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인 가구는 무섭다…외부인에 ‘무방비’ 소규모 빌라 등 ‘보안 기준’ 마련 시급

지난달 15일, 전북 전주시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박아무개(26)씨는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 빌라 4층인 박씨 집 앞까지 따라오는 일을 겪었다. 남성은 1층 공동현관부터 바짝 붙어 쫓아와 공동현관 잠금장치를 열 때 함께 들어왔다. 집 앞에서 박씨가 휴대폰을 꺼내자 남성은 4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박씨는 이 남성을 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고, 지난 1일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다. 박씨는 8일 한겨레에 “빌라에 있는 폐회로텔레비전은 작동하지 않았고, 공동현관 잠금장치도 무용지물이었다”며 “일상이 공포가 됐다”고 말했다.
빌라·오피스텔 등 소규모 주거시설에는 범죄예방 건축 기준이 의무적으로 적용되지 않아 소규모 주택에 사는 1인가구 여성이 주거침입·스토킹 범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여성 1인가구 주거 안전 강화를 위한 소규모 주거시설 보안 기준 의무화’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지난달 16일 올라와 동의 절차가 진행 중이다.
현행 건축법을 보면, 다가구주택, 오피스텔, 100가구 미만 아파트는 출입구에 접근통제시설, 각 집 현관문에 도어 체인, 각 집 창문에 잠금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다. 100가구 이상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1층, 옥상 출입구, 승강기 내부에 폐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도 100가구 이상 아파트는 의무지만 나머지 시설은 권장 사항이다. 이 때문에 소규모 주거시설 건축주들이 보안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국, 일본 등은 소규모 주택에 대한 보안 기준이 훨씬 철저하다. 영국은 5가구 이상 공동주택부터 공동현관에 영상이 보이는 인터폰과 출입통제장치를 필수로 설치하도록 한다. 11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외부인이 주민을 따라 몰래 들어오는 일을 막기 위해 공동현관 바깥문 안쪽에 문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26세대 이상부터는 층마다 출입통제장치를 두도록 다. 일본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 공익재단이 협력해 보안기준이 적용된 소규모 주택을 심사해 인증마크를 주는 ‘방범 우량맨션 인증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범죄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들은 개별적으로 주거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2년 전 모르는 남성이 빌라 2층인 자신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문 열라’고 협박하는 일을 겪은 윤정윤(27·서울 성북구)씨는 공동현관 잠금장치가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월세를 아끼려고 방 크기를 줄였다. 김유진(26·서울 성북구)씨는 층마다 공동현관이 있는 곳으로 자취방을 옮기느라 월세가 20만원 올랐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1인가구를 대상으로 현관문 이중잠금장치, 스마트 초인종 등을 지원하는 안심장비 지원사업을 운영하지만 신청해야만 이용할 수 있어 지원이 제한된다.
법 개정을 통해 소규모 주거시설의 전체 안전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석진 경상국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현행 범죄예방 건축기준은 용도별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범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여성 1인가구 밀집 지역 등에서는 현재보다 강화된 범죄예방 환경설계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희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도 “건물주가 보안·잠금 장치를 설치한다고 할 경우 지자체가 보조해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범죄 취약 지역 또는 범죄 취약 대상이 거주하는 건축물의 경우 건축 허가 단계에서부터 몇 가지 안전 기준을 통과해야 허가를 내주는 행정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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