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레시피] 잿더미 될뻔했던 철종·영조 어진, 부산 귀환

조봉권 선임기자 2026. 7. 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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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조선의 기록…’전
어진을 제작·보수·봉안할 때 반드시 펼쳤다는 일월오봉도. 김성효 선임기자 kimsh@kookje.co.kr


- 1954년 용두산 대화재 화마로
- 조선 왕실 유물 보관 창고 불타
- 어진·은 제기 등 3500여점 소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개최 기념
- 국립고궁박물관과 특별전 마련
- 영조 연잉군 때 초상화 등 눈길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 1954년 12월 27일 자 2면 머리기사는 전날인 26일 큰불이 난 상황을 ‘용두산에 또 불…약 300동을 전소’라는 제목 아래 긴박하게 보도한다.

“용두산 바락(barrack)촌을 초대화(大火)가 휩쓸었다. 26일 상오 1시 17분 부산시 광복동 2가 8번지 5동 9반(미화당백화점 후편) 전기부속상 정수홍 씨 판잣집 2층 식모방에서 발화하여, 화염은 마침 불어닥치던 서북풍으로 부근 일대 판자옥으로 연소에 연소를 거듭하여 마침내 용두산 서편 쪽을 중심으로 광복동 동광동 … 이러한 대화재로 용두산 주변의 바락은 거의 대부분 소진된 것이다.” 바락은 그때 피란민·영세민이 살던 집단 가옥, 쉽게 말해 판잣집 촌이다.

부산은 약 1년 전인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역전 대화재로 경악스런 피해를 본 상태였다. 그런데 1954년 12월 26일 ‘용두산 큰불’ 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한민족을 거듭 경악하게 하는 피해를 안긴다. 이날 용두산 대화재의 화마는 피란민 판잣집 촌과 붙어 있던 건물 한 동을 태워버린다. 1951년 4월 부산에서 출범한 국립국악원의 창고였다. 이 창고가 불타면서 한국 역사학계에 잊히지 않을 악몽이 화인(火印)처럼 찍힌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 왕실의 귀중한 유물을 급히 한데 모아 부산으로 옮겨, 안전을 위해 창고에 봉인한 뒤 한시름 놓는다. 그 창고가 바로 국립국악원(부산국악원) 창고였다. 창고 안에는 조선 궁중 유물 4000여 점이 보관됐다. 그중 3500여 점이 용두산 대화재로 불타버렸다. 겨우 546점 건졌다. 소실된 진귀한 문화 자산에는 조선 역대 국왕을 그린 어진 다수, 왕실 유물, 역대 재상 초상, 고서적, 은 제기, 어필 등이 포함된다.

부산박물관에서 다음 달 30일까지 열리는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에 전하노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조 어진’(왼쪽)과 ‘철종 어진’. 두 어진은 1954년 부산 용두산 대화재의 화마를 피해 살아남은 극소수의 어진 가운데 일부다.


부산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오는 13~29일 부산 벡스코 일원)라는 중요한 국제 문화 행사를 기념해 공동 특별기획전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萬世)에 전하노니’를 부산박물관(남구 대연동)에서 다음 달 30일까지 마련한다. 지난 7일 개막한 이 특별기획전에, 부산 시민으로서는 한결 특별한 손님이 왔다. 조선 영조와 철종을 그린 어진이다. 부산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영조 어진’과 ‘철종 어진’은 72년 전 용두산 대화재 때 국립국악원 창고 안에서 불타 없어질 뻔하다가 살아남은 어진 단 3점 가운데 2점이다. 전시장에서는 영조가 ‘21살 연잉군’이던 시절 그린 초상화도 볼 수 있다.

1861년 그린 철종 어진에는 “내 나이 31세 때의 초상”이라는 철종의 친필이 있건만, 용두산 대화재 때 불에 타 얼굴과 의상(군복)이 훼손된 모습이 고스란히 있어 불이 났던 당시의 긴박함이 전해진다. 용두산 대화재 때 국립국악원 창고 열쇠를 못 찾아 문을 열지 못한 바람에 피해가 더 컸다는 가슴 쓰린 증언도 있다. 소실된 유물 3500건을 파악할 수 있던 목록마저 1960년 화재로 타버려 현재로는 없어진 게 무엇인지 알기조차 힘들다는 기록도 있다.

이 공동 특별기획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오는 외국인 참가자 2500여 명과 내국인 500여 명을 맞이하기 위해 인문으로 차린 아주 많은 잔칫상 중 하나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조선의 품격과 솜씨와 정신이 얼마나 빼어난지 곧장 느낀다. 아울러, 혼란하고 가난했던 1954년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닥친 비극을 곱씹고 더 깊은 문화유산 사랑을 다짐하는 계기로도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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