넓은 석대에 높게 차일을 치고 병풍을 둘러 자리를 마련했다. 아랫자리에는 삼현육각이 풍악을 울린다. 병풍 앞에 어깨를 겹치고 촘촘히 앉아 원형 소반을 받은 계원은 64명, 좌목의 인원수에 딱 맞는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237명이다.
많은 인원이 복작이는 와중에 넉넉하게 마련한 중앙 공간이 시원하다. 꽃병이 놓인 주칠상, 술동이가 놓인 흑칠상이 눈길을 끌고, 춤추는 무동 둘과 음식을 나르고 시중을 드는 동자들이 움직임을 만든다. 가느다란 묵선 한 가닥일 뿐인 천막 기둥마저 화면이 심심하지 않도록 거든다. 무동, 서당, 씨름 등 <단원풍속도첩>에 보이는 김홍도의 화면 구성 능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주변에는 잔치를 구경하며 즐기는 다양한 인물들이 활기를 더한다. 소나무 아래 주모와 술꾼들, 구경꾼들, 춤추는 노인, 음식상 나르는 여인, 벙거지 쓴 걸인, 막 손님을 모시고 온 마부, 지게를 버려두고 구경하러 가는 나무꾼. 화가가 다채롭게 그려 넣은 인간 군상은 이 성대한 잔치를 생생히 기억하도록 돕는다.
64명 중 과거 급제 기록 등을 통해 인적사항이 파악되는 사람은, 좌목의 세번째 인물인 72세의 진사 백명우, 끝에서 18번째 인물인 40세의 무과 급제자 장이강 등 문과 1명, 진사 1명, 무과 3명 겨우 다섯이다. 홍의영은 일을 맡아 진행한 장후은과 장윤의를 특별히 언급하면서도 그들을 ‘군(君)’이라고 낮춰 불렀다. 이들의 신분을 양반사대부로 보기는 어렵지만, 옛 왕조의 궁성인 개성 만월대에서 대를 잇는 대규모 계회를 열어 성세를 과시하는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당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에게 화려한 계회도를 제작하도록 했다. 거기에 이름난 서예가 유한지의 예서와 문예 관료 홍의영의 글을 더해 격을 높였다. 기로세련계도를 주문한 이들은 조선 후기 유통경제의 활성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개성상인들이었을 터다. 홍의영은 ‘산하와 도읍의 웅장함과 화려함, 시정 인물의 차림새와 나들이 단장이 훌륭한 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 도시 사람들의 풍치’라고 이들을 치켜세웠다. 상업과 도시의 발달에 힘입어 높아진 경제력과 상인의 위상, 그들의 문예적 안목을 반영한다.
김홍도의 고객 가운데는 역관 이민식, 거상 김한태 등 한양의 중인층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1804년 개성의 상인들이 의뢰한 기로세련계도의 성대한 모임 장면은 화가의 중요 후원자로 중인층이 새롭게 부상하는 미술 문화의 큰 변화를 예시한다. 19세기 만개하여 근대로 이어지는 여항 문예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진아 국립춘천박물관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군용 장갑도 뚫는다” 요즘 늘고 있는 ‘보라색 꽃’ 정체는?···스치기만 해도 큰일
- [의원님은 수주왕]‘*’로 가리고 통째로 날려버리니···지자체 ‘깜깜이’ 공조 속에 판치는
- “전자레인지 이렇게 쓰면 전기료만 줄줄…” 전문가들이 말린 습관
- “완전 패배수” “실패” 소리 나오는데···트럼프는 왜 중간선거 앞두고 전쟁을 재개했나
- 월요일 출근길 ‘물바다’ 주의···중부 최대 80mm 돌풍·번개 동반한 ‘기습 폭우’
- 경북 문경서 산행 후 계곡에 발 담그다 미끄러진 60대 숨져
- 한국 영포티? 조롱거리 된 일본 ‘아재 가방’···세계 아저씨 수난사 [패션의 사회학]
- ‘바둑’ 신진서, 현존 최강 ‘카타고’에 첫 공식 승리···이세돌 10년 만에 AI 넘었다
- 최태원 “내년 반도체 공급 ‘아비규환’ 우려…공급 늘려 가격 떨어뜨리는 게 생명줄”
- 86년 역사의 여고, 공학 전환 놓고 홍역···“면학 분위기 훼손” vs “학령인구 줄어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